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산책] 고조선과 위만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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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고조선과 위만조선
  • 이형모 발행인
  • 승인 2014.12.1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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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과 대부여

 

▲ 이형모 발행인

고조선은 BC2333년에 단군왕검께서 아사달에 개국하셨다. 그 이후 43대 단군이 1908년간 통치했다. 43대 물리단군이 BC426년 사냥꾼 ‘우화충’의 반란으로 ‘해두’로 피난하여 죽었다. 백민성 욕살 ‘구물’이 어명으로 군대를 일으켜 이듬해 3월에 우화충의 반란을 진압하고 여러 장수들의 추대로 장당경에서 제44대 구물단군으로 즉위하여 나라 이름을 ‘대부여’로 바꿨다. 고조선의 종말을 대부여가 이어받아 4대 188년을 통치한다.

 

이암 선생의 ‘단군세기’에서는 대부여의 4대 고열가단군을 47대 단군으로 기록하고 있다. 대부여를 고조선의 연장으로 보는 것이다. 고조선의 삼한-진한, 번한, 마한-은 대부여에서는 삼조선-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으로 바뀐다. 이미 허약해진 대부여를 대신하고자, BC239년 4월 8일에 군대를 일으킨 북부여의 ‘해모수단군’은 먼저 자신의 거사를 도운 수유후 ‘기비’를 번조선 왕으로 봉했다. 수명을 다한 ‘막조선’은 북부여(진조선)에 흡수된다.

이듬해 3월 고열가단군이 천제를 마치고 오가와 더불어 선위의 뜻을 밝히고 이튿날 제위에서 물러났다. 이후 오가의 연정체제로 6년 동안 나라가 운영되었다. 해모수가 오가를 회유하여 대부여의 ‘공화정치’를 폐지하고 마침내 BC232년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북부여의 단군으로 즉위한다. 이후 6대 단군이 181년간 북부여를 통치한다.

북부여와 위만조선

해모수에 의해 번조선 왕으로 임명된 기비의 아들 ‘기준’이 연나라에서 망명해 온 위만에게 속아 번조선을 빼앗기고, 위만으로 부터 손자 ‘우거’까지 3대가 86년 동안 번조선을 통치한 것이 ‘위만조선’이다. 번조선은 연나라(북경남쪽)와 접경한 지역이다.

"위만조선은 BC108년에 한무제가 보낸 군대에게 패망했고, 한무제는 드디어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사마천의 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사기’에는 한사군의 위치와 이름이 없다. 그러면 한사군의 정체는 무엇인가? 한사군은 없다. 소위 낙랑, 현도, 진번, 임둔이라는 4군은 ‘사기’ 원문에 나오지도 않은 도깨비 유령 4군인 것이다.

여러 기록을 종합하면, BC108년 한무제가 보낸 군대는 졸본부여의 ‘동명왕’에게 참패하고 물러갔다. 격노한 한무제는 패전의 책임을 물어 육군사령관 ‘순체’ 그리고 무제의 사신 ‘위산’과 태수 ‘공손수’ 3인을 모두 기시(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로 처형했다. 수군사령관 양복은 폐서인 됐다

그러면 위만조선의 우거왕은 누구와 전쟁해서 패망했는가? 한단고기를 번역 주해한 임승국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사기> 조선열전의 기록은 우거를 죽인 것은 한무제 ‘유철’의 군대가 아니고 번조선 원주민 ‘최’에 의해서 살해되었고 우거 다음의 반항자 성기를 죽인 것도 번조선 원주민들이었다.”

“우거와 성기를 살해하고 우거 정권을 타도하여 위만조선의 땅이 혁명 주모자 네 사람 ‘참, 협, 음, 최’에 의해 4군으로 갈라져 <참의 홰청, 협의 평주, 음의 추저, 최의 날양>으로 분립한 것이다.”

고조선은 대부여와 북부여로 이어졌고, 북부여의 서쪽 영토인 번조선을 빼앗은 위만이 그 지역을 3대 86년간 통치하다가 원주민들의 반발로 패망했다. 우거가 죽은 BC108년 동명왕은 졸본부여의 왕으로 즉위하여 한 무제의 군대를 막아낸다. 22년 후 북부여를 접수하고, 북부여의 5대 ‘고두막단군’으로 즉위하여 27년을 더 통치한다. 그리고 6대 고무서단군이 재위 2년 만에 죽고, BC58년 고무서단군의 사위 ‘고주몽’이 22세에 고구려를 개국하게 된다.

북부여의 지방정권으로 86년 간 존속했던 위만조선을, 1908년 간 존속했던 고조선인 것처럼 가르쳐서는 안 된다. 북부여 4대 고우루단군 때 침공해온 한 무제에게 고조선이 패망했다고 가르치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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