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칼럼> 아프리카 난민, 대한민국 국민이 되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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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칼럼> 아프리카 난민, 대한민국 국민이 되다…②
  • 차규근 변호사
  • 승인 2014.12.1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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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서 계속

▲ 차규근 변호사(법무법인 공존)
그러나 당시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는 길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국은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했지만, 협약 가입 후 10년 동안 난민인정자는 2001년에 인정받은 에티오피아인 1명뿐이었다. 두려움도 있었다. 면담관 앞에서 본국에서의 반정부 활동을 얘기하면서 잊었던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본국의 가족들과 친구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간의 기억들을 애써 살려 면담관에게 얘기하고 난 후 씨쎄는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것들이 사라지고 몸에서 진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 격언의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해야 할까? 씨세는 자신이 할일을 다하고 이제 한국 정부의 결정만을 담담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난민 심사과정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씨쎄의 불안감은 커져 갔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도 아직 결정이 되지 않았으니 기다리라는 대답만 반복되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난민 신청이 불허되는 것이 아닌가? 내가 한 얘기가 믿어지지 않았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 속이 복잡하고 생각이 많아졌다. 마침내 2005년 9월 대전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당신에 대한 난민심사결정이 내려졌으니 와서 결정통보를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인정인가? 불인정인가?” 물어보았으나 "전화로 알려줄 수는 없으니 직접 오면 알 수 있다"는 말뿐이었다.
 
기숙사에서 대전출입국관리사무소로 가는 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난민으로 인정이 되었을까? 불인정되었을까? .... 왠지 불길한 생각이 번쩍 들었다. 심사기간이 오래 걸렸던 것도, 좀 전의 담당자의 차분한 목소리도 마음에 걸렸다. 이런저런 단상을 뒤로 한 채 담담하게 통보를 받은 후 차분하게 다음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대전출입국관리사무소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담당자가 미소를 지으며 씨쎄에게 말을 건넨다. “축하합니다. 난민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이 갑자기 정지되어버린 듯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정말입니까?”라는 질문에 담당자는 아무 말 없이 ‘난민인정통보서’를 씨쎄에게 보여 준다. 뭐라고 얘기하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가 않는다. 담당자는 어안이 벙벙한 씨쎄를 이끌고 체류 창구로 씨쎄를 안내한다. 체류창구 담당자는 씨쎄에게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F-2라고 적혀 있는 외국인등록증을 건넨다. 2005년 9월 21일, 씨쎄의 젊은 시절의 희생이 인정받는 날이었다. 에티오피아를 떠나 온 지 4년, 난민신청을 한 지 3년 만이다.
 
난민 인정을 받자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 주었다. 난민인정이 되면서 행운이 뒤따랐다. 자동차 부품 업체에 취직해 근무하면서 성실함을 인정받아 중견 간부로도 승진하게 되었다. 반정부활동으로 중단해야 했던 공부에 대한 욕심도 다시 생겼다. 호서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한 뒤 경영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직장에서 가까운 대학교 학과 사무실을 무작정 찾아가 "여기서 공부하고 싶으니 나를 받아달라"고 했다. 인자하신 교수님께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격려하며 자신이 지도교수를 맡겠다고 했다.
 
자신을 받아 준 한국에 감사하며 한국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한국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국어 공부는 전부터 열심히 했으나 국적을 얻는 것이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었다. 한국어는 너무 어려웠지만 씨쎄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법무부의 사회통합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어뿐 아니라 한국 역사와 한국 문화를 열심히 공부했다. 마침내 1년여 만에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하여 대한민국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씨쎄는 그 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처음으로 투표에 참가하였다. 선거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자신의 모국의 모습을 떠올리자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씨쎄는 귀화증서를 받으면서 했던 선서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나는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받은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앞으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법과 질서를 준수하며 나라의 번영과 발전에 기여할 것을 선서합니다.”
 
씨쎄가 신청한 일반귀화는 통상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리나, 법무부는 난민에 대한 귀화 절차상 편의제공을 권고하고 있는 난민협약의 정신을 존중하여 6개월 가량 단축된 씨쎄에게 1년 만에 귀화허가를 하였다. 우리 정부의 이런 조치에 대하여 국제난민기구(UNHCR) 제네바 본부는, 아시아에서 2번째 귀화사례로서 난민보호에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하였다(아시아에서 첫 번째는 필리핀에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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