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린의 검은 눈동자 "어꾼 찌란!"
상태바
마일린의 검은 눈동자 "어꾼 찌란!"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4.12.10 11: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실명위기 캄보디아 소녀, 한국서 '희망의 빛' 찾다

한때 실명위기에 처했던 가난한 캄보디아의 12살 어린 소녀 마일린이 한국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잃어버렸던 시력을 되찾았다.

마일린은 최근 서울 순천향대학병원에서 무사히 각막이식수술을 받은 뒤, 지난 6일(현지시각) 사랑하는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마일린이 먼 한국까지 날아와 수술을 받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 마디로 오랜 기다림과 인내의 연속이었다.

지난 여름, 선교단체가 운영하는 현지병원을 통해 한국의 한 실명재단과 간신히 연결되었지만, 생각보다 행정절차가 더뎠고 몹시 까다로웠다. 마일린은 4년 전의 각막 손상으로 인해 거의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였던 터라, 남은 한쪽 눈마저 나빠질 위험이 있을 만큼 당장 치료가 시급한 상태였다. 하지만 마일린 가족은 담당자로부터 '도움을 줄 수 없겠다'는 답변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 가닥 작은 희망을 품고 초조하게 기다리던 소녀와 가족들은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 마일린의 부모는 딸아이의 눈수술을 위해 재산목록 1호인 오토바이까지 파는 등 빚을 내어 베트남까지 갔지만, 결국 비싼 수술비 때문에 포기하고 돌아와야만 했었다.
 
마일린의 사연을 접한 기자는 안타까운 마음에 본지에 기사('실명 위기 캄보디아 소녀에게 희망의 빛을' 8월 20일)를 썼고, 곧바로 재미동포 엄석민 씨로부터 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그는 마일린의 각막이식수술 비용을 보조하고 싶다고 했다. 메일에는 엄 씨의 친구 박준원 변호사 가족이 한국체류비용을 부담하기로 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소녀 가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곧바로 한국 갈 채비를 했다. 비자발급을 위해 평소 알고 지내던 사회적 기업 (주)아시안허브(대표 최진희)에 도움을 청했다. 고맙게도 다음 날 아침 은행재정보증을 비롯한 각종 서류를 바로 보내주었다. 초청 관련 서류를 들고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으로 향했다. 딱한 사정을 접한 대사관 관계자 역시 통상 일주일 정도 소요되는 서류를 다행스럽게 접수 이틀여 만에 처리해주었다.
 
▲ 서울 나들이 나온 캄보디아 소녀 마일린과 엄마 폴리. 지난 9월 초 한국 도착 후 수술을 앞두고 잠시 서울 나들이에 나선 두 모녀
 
소녀 마일린과 엄마 폴리 두 모녀는 그렇게 해서 극적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을 수 있었다. 처음 타는 비행기가 불안했지만, 잃어버린 시력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 두 모녀는 마냥 들떠 있었다.
 
지난 9월 10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예약한 서울순천향병원으로 곧바로 향했다. 변동원 순천향병원 부원장의 도움 덕분에 병원비 부담도 많이 덜 수 있었다. 담당주치의도 적합한 각막을 찾으면 곧 이식수술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 사이 한국 측 후원자 가족들과도 만났다. 박준원 변호사 가족과 정지곤 사장, 백윤석 목사 등 친구들은 두 모녀가 한국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가족 이상으로 아낌없는 배려를 해주었다. 게다가 본지 뉴스를 통해 마일린 가정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천주교 후원단체인 빈첸시오회 ‘신앙의 등불(회장 김종훈)’에서도 본사를 직접 방문, 두 모녀에게 성금을 직접 전해주기도 했다('한국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땅입니다' 10월 1일).
 
9월 말, 드디어 이식용 각막이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수술날짜가 잡히면 모든 게 끝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런 기쁨도 잠시, 곧바로 실망스런 소식을 접했다. 필리핀에서 구입한 각막이 검사결과 B형 간염에 오염되어서 사용할 수 없다는 소식이었다.
 
다시 열흘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병원 측에서 국내 다른 병원에 수소문해 각막 2개를 구했다고 알려주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다음날 검사결과 2개 각막 모두 이식용으로 부적합한 것으로 판명 났다.
 
날짜를 세어보니 모녀가 한국에 온 지도 벌써 한 달여가 넘었다. 이제는 다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늘 밝은 미소를 잃지 않던 엄마 폴리의 표정에도 어느새 그늘이 생겼다.
 
▲ 캄보디아 실명소녀 마일린. 4년 전 각막에 이상이 생겨 한쪽 눈을 잃을 뻔했던 캄보디아 소녀 마일린(12)이 한국과 재미동포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시력을 되찾았다.(지난 8월 수술 전 모습)
 
10월 중순께 병원 측에서 기다리던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이번에는 미국에서 각막을 공수해왔다고 소식이었다. 심장마비로 최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66세 미국인 노인의 각막이라고 설명해주었다. ‘혹시나 이번에도?’ 반신반의하며 오직 검사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전화벨이 울렸다. 수술용으로 적합하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캄보디아에 사는 마일린의 가족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소녀의 아버지도 울먹거리고 84살 친할아버지도 손녀딸이 수술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에 목이 메는 듯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지난 10월 15일 마일린이 수술실에 들어갔다. 후원자 엄석민 씨와 샌프란시스코 그루터기 교회가족들도 함께 수술이 성공하기를 기도했다.
 
5시간여 만에 수술실 문이 열렸다. 집도의는 성공적인 수술이라고 답해주었다. 지구 반대편 미국 그리고 캄보디아에까지 이 소식이 전해졌다. 모두가 안도하며 환호했다. 엄석민 씨도 "한국, 캄보디아, 미국이 협력하는 가운데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며 기뻐했다.
 
퇴원 이후 정기통원치료검사를 받으며 두 모녀는 박 변호사 가정에서 두 달 가까이 생활을 했다. 아직 완치된 것은 아니지만, 수술한 눈의 시력은 0.3 정도다. 사물도 가까이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식별이 가능하다. 담당 주치의는 각막 수술을 '재활치료'라고 표현할 만큼 시간을 두고 점진적인 검사 관리를 통해서 0.7 정도까지 정상 시력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각막을 꿰맨 실밥도 풀어야 하고 염증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해 현재로써는 1년여 정도 정기검사도 필요한 상태다. 내년 2월 부작용방지를 위한 진료를 위해 다시 한국에 가야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다음번 항공비와 체재비까지 후원자들이 그동안 모은 성금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 캄보디아 소녀의 각막이식수술을 도와준 한국 후원자들 실명위기에 처한 소녀 마일린의 각막이식을 도와준 박준원 변호사(오른쪽 두 번째) 등 한국 후원자들이 지난 6일 인천공항까지 배웅을 나와 정들었던 두 모녀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그루터기 교회 성도들이 십시일반 성금 1,600달러를 모아 마일린의 아버지에게 보내주었다. 그동안 딸 치료를 위해 오토바이까지 파는 등 빚에 시달렸던 마일린 가정이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반까지 마련해준 셈이다.
 
수술을 마친 마일린의 표정은 최근 한결 밝아졌다. 콤플렉스 때문에 학교 가는 것조차 두렵고 힘들어했던 사춘기 소녀가 자신감을 되찾은 것이다. 복용 중인 약물 부작용으로 얼굴이 붓고 급격히 살이 쪘지만,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일반 증상이라고 병원 측은 설명해주었다.
 
그런 가운데, 마일린과 폴리 두 모녀는 지난 6일 가족들이 기다리는 캄보디아로 돌아갔다. 기자도 모녀와 동행했다. 늦은 밤 프놈펜 공항에 무사히 도착, 두 모녀는 입국장 밖에서 기다리던 가족들과 3개월여 만에 반가운 해후를 했다. 소녀의 아버지는 돌아온 아내와 딸아이를 부둥켜안았다. 딸아이 마일린의 검은 눈동자를 보는 아버지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고, 그의 입에서는 "어꾼 찌란" 고맙다는 말이 되뇌듯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