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잉어 두 마리
상태바
<기고> 잉어 두 마리
  • 윤희경 시인
  • 승인 2014.10.27 17: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몇 년 전, 시드니 남서쪽에 위치한 피크닉포인트를 지나는 길이었다.
안성 연리지와 닮은 저수지가 있어 반가운 마음에 차를 세웠다. 수면 위로 노랑꽃잎이 달린 수초가 잡힐 듯 널리 퍼져있었는데 여간 평화로워 보이는 게 아니었다. 멈춘 발길이 내처 물가까지 내려가 잠시 그 평화 옆에 서 있자니 문득 한줌을 뽑아 집으로 가져가선 이 기쁨을 길게 누려보고 싶어졌다.
 
마침 주변에 지나가는 이도 없고 한두 뿌리 가져간대서 풍경이 망가질 것 같지도 않았다. 긴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두어 뿌리를 끌어당겨 움켜쥐었다. 그리고 물기가 마르지 않도록 종이로 감아 싸고 비닐봉지에 담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뒤편에 있는 소담지 위에 띄웠다. 소담지는 내가 지어준 못 이름이다. 못 위에 뜬 수초를 즐기는 한편 오리들의 등쌀에 수난을 당하는 어린 물고기들의 피난처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렇게 수초가 적응을 잘 하는 동안 가끔 내려다보며 입꼬리가 올라가곤 했는데 그것도 잠시, 일 년쯤 지나면서부터 못의 평화가 깨지기 시작했다. 수초가 점점 번식하여 물고기들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토록 번식력이 빠른 줄 짐작을 못하고 호기심에 두어 뿌리 걷어온 것이 후회되었다. 수초가 수면을 거의 덮어갈 무렵쯤, 며칠을 궁리하다가 직접 들어가서 손으로 거둬내기로 의논을 했다. 나무배를 하나 만들고 갈고리 두 개로 몇 사람이 모여서 걷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종일 걷어냈는데도 생각과는 달리 끝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일만 벌어졌다. 조그만 나무판 위에 두 사람이 서서 갈고리로 수초를 잡아당기는 중에 서로 기우뚱거리다가 균형을 잃고 한길이 넘는 물에 풍덩 빠져버린 것이다. 온통 못물을 뒤집어 쓴 채 허겁지겁 땅 위로 기어 올라왔으니 수초는 사람까지 잡을 판이었다. 문득 세관원들이 왜 그토록 외국에서 들여오는 물건들을 엄중히 검사하고 철저히 규제를 하는지 이해가 갔다. 이틀을 고생하고 나서야 군데군데 잔뿌리만 남기고 못이 훤해졌다. 그 후 가끔 내려가 주변을 서성거리며 물속을 들여다보니 수면이 덮여 오리들의 출입이 금지된 동안 잉어 가족이 엄청나게 늘어나 있었다. 맑은 수면 밑으로 손가락만한 유어들 수백이 몰려다니고 있는 것이 보였다. 먹다 남은 식빵을 찢어서 던져주고 잠시 기다리면 새가 먹이를 쪼아 먹듯 잽싸게 조금씩 베어서 달아난다.
 
애써 수초를 걷어준 보람이 있다고 기뻐하던 것도 또 잠시, 낌새를 눈치 챈 오리 한두 마리가 출입을 시작하더니 며칠 되지도 않아 아예 상주를 하고 종횡무진 염치도 없이 들락거리며 유어들의 사냥을 시작했다. 나중에 왜가리까지 동원되는 날엔 아예 잠수를 해 물속을 쑤시고 다녀도 발만 구르며 안타까워할 뿐 방도가 없었다. 오리를 매번 쫓아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잉어를 이사 시킬 수도 없지 않는가. 일 년 쯤 지나고 나니 가장자리에 남겨져있던 수초가 또 다시 자라 예전처럼 수면을 덮기 시작했다. 내가 잉어를 볼 수 없듯이 오리도 출입이 막혔다. 나도 오리도 막막해져 못 주변을 서성거리다 한동안 잊어버리고 살았다. 세관 검사 못지않게 과유불급이란 말이 실감 나는 때였다.지난주에 비가 억수로 내렸다.
 
소담지에도 물이 넘치니 평소에 가장자리가 말라서 늪처럼 보이던 곳에 간이 휴식처마냥 물이 찰랑거리기 시작했다. 마침 비가 개여 아침 풍경을 베란다에서 내려다보고 있는데 오마나! 그 얇은 물가로 지난 2년여 동안 기대만 했을 뿐 보지 못했던 뭔가가 술렁술렁 움직이고 있었다. 긴가민가해서 망원경을 가져다 확인해보니 빨간 색 잉어 두 마리였다. 오리에게 몰살당하지 않고 용케 잘 도망 다닌 모양이다. 수초가 덮여있는 동안 기대 이상으로 자라 손바닥보다 훨씬 컸다. 미물도 구사일생 살아가는 비법이 있는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먹구름 같던 수초 밑에서 한 생명으로 살아 꿈틀대고 있었다. 저 수초들을 다시 걷어내고 잠시나마 맑은 물속에 노니는 잉어를 볼 것인가 아니면 오리의 출입을 봉쇄 시킨 채 상상만 할 것인가! 즐거운 고민이 시작 되었다. 왜냐하면 저들이나 나나 모두에게 생존이기 때문이다.
 
소담지의 여건이 이민자로 살고 있는 이곳 실제상황과 흡사했다.
호주정부의 이민 쿼터는 정책에 따라 느슨해지기도 하고 조여지기도 한다. 이민성의 손아귀는 호주의 경제와 외교의 영향아래 쥐락펴락하므로 이 나라에 와서 살기로 작정한 많은 이들은 소담지의 먹구름 수초와 같은 까다로운 자격요건으로 인해 포기하기도 하고 턱걸이를 해서 겨우 통과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이후의 삶이 수월한건만도 아니다. 오리의 등쌀처럼 세금문제나 자녀들 학비문제로 언제나 목줄을 당기는 갈등을 느끼며 살아갔다. 그대로 살자니 영주권이나 생활고에 걸려 힘든 상황을 뚫고 나가는 길이 만만하지 않고 그렇다고 공부하는 자녀들을 데리고 돌아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수년이 흐르면서 우여곡절 끝에 비자문제를 해결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일들에 익숙해질 때쯤이 되면 아이들도 스스로 적응해나가기 시작한다. 절로 몸집이 불어나지는 않지만….
 
빨간 잉어는 그런 곳에서 살아남은 용사들이다. 기다리면 자동으로 내려오는 인스턴트커피가 아니라 원두를 갈아서 종이깔때기를 집어넣고 수증기와 함께 내려오는 기다림의 끝을 경험하는 것이다. 한 줌의 따스함을 쥐고 견딜만한 일상으로 가는 고단한 여정은 안과 밖의 적절한 무게를 지고서 통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나가다 아름다운 풍경이 있으면 차를 세우고 다가가서 바라보자. 그리고 그 곳에 스미기를 원하면 조용히 팔을 뻗고 한 두 줌 잡아당겨보자. 오체투지의 첫걸음이 시작되는 곳이며 생존이 아름답게 흔들리며 피어나기 시작하는 곳이다
 
윤희경 시인(한국문학협회 회원)
(시인은 전남 나주에서 출생하여 1996년 호주로 이민, 현재는 시드니에 거주하고 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