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1막 - 4-2. 소리 없는 큰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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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1막 - 4-2. 소리 없는 큰 힘
  • 김태진
  • 승인 2015.03.2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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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진 한국문화국제교류운동본부 사무국장(전 맨해튼한국학교장)
   매년 봄이면 교내 합창 대회를 한다. 곡목, 반주자, 지휘자를 정해야 한다. 반주자는 피아노를 제일 잘 치는 학생이 하면 되지만 지휘자를 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입학한 지 몇 달 안 된 ‘중 1’이었기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지휘자를 정하지 않고 일단 내가 지도를 하면서 적임자를 찾고자 했다.

  방과 후에 모두 남아서 열심히 합창 연습을 했다. 성준이가 눈에 들어왔다.
   ‘저 아이는 피아노 소리가 안 들릴 텐데... 제대로 발음을 못하고 음의 높낮이 구분이 어려우니 소리도 못 내고...’
   금붕어처럼 입만 벙긋벙긋 하고 있는 것이 역력히 보였다. 자신이 합창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학급의 일원으로 자리를 지키며 최선을 다해 노래(?)하고 있는 그 아이를 보니 마음 한 구석이 아리면서도 대견하다.
   ‘성준이가 합장 대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노래를 안 불러도 되는 자리가 하나 남아 있다...’  

   “어머니, 이번 합창대회 때 성준이가 ‘지휘’를 하기로 했습니다.”
   “네? 우리 성준이가요? 그런데... 잘 할 수 있을까요?”
   “네, 성준이는 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잘 해 왔잖아요... 마침 곡도 4분의 3박자라 일정하게 삼각형만 반복하면 되니까 어렵지 않아요.”    
   “감사합니다. 힘들겠지만 열심히, 정말 열심히 연습시키겠습니다.”
   전화선을 통해 들려오는 어머니 목소리엔 성준이가 반장에 이어 지휘까지 하게 된 감격의 마음과 함께 그를 잘 연습시키겠다는 굳은 각오가 담겨 있었다.

   성준이 어머니는 일 년에 몇 번씩 링거를 맞으셔야 한다. 성준이 교육 때문에 몸과 마음이 쇠진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힘을 보충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록 장애가 있지만 어차피 성준이가 교육을 받고 나갈 장은 사회이기 때문에 힘들더라도 일반 학생들 틈에서 교육받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초등학교·중학교 모두 장애인 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 보내신 것이다. 대신 성준이가 학교에서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부분을 어머니가 지도해야 했기에 더 많은 신경을 쓰셨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복습을 시키고, 다시 예습까지 시키는 어머니의 열성으로 성준이의 성적은 상위권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집중력을 키워주기 위해 서예를 가르쳤으며, 성준이는 피아노도 잘 친다. 성준이가 반주를 하면 성준이 여동생은 플루트를 연주하고, 엄마아빠는 같이 노래를 부른다고 말씀해 주셨다. 즉 성준이의 주도로 가족 음악회를 한다는 소리다. 나는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정말 지휘자에 의해 모든 것이 움직여지는 합창대회가 될 것이다.

   우리 반인 1학년 2반의 순서이다. 학생들이 강당의 무대 위로 모두 올랐다. 마지막으로 성준이가 지휘 단에 오르고 모든 아이들의 눈은 그를 향하고 있다. 성준이가 반주자에게 신호를 보내자 전주가 흘러나온다. 성준이는 다른 지휘자보다 훨씬 더 많이 연습한 지휘를 하며, 첫 시작을 합창단에게 알린다. 그가 그리는 정확한 삼각형을 따라 아이들이 노래를 부른다...... 가장 걱정이 되었던 간주 부분도 무사히 진행되고 드디어 합창이 모두 끝났다. 지휘자가 뒤로 돌아 인사를 한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해냈다! 듣지 못하는 성준이를 중심으로 우리 반 아이들은 해내었다... 
 
   “선생님, 설리반 선생님 같아요. 헬렌켈러의 선생님 말이에요...”
   “어떻게 성준이를 지휘시킬 생각을 했어요? 정말 감격스러웠어요...”
   “준비시키느라 많이 힘드셨을 텐데... 대단한 일을 해내셨네요...”
   “제가 해낸 것이 아니라 착한 우리 반 아이들이 해낸 것이에요. 담임의 결정에 불만 없이 잘 따라 준, 정말 대견한 우리 ‘천사’들 말이에요.”

   그 착한 아이들, 정말 천사 같았던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은 성인이 되어 가정과 직장, 그들이 속한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듣지 못하는 친구가 반장이 되고 그가 지휘를 했던 합창대회 때의 경험을 회상하면서, 더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을 배려하고 도우며, 이 사회를 더욱 ‘아름다운 공동체’로 만들어 가는데 앞장서고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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