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사흘 굶어서 남의 담 안 넘는 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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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사흘 굶어서 남의 담 안 넘는 놈 없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5.03.1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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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은 아마도 ‘배고픔’이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배고픈 것은 자신이 고통스러운 것이기도 하지만 옆에 있는 가족이 배고픈 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배고픔은 심지어 죽음과도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굶어죽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도 배고픔의 엄중함을 들려주고 있다.
 
  우리 속담에는 배고픔과 관련된 것이 여러 가지 있다. 그 중에서 ‘사흘 굶어서 남의 담 안 넘는 놈 없다.’의 경우에는 듣는 사람에 따라서 오해가 발생하는 듯하다.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사흘을 굶게 되면 도둑질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표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사흘을 굶었다고 도둑질 하는 것이 잘 하는 일인가? 분명 잘못 하는 일이다. 그런데 왜 이런 속담을 사용하는 것일까?
 
  나는 이 속담을 들을 대상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속담은 도둑질하는 사람이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도둑질하는 사람이 이야기해서는 더더욱 안 되는 속담이다. 이 속담은 나라를 책임진 사람, 마을을 책임진 사람, 배고픈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들어야 하는 이야기고, 하여야 하는 이야기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윤리 의식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일, 남의 집 담을 넘는 일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내 아이가 굶고 있다면 어떡할까? 내 가족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면 어떡할까? 아마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사흘 굶으면 안 나는 생각이 없다.’는 속담도 그래서 생긴 것이리라.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막아야 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사흘 굶으면 어쩔 수 없이 나쁜 선택을 할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나라나 마을을 책임진 사람이라면 최소한 사흘은 굶지 않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우리들도 주변에 굶는 사람은 없는지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 이렇게 해야 굶주림이 범죄가 되지 않는다. 범죄의 원인에는 나라가 자리하는 경우도 많다. 조금만 미리 보살폈다면 그런 일은 안 일어났을 수 있다.
 
  나는 궁극적으로 이 속담은 ‘복지(福祉)’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본다. 사흘 굶었다고 남의 담을 넘는 사람을 정당화하기 위한 속담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도둑질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오히려 사람이 굶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미리 막아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이 속담을 보면서 ‘먹는 복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속담도 있다. 이 속담도 참 어렵다. 가난을 나랏님도 구제 못하면 누가 한다는 말인가? 왕도 대통령도 구하지 못할 가난은 무엇일까? 물난리나 큰 가뭄이 든다면 왕도 어찌할 수 없을지 모른다. 물론 잘 대비하여야겠지만 왕이 신이 아닌 이상 가난을 막기는 힘들 수도 있다. 모든 것을 나라에 의존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나 나라마저 가난을 해결하는 데 아무 일도 못한다면 답답할 수밖에 없다.
 
  가난이 든 것 자체는 나랏님이 어찌 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백성이 굶지 않도록 노력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굶고 있는데, 누구의 배는 부르고 누구의 곳간은 차고 넘쳐서는 안 된다. 한쪽에서는 풍악이 울리고, 한쪽에서는 곡소리가 나서는 안 된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참으로 많다. 백성이 사흘 굶어서 남의 담을 넘는 나라는 결코 좋은 나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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