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영원히 같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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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영원히 같이 갑시다
  • 김중산 재미동포 자유기고가
  • 승인 2015.03.2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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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산 재미동포 자유기고가
  대사를 흔히 외교관의 꽃이라고 부른다. 대사를 임명할 때는 고유한 임무뿐 아니라 상대국에 대한 예우도 함축하고 있다. 주일미국대사 자리는 영국, 프랑스와 더불어 선망의 대상으로 꼽힌다. 1906년부터 주일 미 대사를 지낸 사람은 모두 29명(현 캐롤라인 케네디 대사 포함)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퍼 스타로 채워지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16년 동안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마이크 맨스필드를 비롯해 월터 먼데일 부통령, 톰 폴리 하원의장, 하워드베이커 공화당 상원원내 총무 등 기라성 같은 거물 정치인들이 주일대사를 거쳐 갔다.

  반면, 주한 미 대사 자리는 중간급 이하로 분류된다. 말하자면 캄보디아와 동급이다. 그렇다 보니 주로 국무부 과장급 정도의 무명 인사가 임명된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주한대사에 23명이 이름을 올렸지만 이웃나라 일본과는 달리 스타급 명사가 눈에 띄지 않는 이유다.

  미국이 평상시 세계 최고의 동맹국이라고 치켜세우는 한국에, 이제 겨우 국민소득 1,000달러를 넘어선 동남아의 빈국 캄보디아와 같은 수준의 경량급 인사를 대사로 보내는 것은 몹시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이제 한국도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위상에 걸맞은 중량감 있는 인물을 대사로 맞아야 한다. 마크 리퍼트 대사가 피습을 당하고 나서야 그가 주한 미 대사임을 인지한 사람이 비단 필자 뿐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처신을 가볍게 하면 상대방으로부터 내심 업신여김을 당하게 마련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같은 맥락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중동순방을 마치고 서울공항에 내리자마자 곧바로 리퍼트 대사의 병실을 찾은 것은  아무리 한미 동맹관계가 중요하다고 해도, 시기와 형식면에서 매우 부적절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이 중동 순방 중에 이미 리퍼트 대사와 전화로 위안과 유감의 뜻을 표했고, 이완구 총리 등이 정부를 대표해 문병을 다녀온 터에 구태여 박 대통령이 다음날 퇴원하는 리퍼트 대사의 병실까지 찾은 것은 주권국가의 원수로서 스스로 국격을 심대하게 훼손한 지극히 사려 깊지 못한 행위로 힐난 받아 마땅할 것이다.

  대통령의 수준이 곧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이 있은 직후 한국민이 보인 목불인견의 비이성적인 행태를 떠올리면 창피해서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대사의 쾌유를 기원한다며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엎드려 큰 절을 하고 부채춤과 발레, 난타 공연을 펼쳤는가 하면, 심지어 박 대통령의 제부인 신동욱은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대사와 가족 그리고 미국 정부와 미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는 ‘석고대죄 단식’을 벌였다.

  신동욱은 지난해 9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46일 간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한 ‘유민아빠’ 김영오씨를 조롱할 의도로 “인간이 물과 소금만 먹고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며 반인륜적인 ‘실험단식’을 했던 잔인한 사람이다.

세월호 참사로 304명이나 되는 자국민이 목숨을 잃었을 때는 애도는 커녕 피눈물을 흘리며 단식농성 중인 유족들 앞에 나타나 폭식투쟁이니 실험단식이니 하며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하찮게 여기고 그들의 죽음을 능욕한 자들이, 다행히 부상 정도로 끝난 미 대사의 안전을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성조기를 들고 난리를 치다니 이 무슨 해괴한 짓거리란 말인가?  국제적 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다. 신동욱이 정녕 곡기를 끊고 석고 대죄해야 할 곳은 리퍼트 대사가 입원 중인 병원 앞이 아니라 세월호 희생자들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성조기가 물결치는 가운데 수천 명의 보수단체 회원들이 인천자유공원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 운집해 장군을 한국전에 참전시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케 한 트루만 미 대통령의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광복절 행사장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성조기를 미친 듯이 흔들어대는 한국민의 모습을 보면 단순히 생계형 친미를 하는 게 아니라 코카콜라 문화에 중독이 된 나머지 뼛속까지 사대주의에 젖어 미국을 맹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리퍼트 대사 피습사건은 그 같은 한국민의 눈물겹도록 유별난 미국에 대한 애정을 다시금 극명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그렇다면 이참에 아예 엉클 샘을 상대로 한국을 미국의 51번째 주 편입이나 아니면 괌이나 푸에르토리코처럼 미국의 자치령(보호령)이 되고자 하니 부디 통촉하여 달라는 대규모 범국민청원운동이라도 벌이겠다는 것이냐?

  아일랜드국민은 17세기 중엽에 시작된 영국의 식민 통치를 20세기에 벗어났으면서도 독립 자존의 민족정체성을 고스란히 간직했고, 유대인들은 2천년을 나라 없이 떠돌면서도 정체성을 유지해내고 끝내 자주독립국가를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35년의 짧은 일제강점기간에 국내와 만주, 연해주 그리고 세계각처에서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독립운동으로 목숨을 바친 희생도 잊어버리고 일본의 지배자들에게 부화뇌동한 소수 친일반역자들의 영향으로 민족혼을 상실했다는 말인가?

  피습 후 리퍼트 대사가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집니다. 같이 갑시다.”라고 말한데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영원히 같이 갑시다.”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미국의 주나 자치령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대한민국은 어느 국가와도 영원히 함께 가지 않는다. 지구상의 모든 자주독립국가들이 그러하듯이 국익에 따라 함께 가기도 하고 따로 가기도 하는 것이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처단한 안중근 의사는 일제의 일방적인 재판 끝에 여순 감옥의 형장에서 1910년 3월 26일 순국했다. 금년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 순국 105주기이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바라보며 하늘에 계신 안중근 의사가 피눈물을 흘리게 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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