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캄보디아 체육대회는 참으로 특별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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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캄보디아 체육대회는 참으로 특별했네”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4.10.2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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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민기업주, 현지인 근로자 앙금 씻어 낸 의미있는 이벤트로 남아

▲ 캄보디아 한인회는 지난 18일(현지시각) 프놈펜 올림픽스타디움에서 '한마음 체육대회'를 열었다. 이번 체육대회에는 현지노동자들, 교민기업주 등 수백 여명에 달하는 인원이 참가해 대성황을 이뤘다.

“낙엽은 떨어지고 쌓이고 또 쌓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

80년대 말 최루탄 냄새 폴폴 날리던 대학가에서 인기를 끌었던 민중가요 ‘사계(四季)’의 가사 일부다. 벌써 20년도 넘은 오래된 기억이지만, 지금도 집 근처 봉제공장을 지날 때마다 늦은 저녁시간 귀가를 서두르는 여공들의 축 처진 어깨를 보고 있노라면 문득 이 노래가 떠오르곤 한다.

봉제업은 캄보디아 주력산업이다. 수출품목 1위로 종사자 수만 대략 60만명이 넘는다. 그런데 금년 초 이 나라에 불행한 사건이 있었다. 노동자들이 임금을 올려 달라 시위를 벌이던 중 4명이 진압경찰이 쓴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불균형에 대한 불만과 분배문제를 둘러싼 계층간 갈등이 극에 달했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금년도 최저임금 100불선에서 사태는 마무리됐다.

시나브로 임금인상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시위와 파업도 많이 잦아들었고, 공장 내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제대로 들리기 시작한 지도 반년이 훌쩍 넘었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요즈음, 이제는 모든 게 정상화된 것 같이 보인다. 적어도 겉으로 봐선 그래 보인다.

하지만, 지금도 솔직히 나아진 것은 별로 없다. 피를 흘리며 투쟁(?)한 덕에 명목상 급여가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여전히 퍽퍽하기 때문이다. 물가는 그 사이 재빠르게 올랐고, 집주인들도 덩달아 집세를 올려버렸다. 그 탓에 벌써부터 내년도 최저임금을 177불까지 올려달라는 노조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봉제공장 사장들의 입에서도 깊은 한숨소리가 쏟아져 나온 지 이미 오래다. 이러다간 다 죽는다고 아우성들이다. 해마다 오르는 인건비를 감당 못해 일부 공장은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온다.

더 큰 문제는 심각한 노사갈등을 겪으면서 노동자들도, 사용자측인 봉제공장 사장들도 모두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다. 겉으로는 서로를 향해 웃지만, 가슴 속 앙금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보이지 않은 불신의 벽까지 생겨났다.

노동자들 입장에선 그렇게 힘들게 회사를 위해 일해도 임금을 더 이상 올릴 수 없다는 사장님 말 한마디가 서운한 게 사실이고, 오랫동안 믿었던 직원이 갑자기 회사 유리창에 돌을 던지고 고성을 지르는 모습에 배신감을 느끼는 건 한국인 고용주측도 마찬가지다.

▲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현지 근로자들

그런 가운데 캄보디아 한인회(한인회장 양성모)가 올해 아주 특별한 행사를 마련했다. 한국 교민들뿐만 아니라 현지인 노동자들도 함께 어울리는 한마음축제를 연 것이다. 그동안 서로에게 쌓인 응어리를 풀자는 게 주최측의 기획의도였다.

지난 18일(현지시각) 수도 프놈펜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행사에는 지난해에 이어 현지인 노동자들이 대거 초청받았다. 올해에는 봉제공장뿐 아니라 금융회사와 CSC 등 경비업체 직원들도 대거 참가했다. 이날 행사장은 실내체육관 바닥이 꽉 차고, 참가인원만 수백 여명에 달할 정도로 대성황을 이뤘다. 특히 노동부 장관까지 참석해 축사를 할 만큼 이례적으로 현지 정부측도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TVK 등 현지 방송도 전국에 이를 생중계했다.

이날 하루 동안 줄다리기를 비롯해 다양한 종목 경기가 펼쳐졌다. 특히, 배구경기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손에 땀을 쥘 정도로 박진감이 넘쳐났고, 자기팀 선수들을 격려하는 응원 목소리로 실내체육관이 들썩거렸다. 교민 고용주들과 현지노동자들이 함께 어울려 목이 터져라 응원하며 마음껏 웃고 떠들었다. 다들 힘든 공장생활에서 생긴 스트레스를 풀고, 서로의 가슴 속에 쌓인 앙금도 털어내는 모습이었다.

함께 어울리는 가운데 행사에 참가한 교민들도 웃음꽃이 활짝 폈다. 참으로 보기 좋은 진풍경이었고 여러 면에서 의미 깊은 특별한 체육대회였다. TV, 자전거, 선풍기 등 상품도 푸짐했다. 행사취지에 공감한 대사관측도 예년보다 더 많은 재정적 도움을 주어 여러모로 풍성한 행사였다.

다만, 아쉬움도 적지 않은 행사였다. 행사를 앞두고 일부 교민들 사이에선 불만의 목소리도 컸다. 교민잔치가 아닌 현지인들만을 위한 잔치라는 지적이었다. 봉제회사와 아무런 상관없는 교민들 사이에서 특히, 그런 불만이 많았다. 그 탓에 교민들의 참여도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행사를 주관한 한인회측이 기획준비 단계에서 이 점을 소홀히 한 점은 솔직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 현지인 근로자와 교민기업주가 승리의 환호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시각을 달리해 보면 한인회 탓만으로 돌리기도 뭣하다. 함께 어울리는 데 익숙하지 못한 우리교민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회사에서건 심지어 가정에서조차 가정부와 운전기사로 현지인들을 고용하다보니, 일종의 주종관계 비슷한 관계가 자연스럽게 성립되었고, 우리 마음 속에 어느 순간부터인가 스스로 선민의식이 싹터 그런 건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여하튼, 행사운영상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한인회가 다른 전 세계 어느 동포사회도 하지 못한 아주 특별한 행사를 무사히 잘 치러냈다. 박수 받아 마땅한 일이다. 중국, 일본, 프랑스 등 다른 국가 커뮤니티에도 신선한 자극제인 동시에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다만, 주마가편(走馬加鞭)의 마음으로 일침하자면, 내년부터 현지인과 한국교민들이 서로 어울리는 그런 체육대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민들이 행사에서 소외되었다는 느낌을 주어서도 안될 일이다. 운영의 묘만 잘 살린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함께 어울린다는 취지에서 현지인과 교민들이 한 팀을 이루는 행사진행방식 등도 고민해볼 만하다. 나름 시행착오도 겪고 그만큼 노하우도 쌓은 만큼 아무쪼록 내년에는 더욱 알차고, 말 그대로 우리 교민, 캄보디아 국민 모두가 하나되는 ‘한마음 체육대회’가 열리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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