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대 칼럼] 우리가 진정 이 땅의 주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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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대 칼럼] 우리가 진정 이 땅의 주인인가?
  • 신성대 동문선 대표
  • 승인 2015.04.06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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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開京)에서 한성(漢城)으로

조선 건국 후 중국 천자의 재가를 받아 정통성을 세우고자 했지만, 오랑캐라 하여 이성계를 조선 왕으로 호락호락 인정해주지 않아 무던히 애간장을 태웠다. 해서 꾀를 낸 게 바로 천도다. 개경(開京)에서 남경(한양)으로 옮기면서 수도를 ‘중국(漢)에 속한 작은 마을(城)’이란 뜻을 담은 ‘한성(漢城)’이라 하여 스스로 중국의 일개 성(城)으로 격하시켰다. 동경, 서경은 물론 개경까지 개성으로 낮춰 이 나라엔 경(京)이 없음을 알렸다. 철저하게 신하의 나라가 된 것이다.

  그리고 한성의 각 성문에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자를 넣어 유학을 신봉하는 예의지국으로서 대명(大明)을 섬기고 따를 것을 맹세하고서야 겨우 천자의 재가를 받아내었다. 해방 후 대한민국이 미국식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것과 같다 하겠다. 원(元) 대신 일본이고, 명(明) 대신 미국인 게다. 최영이 김구, 이성계는 이승만이 되겠고 세종이 박정희면 세조는 전두환 쯤 되려나? 이를 두고 역사는 반복된다고 할 수도 있겠고, 새 왕조나 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이 대개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다.

  1910년 일제 총독부가 한성부(漢城府)로 불려오던 것을 경성부(京城府)로 개칭하였는데, 이를 두고 한국인들은 일제가 고의로 격하시켰다고 분개하지만 오히려 격상으로 보는 것이 맞겠다. 기실 대한제국이 탄생할 때 오경(五京)을 복원했어야 했다.

  아무튼 지금도 대다수 중국인들은 습관적으로 한국을 ‘朝鮮’이라 하고 서울을 ‘漢城’이라 한다. 지난번 박 대통령 중국 국빈방문 때에 시진핑 주석도 분명 ‘챠오셴(朝鮮)’이라 했다. 일본인들이 ‘조센(朝鮮)’이라 하면 거품을 물면서도 중국인들이 그렇게 칭하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친근해 하니 아이러니다.

 사대근성과 피식민지배근성

  몇 년 전부터 한국이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한다며 우쭐대더니 요즘은 쑥 들어 가버렸다. 균형자는 고사하고 미·중간에 눈치보기가 극에 달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민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여 위안부와 독도 문제로 만만한 일본을 성토하며 균형자 아닌 한풀이에 몰두하고 있다.

  오랜 동안 우리는 스스로를 ‘동국(東國)’혹은 ‘동방(東方)’이라 칭하며 그렇게 불리는 것에 대해 별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의 동쪽에 있다 하여 그렇게 부른 모양인데 특히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두드러지게 사용하였다.

  한데 이를 좀 비판적으로 뒤집어보면 동국이니 동방이니 하는 말은 곧 변방이자 오랑캐란 말의 점잖은 한문식 표현일 뿐이겠다. 문제는 그렇게 스스로를 변방으로 치부하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주인의식이 희미해져버린 것은 아닌지? 세상의 중심은 언제나 중국이었지 제 나라를 한 번도 세상의 중심에 놓아보지 못했었다는 말이다.

  애국 동포들께서는 이런 발칙하고 생뚱맞은 주장에 불쾌해 하겠지만 작금의 대한민국이 국제무대에서 그 경제적 위상에 어울리는 대접도 받지 못하고 책임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동북아 균형자’라는 게 얼마나 가소로운 표현인지 짐작할 것이겠다. 공자 맹자 들먹이며 도로 ‘대명천지(大明天地)’로 들어가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본국(本國)으로 주인의식을!

  그런데 우리네 조상들이 이 ‘동국’ 대신 ‘본국’이란 말을 당당하게 사용한 적이 딱 한번 있었다. 조선의 국기(國技) 십팔기(十八技) 중 하나인 <본국검(本國劍)>이다. 십팔기는 조선 선조 때에서부터 2백여 년간 나라에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피땀으로 만든 종합병장무예로 사도세자가 완성을 하고 정조가 그 교본으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만들면서 정명(定命)한 조선 국기의 고유명사이다.

  당시 정조의 명에 따라 통지의 편찬 책임을 맡았던 당대 최고의 학자 이덕무, 박제가는 <본국검>의 연기(緣起)를 신라 황창랑(黃倡郞)에다 잡아주었다. 이로 보아 당시 실학자들 사이에 주체의식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스스로 주인이 되어보고자 한 자주의식이 ‘본국’으로 싹튼 것이겠다. 하여 할 수만 있다면 교과서의 ‘실학사상’을 ‘본국사상’으로 바꿨으면 싶다. 무예정신이 곧 본국정신이고 통일정신이기에 말이다.

▲ 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및 ㈔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장
  아무튼 오천년 역사상 우리가 주체가 되어 동양3국 문화를 주도적으로 정립시킨 것은 ‘십팔기’가 유일하다. 그리고 이 십팔기는 현재 세계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대 종합병장무예이다. 또한 고대 왕조가 만든 국가 무예로도 세계 유일하다. 현재까지 중국과 일본에 전해지는 수많은 무술들은 모두 민간에서 전해오는 호신술로서 군사들이 사용하던 무예가 아니다. <팔만대장경> 《동의보감》보다 더 귀중한 인류문화유산이다. 스스로 세계적인 보물을 깔고 앉아있는 줄도 모르고 있으니 그저 한심할 따름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군(軍), 관(官), 경(警), 학(學)의 체육 혹은 무도과목은 일제 때 식민지교육의 일환으로 강제 이식된 것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검도, 유도, 합기도는 물론 가라테[空手道]에서 개명한 태권도조차 실은 일제 식민무도란 사실을 애써 모른 척 스스로를 속여 왔다. 무서워서 피해 왔다.

  인간존엄성, 자기존엄성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는 절대로 주인의식을 못 가진다.
  스스로를 ‘동방’ ‘동국’으로 부르는 한 이 민족은 이 땅의 주인이면서도 주인노릇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제발 우리도 주인이 한 번 되어보자. 주인 되는 연습이라도 하며 살자. ‘본국(本國)’의 길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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