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별 러한 그림사전' 펴낸 이진영씨 - "고려인 2세들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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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별 러한 그림사전' 펴낸 이진영씨 - "고려인 2세들에게 바칩니다
  • 경향신문
  • 승인 2004.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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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04-19 () 00 M3면 판 1858자    스크랩    
  
    
도서출판 미즐북스의 이진영 사장(45)은 요즘 웬만한 무역상사 영업맨보다 더 바쁘다. 지난 3월 내놓은 '테마별 러한 그림사전'을 알리기 위해서다. '얼떨결에' 출판사까지 차려 만든 것으로 5,500단어에 손으로 직접 그린 3,000컷의 세밀화가 담겨 있다. 러시아어뿐 아니라 영어.중국어 등을 포함해 외국어 그림사전으로는 처음이다.
사전이 빛을 보기까지 거의 5년의 세월과 3억원이 들어갔다. 1999년 사전 제작에 손대기 전, 광고물 제작사를 운영하던 그는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했다. 그러나 사전을 만드는 동안 경기불황까지 겹쳐 15명의 직원이 2명으로 줄었고, 사무실 임대료를 절약하기 위해 집을 사무공간으로 쓰게 되면서 가족이 흩어져 살게 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림사전을 만드는 일이 이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시작하지 못했을 거예요. 몰라서 용감했던 거죠. 하지만 충분히 가치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고려인 2세에게도 꼭 필요한 사전이니까요."
처음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후배 부부의사연을 전해듣고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선문대 러시아학과 유학수 교수와 외대 등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홍정현씨 부부는 평소 "학생들을 가르치며 쓸 수 있는 제대로 된 사전이 없다"며 "출판사들이 다들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 했다. 부부는 러한사전 출간에 뜻을 모았다. 이왕이면 우리말로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는 단어를 그림과 함께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러한 그림사전'을 기획했다. 내로라하는 출판사를 다 돌아다녔다. 그러나 "기획은 참 좋고 정말 필요한 사전이긴 한데 우리가 출판하기는 어렵다"며 한결같이 거절했다. 러시아어가 국내에서 인기없는 언어이고 게다가 제작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였다.
"모든 학문의 가장 기초인 사전마저 가치보다는 상업적 잣대로 홀대받는 데 화가 났습니다. 의미있는 일이라면 내가 한번 해보자, 그런 심정으로 시작했죠."
당장 3,000컷의 그림부터 해결해야 했다. 컴퓨터그래픽이나 일러스트레이션과도 영역이 달라 그림 그릴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6개월이 걸려서야 한국화 전공자인조수진.황정희씨를 발굴했다. 두 사람은 서울 청계천의 헌책방을 뒤져 고서를 찾아내는 등 정성을 들였다. 편찬은 유교수 부부가 맡았다.
"한권의 사전을, 그것도 그림을 넣어 만든다는 게 이처럼 방대한 작업인 줄 몰랐습니다. 그동안 두세차례는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어요. 경기가 나빠지면서 기존 사업도 힘들어져 버티기 힘들었으니까요."
지난해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 300쪽 분량 컬러판 사전의 판권을 팔려고 했지만 중간에 일이 틀어졌다. 결국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출판에 이르렀다.
올해는 우리나라와 러시아가 수교한 지 140주년이 된다. 그림은 놔두고서라도 5,500단어 분량이 실린 러시아어 사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블라디보스톡 총영사관에서는 고려인 2세의 우리말 교육을 위해 이 사전이 꼭 필요하다는 요청서를 재외동포재단에 보내왔다. 우선 블라디보스톡의 극동대에 재학중인 고려인 2세들에게 공급을 추진중이다.
"일제시대 나라를 잃으면서 강제이주까지 당한 고려인 1세는 모국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어요. 2세대 교육에 관심도 많고요. 그런데 사전은 고사하고 기본 교재도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고 들었습니다. 고생은 했지만 도움될 수 있는 그림사전을 만들기 잘 했구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사장은 앞으로 인도어.브라질어 등 현재 외면받고 있는 언어의 사전을 만들 계획이다. '미래 강대국(브릭스.BRIC's)'으로 불리고 있지만 정작 이들 나라의 언어를 공부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사전조차 없는 게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
글 김희연 기자egghee@kyunghyang.com
사진 김영민 기자viol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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