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에 뺏긴 집과 땅 돌려달라!" 토지수탈로 몸살 앓는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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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 뺏긴 집과 땅 돌려달라!" 토지수탈로 몸살 앓는 캄보디아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4.10.23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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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의 시위집회 들끓지만 훈센 정부는 뒷짐만

▲ 프놈펜 시내중심가로 나와 팻말과 현수막을 들며 시위를 벌이는 캄보디아 농민들

캄보디아에서는 재벌들의 토지수탈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가난한 농민들의 시위집회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일(현지시각)에도 수도 프놈펜 시내중심가에서는 살던 땅을 되돌려 달라는 농민들의 시위집회가 있었다. 수년째 봐 온 풍경이라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이날 시위 모습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유독 마음이 아프고 가슴 저려왔다.

밤새 10시간 넘게 먼지 풀풀 날리는 트럭 뒷자리에 몸을 싣고, 그 먼 프레아 비히어주에서 올라왔을 것이 분명한 남루한 옷차림의 부녀자들이 이른 아침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품엔 어린 아이들이 곤히 잠에 빠져 있었다.

이들은 “수십 년간 살아온 한두 칸짜리 집과 작은 텃밭마저 하루아침에 재벌들에게 강제수탈당해 당장 살 곳마저 잃게 되었다”며 훈센총리가 직접 나서 달라고 호소까지 했다.

마이크를 잡고 목청을 높이던 한 여인이 갑자기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그러자 시위대 주변이 금세 울음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그동안 겪은 남모를 수모와 설움에 북받친 듯 부녀자들이 따라 울었고, 잠에서 깬 아이들도 덩달아 울기 시작했다. 10살 남짓한 어린 소녀가 누군가로부터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가족들과 살던 내 집을 돌려 달라. 나는 학교에 가고 싶다”며 소녀는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고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한 여인이 마이크를 잡고 눈물의 호소를 하고 있다.

카메라를 들고 취재에만 열중하던 십 여명의 기자들 모두 그 순간 숙연해졌고, 시내진압에 나선 경찰들도 잠시나마 헬멧 사이로 뻘쭘한 표정을 지으며 이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결국, 이날 오후 삼륜오토바이 택시 ‘툭툭’을 앞세운 시위대 일부가 바리케이트까지 쳐진 총리 관저를 향해 돌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직접 훈센총리에게 탄원서를 제출하고자 함이었다. 물론, ‘무리한 시도’라는 것을 이들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100여 미터 남짓 총리관저 앞까지 시위대가 진입을 시도하자, 전기봉까지 무장한 헌병과 경찰들이 이들을 막아섰다. 주변에서 감시하던 프놈펜시 소속 경비 수 십명도 순식간에 합세했다. 밀고 밀치는 가운데 곧바로 양측간 충돌이 일어났다. 비명소리와 고성이 교차하며 서로 뒤엉켰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 눈물 흘리는 캄보디아 소녀. 이 어린 소녀에게 비친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니 가슴속이 답답해왔다.

진압경찰의 곤봉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한 여인의 모습이 군중들 다리 틈사이로 시야에 들어왔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 누군가 뒤에서 기자의 어깨를 짖눌렀다. 경찰이라 직감하는 순간, 또 다른 누군가 다시 밀치는 바람에 균형을 잃고 그만 카메라를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지며, UV필터가 박살이 났다. 다행히 다치지도 않고 카메라도 큰 고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후 나머지 결정적인 순간들은 사진으로 담아내지 못했다.

불과 5분 여 남짓한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날 저녁 현지 언론들은 경찰들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부녀자를 포함한 시위대 17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토지 수탈에 항의하는 농민들의 시위가 프놈펜 중심가에서 자주 일어나지만,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농민들의 토지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은 시간이 갈수록 전국단위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들이 힘없는 농민을 상대로 소송에서 패했다거나, 정부로부터 감사나 범법행위 조사를 받았다는 소식 역시 들어 본 기억이 없다.

이런 상황은 재벌과 결탁한 부패한 군경찰, 공무원도 ‘부지기수’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훈센정부의 토지개혁정책이 결국 아무런 실효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부정부패와 무능으로 얼룩진 30년 독재정권이 과연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 그 말로가 어떨지, 그저 앞으로 지켜볼 일만 남았다.

아무튼 간에 오직 양육강식의 논리만이 여전히 사회를 지배하고, 온갖 부조리의 틈바구니 속에 최소의 생존권마저 보장받을 수 없는 이 나라의 딱한 현실이 한없이 서글플 뿐이다. 가족이 살던 집을 돌려 달라며 눈물 흘리던 소녀의 눈망울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그 어린 소녀의 눈에 비친 세상은 아름답기는커녕 어른들의 이기심과 탐욕으로 가득한 생지옥일지도 모른다.

갑자기 고국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부조리하고 모순된 사회나 집단은 어디든 있기 마련이다.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 부조리의 정도는 지극히 상대적일 뿐더러 겉으로 드러나는 지 그렇지 않은 지 차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OECD 선진국가임을 줄곧 자처해온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은 과연 어떤지. 우리의 현주소는 어디이며, 우리는 정말 잘 살고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는, 답답하면서도 우울한 그런 하루였다.

▲ 재벌들에 의해 강제로 빼앗긴 땅과 집을 돌려달라고 울부짖는 캄보디아 농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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