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주류 외쳤더니 동포 자녀들, 한국말 모르고 돈·명예만 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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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주류 외쳤더니 동포 자녀들, 한국말 모르고 돈·명예만 쫓아”
  • 허겸 기자
  • 승인 2015.02.09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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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토마스 김 동포 1.5세 첫 샌프란시스코 한인회장의 의미 있는 쓴소리

▲ 본지를 내방해 인터뷰하고 있는 토마스 김 샌프란시스코 한인회장(사진=허겸 기자)

‘보상심리’ 강한 美 이민 1세대→2,3세대 전환기
사회봉사·배려·환원 교육 병행돼야 ‘진정한 주류’

  “(기성세대가)주류, 주류 외쳤더니 동포 자녀들이 한국말 모르고 오로지 돈, 명예만 쫓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동포 1.5세로는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 한인회를 이끌게 된 토마스 김(57) 회장은 “미주 이민 1세대들이 가르쳐온 자녀의 성공 기준이 경제적인 것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토마스 김 회장은 지난달 21일 서울 광화문에서 가진 본지 ‘내방 인터뷰’에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변호사든지, 회계사든지 전문직업인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면 경제적 성공이 ‘성공’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돼 온 것 같다”고 운을 뗐다.

  김 회장은 “동포 2세들이 ‘성공’의 의미를 고소득을 안겨주는 변호사 또는 회계사로 해석하는 틀에 갇혀 있는 것 같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토마스 김 회장의 일침은 그에게도 이민 선배 격인 1세대들을 탓하고 책임을 전가하기 위함은 아니다. 오히려 하루하루 척박한 현실을 감내했어야 했던 이민 1세대들의 수고로움을 십분 이해한다고 했다. 자녀의 세상적인 성공으로 위안을 삼으려는 이민 1세대들의 마음을 뼛속 깊이 이해한다는 말도 곁들였다.

  “갖은 역경을 헤치다 보니 어느새 중년을 훌쩍 지나 노년에 이르렀고 그때부터 느껴지는 허무함과 덧없음을 ‘우리 아들은 변호사, 우리 딸은 의사’라는 말로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강한 것을 이해 못 할 리 없습니다.”

  미주 이민의 역사가 112년에 이르면서 동포사회가 고속성장기에 접어들고 있다. 김 회장에 따르면 이민 3세대가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4세대가 태어났다는 소식도 제법 들린다.

  그러나 미국에 터전을 잡고 살아온 한인 동포사회의 외연이 점차 확대되면서 정체성의 문제가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다. 한인 이민자들의 정체성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돼 온 화두이지만, 그렇다고 해묵은 과제로 볼 일도 아니다.

  미주 사회가 이민에 개방적인만큼 늘 새로운 1세대가 유입되는 반면 초기 이민 세대의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이민자 사회의 신구갈등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국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서 출발하는 미주 한인들의 정체성 문제는 단 한 번도 명확한 공감대를 확보한 적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확히는 공식적인 결론을 내기 불가항력적인 난제에 가깝다.

▲ 토마스 김 샌프란시스코 한인회장
  토마스 김 회장은 늘 이런 문제의식을 마음에 담아왔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이방인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이민자의 숙명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주류로의 진입을 시도하고, 발언권을 확대하며 역량을 강화하다 보니 어느 새 주류의 일원이 됐다는 자부심을 느끼는 한인들이 급증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동포 자녀들이 고국과 멀어져 있는 현실을 새삼 깨닫고 개탄하는 동포 원로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것.

  토마스 김 회장은 “교육 시스템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며 말문을 이어갔다.

  그는 “2세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주고 너희들이 성공한 뒤에도 은혜를 잊지 않고 한인 커뮤니티를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회장은 또 유태인의 교육 시스템을 접목할 필요가 크다고 언급했다. 유태인 커뮤니티를 위해 봉사하고 유태인 커뮤니티에 ‘기여’하도록 가르치는 유태인의 교육 이념을 미주 한인 동포사회가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는 “유태인 사회를 보면서 우리 한글학교의 이념이 바뀌어야 함을 크게 깨닫게 됐다”고 배경을 밝혔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에 멈춰선 안 됩니다. 과연 훌륭한 사람이 무엇이냐에 대한 어른들의 함의가 모아져야 하는 것이죠. 이게 모아지지 않는다면 자녀들에게 올바르게 전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토마스 김 회장의 거침없는 쓴소리는 미주 동포사회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사회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사회는 명예와 부를 성공의 척도로 삼고 그 둘을 가진 사람에게 대접이 달라집니다. 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봉사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교육받는 것이죠. 미국의 유명 대학교에 가려면 점수가 얼마나 잘 나왔느냐가 아니라 봉사를 얼마나 잘 했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스탠포드와 버클리대학에 진학할 때 점수가 뛰어나서 간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라는 게 김 회장이 강조하는 포인트다.

  “대학 입학부서에서는 커뮤니티에 얼마나 봉사했는지를 가늠하기 위해 인터뷰를 합니다. 인성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장차 커뮤니티에 얼마나 기여할 지 사람됨을 미리 알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미주 이민자 가정의 아들,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간 이른바 1.5세대 출신의 김 회장은 이민 가정의 자녀가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온갖 애환을 몸소 체험한 까닭에 이민자 문제, 특히 소수민족의 교육 시스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토마스 김 회장은 사회봉사와 타인에 대한 배려심, 더 나아가 사회 환원을 거듭 강조한다. 한 시간 반 가까이 진행된 이날 인터뷰에서도 김 회장은 ‘나와 가족만 바라보지 말고, 우리와 이웃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교육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요지로 논리를 전개했다.

  그는 정치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113년째가 되는 미주 한인 이민의 장구한 연혁에 비해 정치적으로 주류사회에 진입하는 것은 낙제점에 가까운 현실이라고 봤다. 그래서 한국계 정치인을 배출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 토마스 김 한인회장
  토마스 김 회장이 교육과 더불어 정치 참여를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력 신장이 곧 한인사회의 역량 강화와 맞닿아 있다는 그의 오랜 지론 때문이다. 한 명의 걸출한 스타 정치인을 배출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인사회의 어둠과 그늘을 돌아볼 수 있는 ‘교육 잘 받은’ 한국계 정치인의 배출이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논리다. ‘교육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와도 맥락이 같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정치인을 배출한다는 것은 우리의 힘이 커진다는 것과 그 커진 힘이 다시 동포사회로 돌아온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고 역설했다.

  이런 이유로 김 회장은 한인들의 정치 참여와 그 토양을 가꾸는데 승부수를 띄우려 한다. 사실상 슬로건처럼 여겨지는 한인회의 모토도 ‘정치적으로 강한 한인회’다. 여기에 ‘열린행정’, ‘피부로 느낄 수 있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대민봉사’가 한인회의 정치 지향적 방향성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는 한 가지 흥미로운 도전에 나섰다. 재임 중에 한인 유권자들의 수를 전수조사 하겠다는 목표가 그것이다.

  전 세계 700여 만 동포사회에서 공통된 고민이 있다면 과연 어디까지를 ‘우리’의 범주에 넣는가라는 과제이다. ‘우리의 범위’를 알아야 정책의 방향을 명확히 결정하고 결속력과 응집력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쉴 새 없이 들고나는 이민자 사회의 특성상 재외국민과 한국계 현지 국적인이 포함되는 ‘한인 동포’가 정확히 몇 명인지 파악하고 있는 한인회는 거의 없다. 적어도 몇 백 명을 넘어가서 몇 천 명이 되는 순간부터 전수조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지 재외공관과 외교부, 법무부를 통해 출입국자 명단을 제출받으면 의외로 쉬울 것 같지만 현지인과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다시 재혼하거나 자녀를 둔 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기도 하고, 현지에 있는 자녀가 성장해 현지인과 사이에 또 다른 자녀를 낳는 경우의 수를 모두 셈하기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더구나 반드시 한국에서 출국해 그 나라로 들어간다는 보장도 없다. 오래전 한국을 떠나 국적이 바뀐 이민자가 또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간다면 한국 정부는 파악할 방법이 그다지 많지 않다. 여기에 불법 체류자까지 포함하면 정확한 규모를 산출하기란 더욱 더 역부족임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모든 한인회의 고민은 과연 우리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를 알 방법이 없을까에 머물러 있지만, 이민의 연혁이 오래되고 이민자 사회의 규모가 큰 곳일수록 이 같은 고민은 영구 미해결 과제로 남을 공산이 커진다.

  반면 한인 유권자의 수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게 동포사회의 중론이다. 살고 있는 나라의 국적을 취득한 시민권자들에게 선거 및 투표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나라 정부와 협력한다면 한국계 유권자의 총수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토마스 김 회장이 이끄는 샌프란시스코 한인회는 김 회장의 임기 내에 유권자의 수를 전수조사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공약으로 내걸고 실천을 앞두고 있다. 김 회장은 “3월부터 유권자 명단을 만들 것”이라며 “시민권이 있어 투표에 참가할 수 있는 명단을 확보하면 우리의 역량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이 유권자 명단을 전수조사 하는 도전에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선거 때마다 한인들에게 투표를 하자고 요구했지만 늘 말만 되풀이 했을 뿐 실제 동원 여부를 알 수가 없어 공허한 구호로 끝나곤 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의 ‘동원’은 한국 군사정권 시절의 강압적 투표몰이 또는 관변적 투표 동원행위가 아닌 ‘조직적으로 투표를 독려하는 행위’ 정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임. - 편집자 주 -) 

  이에 따라 샌프란시스코 한인회는 구체적인 전략을 세웠다. 김 회장은 “우리 한인들의 전체 인구들, 즉 동포 유권자의 수만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지역구부터 선출직 공무원을 당선시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세부 목표들이 차곡차곡 이행되면서 성취감을 얻다 보면 시의원과 주의원을 거쳐 언젠가 연방 상원의원을 배출하는 쾌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략이다.

  당장 한인회는 오는 11월에 열리는 샌프란시스코 시장 선거를 대비하기 위해 유권자의 명단을 확보할 계획이다. 이 명단들은 앞으로 첨삭을 거치며 재임기간 내에 최종 완성되는 것을 목표로 꾸준히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김 회장은 “굉장히 시간이 걸리는 사업인 것을 잘 안다”면서도 “연말 샌프란시스코 시장 선거를 겨냥하면 1차적으로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본다. 명단이 완성되면 한인 동포들이 어느 정도 투표권을 행사하는지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 왼쪽부터 토마스 김 한인회장, 이재열 새누리당 재외국민국장, 유영훈 진천군수, 김정웅 샌프란시스코한인회 서울연락소장, 염태영 수원시장
  토마스 김 회장은 이번 한국 방문기간에 서울과 세종, 부산 3곳에 한인회의 한국 연락사무소를 구축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한인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각종 민원 편의를 제공하고 교통, 숙박 등을 안내하기 위해서다. 한인들은 당장 재외국민 주민등록증 발급에 관한 안내부터 도움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오는 8월로 예정된 샌프란시스코 ‘한국의 날’을 홍보하고 후원단체를 유치하는 데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20일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 본지 인터뷰를 시작으로 29일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 김정해 한국미술협회 산하 현대민화활성위원회 위원장, 염태영 수원시장, 조규형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유영훈 충북 진천군수 등을 잇달아 만나 다양한 현안들을 논의했다.

  27일에는 새누리당 재외국민국을 방문, △재외동포재단의 제주도 이전 반대 △은퇴 후 역이민 한인들의 한국 내 연금 수령 시 금융 애로사항 개선 △이중국적 55세 하향 대선공약 이행 등의 현안을 이재열 재외국민국장과 의논하는 등 분주한 스케줄을 소화했다.

  토마스 김 회장은 “사람과 단체를 이끄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 중에 하나가 성취감이라고 본다”며 “미국 내 소수민족인 한인 동포사회가 조금 더 응집하면 한국계 정치인을 선출하는 재미에 빠질 것이고 그런 소소한 노력들의 결실은 결국 풍성한 열매가 되어 한인사회로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몸은 다소 피곤해도 이곳저곳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일이 즐겁다”고 덧붙였다. 

  허겸 기자 khur@dongponews.net 
               kyoumhu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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