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캄보디아 축구에 관한 오래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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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캄보디아 축구에 관한 오래된 기억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5.01.1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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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국에 계신 축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태국 방콕 주 경기장입니다.”
 
  축구아나운서의 흥분된 멘트에 마음을 졸이며 흑백 TV앞을 지키던 때가 있었다. 과거 70년대는 한국축구의 전성시대였다. 비록 아시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였지만, 그래도 태국 킹스컵, 메르데카컵 등 웬만큼 알려진 큰 규모 국제대회는 대한민국이 우승 단골이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우리보다 기량도, FIFA랭킹도 높은 일본은 당시에는 우리 상대가 되지 못했다.
 
  요즘 아시안컵 대회(AFC)가 한창 열리고 있다. 대회를 앞두고 최근,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의 아시안컵 첫 출전 이야기가 화제로 떠오른 적이 있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독일 분데스리가를 호령하던 축구영웅이 아닌, 차두리의 아버지로 더 유명한 차 감독은 지난 1972년 태국에서 열린 아시안컵 대회에 태국마크를 달고 첫 출전했다. 박이천, 이회택, 김호 등 당대 기라성같은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뛴 경기에서 불과 만 18세였던 차 선수는 A매치 최연소 출전에 최연소 골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하게 된다. 이 기록이 손흥민 선수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무려 수십 년이나 걸렸다. 당시 상대는 공교롭게도 캄보디아였고, 4-1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 경기는 한국-캄보디아 양국 간 치러진 첫 번째 공식A매치로 기록되어 있다.
 
▲ 축구전성기를 구가하던 1970년대 크메르공화국 시절 국기(좌측)와 오늘날의 캄보디아 국기 모습(우측) 비교
 
  그리고 이듬해인 1973년 ‘박스컵’으로도 알려진 제3회 박대통령컵 쟁탈 아시아축구대회가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서는 크메르공화국, 지금의 캄보디아가 돌풍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다. 비록 예선에선 대패했지만, 주최국 대한민국을 3위로 밀어내고 당대 축구강호 미얀마와 함께 공동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그 덕분에 70년대 크메르 축구의 저력을 기억하는 올드축구팬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축구경기 자체를 워낙 좋아하던 박정희 대통령이었지만, 명색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국제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컵을 놓치자, 경호실장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는 후문도 들려온다.
 
  그 이듬해 열린 제4회 대회 예선전에서는 캄보디아가 한국을 상대로 1-0 승리를 거두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승리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처음이자 마지막 공식승전기록이 되고 말았다. 1975년 크메르공화국 몰락과 동시에 캄보디아 축구는 국제 축구무대에서 완전히 종적을 감추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 캄보디아축구가 국제무대에 다시 발을 들여놓기까지 무려 수십년의 긴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 캄보디아 국가대표팀이 버마와 공동우승을 차지했을 당시 제3회 박대통령컵축구대회 포스터
 
  캄보디아 FIFA랭킹은 올해 1월 기준 179위다. 거의 최하위수준이다. 국력과 축구실력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가 몰락하거나 국력이 쇠퇴하게 되면, 축구 같은 스포츠가 국제무대에서도 내리막을 걷게 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인지 모르겠다.
 
▲ 캄보디아 국가대표팀 이태훈 감독은 프로축구 경기장을 수시로 찾아 우수선수발굴에 나서고 있다.
  현재 캄보디아 축구대표팀은 한국인 감독이  지휘봉을 쥐고 있다. 이태훈 감독이다. 캄보디아 축구는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구어낸 나라의 감독 영입을 통해  과거 화려했던 영광의 재현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이 감독 부임 후 국가대표선수들의 기량이 많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지만, 작은 규모의 국제대회에서조차 아직 이렇다 할 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의 축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높지만, 선수층이 여전히 두텁지 못하고 부상이 걱정될 만큼 경기장 그라운드 사정도 나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나라 캄보디아 선수들에게는 캄보디아 국가대표팀 차출은 인생 가장 큰 목표이자 영광이다. 선수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도 뜨겁다. 40도 육박한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묵묵히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그들의 모습이 신기해 보일 정도다.
 
  최근 통화한 이태훈 감독에 따르면, 올해 3월 27~30일까지 아시안컵 23세 이하 대표 지역예선전이 태국에서 치러진다고 한다. 태국, 필리핀, 북한과 한 조에 속한 가운데, 지난 인천아시안게임 준우승팀인 북한과 예선 첫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기량 차가 워낙 커서 솔직히 첫 경기는 크게 기대할 수준은 못 된다. 그렇지만, 경기결과를 섣불리 예측하거나 속단할 수는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축구공은 둥글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캄보디아 축구국가대표팀이 선전하길 바란다.

▲ 캄보디아 프로축구경기 모습

 

  박정연 재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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