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죽음 지켜보며 파독 근로자 현실 깨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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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죽음 지켜보며 파독 근로자 현실 깨달아"
  • 홍미은 기자
  • 승인 2014.12.23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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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제헌 재독한인총연합회 회장

▲ 유제헌 재독한인총연합회 회장

약 3만 5천 명의 재외동포가 거주하는 독일은 한인회도 활성화되어 있다. 50년 전 광부와 간호사로 파견된 한국인들이 전 지역에 고루 정착했으며, 일부는 독일인과 결혼해 지역사회에 뿌리내렸다. 그러다 보니 50여 가정만 있는 작은 마을에도 한인회가 있을 정도다. 모든 한인회의 움직임을 꿰뚫고 있는 유제헌 재독한인총연합회 회장은 행사도 많고 자주 모이는 탓에 바쁘다고 하소연하면서도 지역 사회와 연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한인회 하나하나가 소중하기만 하다.

“총연합회가 주관하는 행사도 많습니다. 연초에 있는 신년하례식은 공관과 상사, 한인회가 같이 신년을 출발하자는 의미로 열립니다. 삼성에서 지원하는 3·1절 우리말 겨루기 대회는 벌써 14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교민뿐 아니고 독일인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8·15 광복절 기념행사와 함께 열리는 체육행사와 야간문화행사는 전국에 있는 한인회 대항입니다. 총연합회 정관에 따라 2번 이상 연속으로 빠지면 회원권이 박탈되기 때문에 무조건 참여해야 합니다. 선수 구성이 안 돼도 참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올해로 44회를 맞이했고, 약 4천여 명이 모여 전통 있는 행사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인회가 많다 보니 1년 사시사철 행사가 많습니다. 행사가 많아서 바쁘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이 우리의 힘이니까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활기차게 돌아가는 독일 한인 사회에도 고민은 있다. 흔히 독일 하면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동포들도 선진국 수준에 맞는 삶을 살 거로 생각한다. 유 회장의 말을 빌리자면 이것은 오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동포가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가 과거에는 우리나라 경제에 비해서 많은 보수를 받았지만 아주 힘든 기피직종이다. 3년의 광부 생활을 마치고 자영업을 하기도 했는데, 노후준비를 못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연금을 일시불로 받아 한국으로 보낸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현재 70~80대 노인들은 연금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파독 근로자들이 수고했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대통령도 누누이 말씀하셨지만,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정책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어려운 분들이 한인회 참여도 못 하고 어려운 사정을 밖에서 알게 되는 걸 굉장히 꺼리다 보니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분들도 많습니다. 몸이 안 좋은데 홀로 사시는 분들은 밖에도 못 나가고 감옥과 같은 생활을 하십니다. 총연합회가 미약하지만, 사랑의 쌀 나누기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3차에 걸쳐 300여 분께 전달했습니다. 쌀과 라면, 고추장, 간장 등을 보내드렸죠. 많은 분이 감격하시고, 자기가 평생 살면서 이런 행복을 느끼기는 처음이라는 편지도 보내주시고 해서 아주 의미 있고 좋은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다. 짧은 일정이지만, 독일 동포들과의 간담회가 열렸다. 유제헌 회장은 이 자리에서 한인회를 대표해 세 가지를 부탁했다고 한다. 첫째는 베를린에 세울 예정인 한인회관 건립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베를린 한인회가 주축이 되어 회관을 마련하긴 했지만, 너무 열악한 상태다. 독일 동포들의 위상에 맞는 한인회관을 지어 활발한 교류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바람이다. 둘째는 실정에 맞는 독일마을 만들기다.

“파독 근로자는 한국에서 파견한 거 아니에요? 국가가 주도해서 파견했기 때문에 파독근로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파견했으면 불러들여야 한단 말입니다. 월남에 군대를 파견하면 다시 귀환하는 것처럼요. 한국으로 오고 싶은 분이 많은데 사정이 만만치 않아서 못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독일마을을 만들려면 정부가 주도해서 동포 실정에 맞게 만들어야 합니다. 독일문화와 한국문화 더 나아가서는 독일 기업과도 연계해야 합니다. 동포들이 한국에 와서 혜택을 받는 만큼 지자체도 이득이 얻는 정책을 만들어서 파독의 역사가 후세까지 연결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표적인 게 남해 독일마을인데 제가 가봤어요. 그분들의 단적인 말씀이 생활하기 힘들답니다. 나이가 드니까 병원도 가까워야 하고 여러 가지 편의시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지자체와 연결해 의논하고 있는데 쉽지 않습니다. 정부에서 관심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도와주어야 가능합니다.”

유 회장이 박 대통령에게 부탁한 마지막 세 번째는 1세대 복지 문제다. 양로원처럼 노후에 같이 모여 살 수 있는 시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와 공관은 양로원 건립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거의 포기한 상태다. 유 회장은 취임 후 계속 노인복지에 대해 강조했다. 2세를 위한 정책은 활발히 진행하고 있지만, 1세대 복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 취임과 함께 조금씩 거론되고 있는 양상이지만, 그전에는 메아리 없는 외침이었다.

“간호사로 오셨다가 결혼 안 하고 혼자 사시는 분이 있었어요. 독일 양로원에서 몇 년 동안 사셨는데 나이가 드시고 몸이 불편해지니 한국말도 잘 안되고 독일 말은 더 서툴렀습니다. 양로원 직원들이 저분은 독일어를 못해요 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가서 보니, 몸이 아파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데 아침에 빵을 주고, 점심에는 고기, 저녁에도 빵을 줘요. 그걸 보면서 아, 굶어서 죽는다는 말이 이거구나 그걸 느꼈어요. 드실 수가 없어요. 돌아가시기 2주 전에 그분 생신이셨습니다. 미역국과 죽을 조금 만들어 가고, 좋아하시는 몇 가지를 해갔습니다. 링거를 꽂은 채로 기운이 전혀 없으신데 좀 드시겠느냐고 하니까 끄덕끄덕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미역국도 떠드리고 굉장히 좋아하시는 연어회를 잘게 잘라서 드렸습니다. 정신이 조금씩 드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음 날 다시 갔어요. 전에는 사람도 잘 못 알아보시더니 그때는 정신을 좀 차리셨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아, 이게 먹는 것이 부실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실감했습니다. 그렇게 2주 뒤에 돌아가셨어요. 연고지가 없으니까 총연합회 주관으로 장례를 치러드렸습니다. 연고지가 없으면 독일 정부에서 화장해서 뿌려버리고 말아요. 그런 걸 보면서 우리 한인회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했고, 파독 근로자로 오신 분들의 사정을 더 이해하게 됐어요.

유 회장의 꿈은 작은 양로원 설립이 아니다. 독일 내에 한국문화마을인 코리아타운을 만드는 일이다. 그 안에 노인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고, 우리 기업과 유학생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근거지를 만들고 싶다. 하지만 자금이 문제다. 현실적으로 공익만 내세우면 실현하기 어려운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사후 관리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하면 비즈니스로 접근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판단했다. 거기에 사회 환원까지 챙기는 프로젝트가 되면 좋겠다는 것이 유 회장의 아이디어다. 갈 길이 멀다.

“동포사회를 표현하기를 갈 길은 먼데 해는 지고 있다는 표현을 써요. 연세들이 80세 이상 되시니까 이제는 거의 매일 돌아가세요. 그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길은 먼데 자꾸 해가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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