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대참사 딛고 다시 열린 캄보디아 물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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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대참사 딛고 다시 열린 캄보디아 물축제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4.11.1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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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전국에서 모인 400여 팀의 보트 경주대회

▲ 금년 물축제 보트경주대회에는 전국에서 펼쳐진 지역 예선을 통과한 245개 팀이 참가했다. 예전보다 적은 숫자지만, 4년 만에 열린 대회라서 열기는 더 뜨거웠다.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캄보디아에서는 물축제가 열렸다. 크메르어로 '본 옴똑'이라고 불리는 이 물축제를 즐기기 위해 수십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수도 프놈펜으로 몰려들었다. 이 물축제는 음력 10월 보름달이 차오르는 때를 기점으로 메콩강에서 톤레삽강으로 흐르던 물이 역류하여 바다로 되돌아가는 시기에 열린다.

이 기간 중에는 인기 가수들과 코미디언들을 총동원해 다양하고 화려한 볼거리와 이벤트를 펼친다. 그중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보트경주대회'다. 해마다 전국에서 지역 예선을 거친 400여 개 팀이 참가한다. 대부분 마을 주민들끼리 자발적으로 팀을 구성하지만, 유명 정치인의 후원을 받아 급조해서 참가하는 팀들도 더러 있다. 일부는 맥주나 통신회사 등 후원기업 광고를 붙이는 조건으로 팀을 구성해 대회에 참가하기도 한다.

축제에 참가하는 배의 길이는 대략 30미터. 50여 명이 승선하며, 선두와 선미에는 정령을 모시는 작은 제단이 놓인다. 향과 쌀, 바나나, 코코넛 등 제물을 얹은 모습이 가장 일반적이다. 지네처럼 기다랗고 날렵한 유선형 배 모양에 용이나 물고기 문양 또는 수호정령을 형상화한 디자인도 시선을 끈다. 뱃머리에 앉은 지휘자의 구령 소리에 십여 개 노가 한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황톳빛 강물을 가르는 모습도 장관이다. 힘찬 구호를 외치며 쏜살같이 물살을 치고 나가는 모습에서는 옛 크메르 전사들의 위용과 기상마저 느껴진다.

보트경주는 두 팀씩 조를 나눠 축제가 진행되는 3일간 치른다. 기록을 계산해 순위를 매기고 마지막 날에 최종 우승팀을 가린다. 우승팀은 국왕으로부터 검과 투구를 선물로 받는다. 우승한 배는 마을 주민들에게는 더없는 최고의 영광이다. 고향으로 돌려보내진 후에는 주민들의 단합을 도모하고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마을 사원에 고이 모신다. 마을 주민들 중에는 우승한 배는 정령이 깃들어 있으며, 악귀와 질병으로부터도 마을 주민들을 보호해준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비록, 금년에는 예년보다 훨씬 적은 245개 팀이 참가했지만, 보트경기에 대한 현지인들의 관심과 인기는 예전 못지않았다. 수도 프놈펜 톤레삽강 양쪽 제방은 보트경주를 보기 위해 몰려든 관중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특히, 축제 기간 내내 왕궁 주변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 캄보디아 물축제 선두 지휘자의 구령에 맞쳐 힘차게 노를 젖는 모습. 옛 앙코르 제국 전사들의 기상마저 느껴진다.

캄보디아 물축제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2세기 앙코르제국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자야 바르만 7세가 이끄는 해군이 톤레삽강과 메콩강에서 벌인 참파족과의 해상 전투에서 승리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11월에 연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16세기 무렵 크메르왕이 메콩강 지류인 바삭강 지역 세력과 연합하여 이웃 적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생긴 일종의 우호친선을 위한 경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 외에도 전투나 전쟁과 무관하게, 캄보디아인들의 삶에서 절대 떼려야 뗄 수 없는 물과 땅의 정령에게 감사하고 쌀농사를 짓기 위해 풍부한 물을 달라는 소망을 전하고자 하는, 종교적인 의미에 뿌리를 둔 축제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물축제 기간에는 많은 현지인들이 촛불을 단 종이배를 만들어 강물에 띄우고 소망을 빌기도 한다.

신년 새해(쫄츠남)와 우리나라 추석에 해당되는 쁘쭘번과 더불어 캄보디아 3대 명절 중 하나인 물축제(본 옴뚝)는 지난 수세기 동안 거의 거르지 않고 해마다 치러졌다. 그러나 이번 물축제 만큼은 예외적으로 4년 만에 열렸다. 지난 2010년 물축제 기간 중 발생한 대형 인명참사 탓이다. 관중들이 한꺼번에 다리 위로 몰리는 바람에 무려 353명이 압사한 불행한 사건이었다. 그 이듬해는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뜻에서, 그 후로는 노로돔 시하누크 국왕의 별세와 더불어 총선 등 여러 가지 정치적인 사안이 겹치면서 물축제 행사가 연거푸 취소됐었다.

1970년대 킬링필드 종식 이래 일어난 가장 큰 인명 대참사라는 오명을 의식해서인지, 훈센정부는 4년 만에 치르는 금년 물축제를 앞두고 안전 사고와 치안에 각별히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축제를 앞두고 군인과 경찰, 의료 인력 등 1만 명을 수도 프놈펜에 추가로 배치해 혹시 모를 안전 사고를 대비했다. 그러나 물축제를 불과 며칠 앞둔 지난 10월 29일 국왕 즉위 10주년 기념행사로 열린 불꽃놀이 중 불발된 폭약이 군중 가운데 떨어져 22살 대학생이 죽고, 7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현지 언론 등에선 이런 안전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 온통 4년 만에 열리는 물축제에만 관심이 쏠린 듯했다. 이런 들뜬 축제 분위기를 반영하듯, 축제 시작 사나흘 전부터 지방 각지에서 올라 온 구경꾼들을 실은 버스와 트럭들로 인해 프놈펜 시내도로가 막히기 시작했다. 톤레삽강 주변도 축제를 준비하거나 즐기려 몰려든 현지인들로 축제 전부터 북적거렸다.

▲ 지난 2010년 물축제 당시 다리위 압사사고로 353명이 사망한 불행한 사건이 있었다. 사진은 시내 병원 영안실 앞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지인들이 사망자 명단을 확인하고 있는 모습.

차로 3~4시간 이상 걸리는 뽀삿주 시골 마을에서 왔다는 21살 젊은 남성 라이훈씨도 그런 구경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물축제 구경을 위해 축제가 열리기 이틀 전에 트럭 뒷자리에 몸을 실은 채 프놈펜까지 올라왔다고 했다.

숙식은 어디에서 해결 하냐고 묻자 그는 "첫날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잤는데, 방값이 너무 비싸 나머지 날은 시내 사원에서 잤다"며 "가지고 온 돈은 10만 리엘(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2만5000원) 정도인데, 차비와 식비로 조금 부족한 편이지만, 그래도 괜찮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늦은 밤 시내 왓 프놈 등 불교사원과 공원 주변에는 돗자리를 펴고 잠을 자는 현지인들이 많았다. 물축제 기간 동안 지방에서 올라온 손님들이 몰리면서 게스트하우스는 이미 동이 났고, 일부는 바가지 상술로 방값이 터무니없이 올라 공원 주변이나 강변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이들도 상당수였다.

축제 기간 중 이틀 동안 낮에는 멀쩡하다가도 밤이 되면, 장대비가 두 시간 넘게 쏟아져 일부 도로는 물에 잠기기까지 했다. 공원에서 노숙을 하던 수백여 명에 이르는 시골 사람들이 비를 피해 과연 어디서 잤는지 그 후로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시골에서 온 라이훈씨처럼 물축제에 열정적인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과 달리, 정작 프놈펜에 사는 사람들은 다소 심드렁한 표정들이었다. 대부분 프놈펜 시민들은 이 기간 중 집에서 쉬거나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조용한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물축제를 하루 앞두고 만난 자동차 중개상 께오 손나릿(42)씨도 "프놈펜이 외지 사람들로 너무 붐비고 복잡해서, 그냥 멀리 외곽 휴양지에 이틀 정도 다녀올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캄보디아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물축제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언뜻 보면 지루해보기까지 하는 비슷비슷한 보트경주 영상장면을 TV 채널을 돌리며 재방송까지 찾아보는 현지인들도 많았다.

특히, 톤레삽강과 메콩강이 만나는 왕궁 앞 제방은 축제기간 내내 보트경주를 지켜보기 위해 몰린 관중들로 붐볐다. 주변 공원도 현지 음식을 파는 노점상들과 섭씨 35도가 넘는 뙤약볕에 아랑곳하지 않고, 돗자리까지 편 채 앉아서 가족들과 음식을 나눠 먹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 캄보디아인들에게 물축제는 단순한 축제 이상의 의미를 지닌 듯하다. 예선경기에서 탈락했음에도 3일간 펼쳐진 대회를 끝까지 구경하며 즐기는 현지인들이 많았다.

보트경주에 선수로 참가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축제 둘째 날인 6일(현지시각) 보트경주 예선에서 이미 탈락한 쩌은 나린(43)씨는 마지막 날까지 남아서 다른 팀들의 경주를 구경하고 있었다. 현지 주류 회사가 공짜로 나눠주는 미지근한 캔맥주를 맛있게 들이키며, 그는 고향 동료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노래도 부르며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타께오 주에서 온 그는 "경기야 그저 운이 나빠서 진거고, 이번에 축제를 즐긴 것만으로도 충분히 에너지를 보충했다"라며 낙천적이고 행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마지막 결승 경기가 치러진 지난 7일(현지시각), 해가 어슴푸레해진 저녁 무렵, 드디어 최종 우승팀이 가려졌다. 노로돔 시하모니 국왕이 왕궁앞 선착장에 마련된 단상에 모습을 보인 가운데, 우승팀과 입상자들이 관중들의 열광적인 환호와 박수 속에 상을 받았다. 멀리 캄퐁참 주에서 온 팀이 27분 10초로 대망의 우승을 차지했다. 2등을 한 다케오 주 출신 팀과는 불과 4초 차이였다. 다른 입상자도 등수에 상관없이 환호하며 즐거워했다. 메콩강 왕궁 앞에 집결한 수십여 척의 배들이 종료라인 붉은 배에 매단 붉은 리본을 자르는 것으로 축제가 공식 종료되었음을 알렸다. 동시에 수백여 개의 풍선이 하늘 위를 수놓았다.

어둑해진 밤하늘에 불꽃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고, 국왕과 정부기관을 상징하는 화려한 불빛의 문양을 단 배들이 톤레삽 강변을 유유히 흘러가는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물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바탕방에서 온 농부 피은 삼랑(54)씨는 화려한 불꽃이 메콩강변에 펼치지는 모습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너무 아름다워요. 우리 고향에서는 이런 불꽃은 구경하기 힘들어요. 내년에도 기회가 된다면 꼭 프놈펜에 다시 와 보고 싶어요."

▼ '본 옴똑' 캄보디아 물축제

▲ 4년만에 열린 물축제를 즐기는 캄보디아 사람들 경기에서 초반에 탈락했음에도 축제기간 내내 자리를 떠나지 않고 다른 팀을 응원하며 축제 자체를 즐기는 현지인들이 많았다.
▲ 캄보디아 물축제 캄보디아 왕실 문장의 문양을 본따 만든 화려한 조명을 단 배가 톤레삽강에 유유히 떠가며 아쉬운 축제 마지막 밤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 캄보디아 물축제 불꽃놀이 모습 축제 마지막 날 피날레를 장식하는 불꽃놀이가 국왕과 수만명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왕궁앞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모습.
▲ 물축제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3일간의 물축제를 마치고 다음 날 아침 고향으로 돌아가는 캄보디아 사람들. 좁은 트럭에 몸을 싣고 고단한 여정을 다시 시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축제기간 얻은 활력 때문인지 표정만큼은 다들 밝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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