내 생애의 아이들 1막 - 7. 고통없는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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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1막 - 7. 고통없는 나라로
  • 김태진 사무국장
  • 승인 2015.04.13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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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진 한국문화국제교류운동본부 사무국장(전 맨해튼한국학교장)
  ‘교사’라는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은 아마도 방학일 것이다. 방학 동안 부담 없이 여행도 가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맘껏 배우고, 푹 쉴 수도 있으니.

 
  여름 방학 기간 동안 17박 18일의 미국 연수 !
  미 서부 8개 주(州)를 탐험하는 ‘창조과학 세미나’와 관광을 겸한 유익한 연수이다. 개학 일주일 후에 돌아온다는 사실이 걸리긴 했지만 재단 차원에서 실시하는 연수로 ‘공인된 결근’이다 보니 당당하게 연수를 떠날 수 있었다. 처음 밟는 미 대륙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을 잔뜩 가지고......
 
  미국은 정말 큰 나라임을 실감했다. 3시간을 달려도 뜨거운 사막만 펼쳐지는 지루한 황량함, Grand Canyon, Brice & Zion Canyon의 웅장함과 기이한 모습, 동서남북 상이한 환경을 품고 있는 Yellowstone의 놀라운 파노라마, 달력에서나 볼 수 있는 수려한 숲과 호수, 화산 지형, 얼음 산, Salt Lake, Las Vegas의 화려함, 유니버설 스튜디오, LA 등 그 넓고 다양한 땅에서의 여행은 내게 유아기 이후 가장 자유롭고 편안한 나날을 제공해주었다. 산으로 들로 호수로 바다로...... 로키 산맥을 따라 펼쳐진 자연 속에서 세상의 잔 근심을 다 떨쳐버린 17박 18일이 꿈같이 흐르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짜가 다가오자 우리 반 아이들이 보고 싶어진다. 방학 동안 많이 컸을 텐데...... 모두 별 일 없겠지? 나는 보고 싶은데 요놈들은 잔소리하는 담임이 없으니 신나겠지? 아이들 선물은 무엇을 사다 줄까?
 
  시차 때문에 이른 새벽에 일어나 있는데 부모님이 부르셨다. 두 분 다 얼굴이 어두우시다. 나 없는 동안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태진아. 놀라지 마라...... 실은 어제 너희 반 부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었어. OOO 학생이 개학 전날 자살을 했다고. 아파트 10층에서 투신했다고 하는구나. 부모님이 사이가 아주 안 좋았는데 그것으로 많이 힘들어 했나 봐...... 학생들 데리고 장례식도 갔다 오고 다 잘 처리되었으니 걱정 말라고 하셨어. 어젯밤에 말해주려 했으나 그러면 네가 밤새 힘들 것 같아서......”
 
  도대체 믿을 수가 없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에, 그 어떤 일로도 지적을 받지 않을 만큼 착하고 성실한 규하였다. 그 아이가 자살을 했다니......
 
  교사에게 ‘주목’을 받는 학생들은 크게 두 부류가 있다. 우수한 학생과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 60명의 학생 속에서 소수 두 부류의 아이들에게 교사의 관심이 집중되고, 조용한 중간층 학생들은 그래서 더 소외된다. 규하도 그랬다. 자신의 소리를 내기보다는 다수에 묻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는, 튀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무 문제가 없는 학생으로 간주되고 교사의 관심에서 소리 없이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가슴이 무너진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되었으면 자살을 했을까? 내가 진작 알고 위로하며 상담을 해줄 수도 있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아무 문제 없는 학생으로 치부해 버렸으니. 규하의 상처를 치유해 주기는커녕, 발견조차 못한 것이 한이 되어 가슴을 후빈다. 규하가 삶조차 놓아버릴 고통에 힘겨워 할 때 나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제 교실에 들어가면 규하는 없다. 그 아이가 앉아있던 자리로 시선이 가면 마음의 추가 ‘쿵’ 하고 떨어지고, 수업을 하기 힘들 정도로 눈물이 쏟아진다. 규하 영정에 향도 못 피웠는데...... 영구차 나마 어루만지며 잘 가란 말도 못 건넸는데...... 나는 그 아이의 죽음 후에 조차 아무 것도, 정말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 그 회환 때문인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는 더 슬픔의 늪에 빠져들었다.
 
  “김선생, 오늘 성경 시간에 기도를 하는데 아이들이 선생님이 규하 때문에 그만 슬프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더군요. 규하는 마음의 고통 없는 하늘나라에 잘 갔을 거예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세요.”
 
  학생들은 이미 규하를 보내고 평정을 찾아가고 있는데 뒤늦게 돌아온 담임이 수업도 제대로 못하며 슬퍼하고 있으니...... 나는 이중으로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이었다.
 
  “규하야, 하늘나라에 잘 갔니? 나도 이제 너를 보내고 정신을 차려야겠구나. 규하야, 너무너무 미안해. 너의 그 큰 아픔을 위로해주기는커녕 알지도 못했던, 부족한 담임을 용서해줄 수 있겠니?”
 
  내 교직 생활의 앙금으로 남아있는 규하. 규하 이야기를 쓰고 있자니 가라앉아 있던 앙금이 다시 흔들리며 뿌연 슬픔으로 뚝뚝 떨어진다. 내 눈물이 다 마를 때까지 평생 울어도 규하에 대한 마음의 한은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규하 생각이 날 때면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진다. 그 아이 같이 조용한 중간층 학생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착한 아이들 말이다. 그러나 그 평범함 뒤에는 여느 아이들과 같이 주목받고 싶고, 소리치고 싶은 혼란스런 사춘기가 감춰져 있다. 다시 돌아가 그들이 묻어버리기만 하는 갈등과 힘듦을 세심하게 어루만져 주고 싶다. 제2의 규하가 나오지 않도록. 그러면 하늘나라에 있는 규하가 흐믓하게 바라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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