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종훈 장관 후보자와 소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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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종훈 장관 후보자와 소현세자
  •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 승인 2014.10.0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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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부에서 공직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후보자가 참으로 많다. 많은 경우 인사청문회가 부적격 후보를 걸러내는 순기능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때론 인사 검증라인의 검증능력 부족, 당사자들의 무능력이나 부적절한 처신, 언론의 야만성, 여야 간의 극심한 정쟁 등이 합작하여 적격 후보자들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든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 중 참으로 안타까운 사례가 박근혜 정부 들어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지명되었던 김종훈 씨의 자진 사퇴 경우이다.

당시 김종훈 씨의 장관 지명은 새 정부 조각(組閣)의 ‘아이콘’이었으며, 필자는 그 지명에 전율을 느끼기 까지 하였다. 새로운 정부가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여 몇 십 년 후의 먹거리를 개척해 나갈 것이라는 국민적 기대가 창조경제라는 정책 키워드와 함께 고조되는 시점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수성가(自手成家)한 우리 교포가 최초로 장관에 임명되어 그 역량을 펼쳐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

김종훈이 누구인가? 가난과 차별을 극복하고 유리 시스템즈라는 벤처기업을 성공시켜 억만장자가 되었으며 미국의 자존심으로 꼽히는 벨연구소(Bell Laboratories)의 최초의 외부인이자 최연소 수장이 된 인물이다. 맨 주먹으로 부와 명성을 거머쥐어 아쉬운 것 없던 그가 조국에의 봉사를 위해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는 대가로 1,000억 원이 넘는 국적포기세(expatriation tax)까지 감수하겠다는 각오까지 하며 장관 후보자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야권과 일부 언론은 그를 이방인 취급하였다. 특히 통합진보당의 모 의원은 김 후보자의 미국 정보기관인 CIA의 외부 자문위원과 동 기관과 관계된 벤처투자 회사의 이사 이력을 두고 마치 미국 중앙정보국과 깊숙이 연관된 인물로 간주하며 그의 국가관을 폄하하는 보도 자료를 생산하였고, 일부 언론은 이를 여과 없이 퍼 날랐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미국에서 김종훈 씨가 쌓은 경력은 자신의 탁월한 전문성을 인정받아 미국 사회에서 소수자인 한인(韓人)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일구어 낸 자랑스러운 성과이다. 많은 불이익과 가족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조국에 봉사하고자 했던 사람의 국가관을 공격한 당시 세력들의 국가관이 법의 심판대에 올라 있는 지금 상황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필자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비운의 왕세자 소현세자가 생각 났다. 소현세자가 어떤 인물이었나? 아버지 인조와 집권 세력인 서인들이 주장한 친명배금(親命排金) 정책 실패의 대가로 인질로 끌려가 청나라가 던져 준 허허벌판 심양관을 손수 일구어 부(富)를 축적하고 주청(駐淸) 대사관의 역할까지 해 낸 사람이었다. 또한 당시 청나라에 들어와 있던 서구 문물을 접하고 일생 동안 추구한 성리학적 유교관의 한계를 깨달아 조선의 부국안민(富國安民)을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한 선각자이었다.

조선으로 돌아 온 소현세자를 아버지 인조를 비롯한 조정이 어떤 대우를 하였는가? 그의 앞선 생각과 조국에 대한 헌신을 알아주기는커녕 자신들의 정권 보호를 위해 이방인이자 배신자로 취급하여 죽음으로 내몰았다. 최첨단 문명에 대한 식견과 탁월한 외교 감각까지 갖춘 글로벌 인재가 왕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조선 왕조는 그렇게 날려 보내었다.

재외동포 700만 명 시대이다. 세계 각지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우리 동포들이 날로 늘어 가고 있다. 외국에서 성공의 경험을 가진 인재들이 조국의 발전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우선 이중국적에 대해 좀 더 관대해져야 한다. 현행 국적법에는 이중국적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조항이 있다. 실정법 위반이 아니라면 공직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우리 동포들의 국적을 가지고 시비를 걸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국적이 아니라 건전한 국가관의 보유와 일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의 구비이다.

다음으로는 공직 후보자들에 대한 프라이버시 보호가 필요하다. 소셜 네트워크에 떠도는 뒷담화 수준의 소식과 해당 업무나 자격과 무관한 개인사에 대한 보도는 국가 발전과 언론 자신의 품격을 위해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

현재의 신상 털기 식 인사청문회에 대한 개선도 시급하다. 작년 새누리당을 비롯한 정치권에서 논의 된 방안대로 인사청문회를 정책능력 부분과 도덕성을 부분을 나눈 다음 개인과 관계되는 사안은 비공개로 검증될 수 있도록 하는 인사청문회법 개정이 단행 되어야 한다.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더라면 조선의 근대화가 일본 메이지 유신 보다 200년이나 앞당겨 질 수 있었다는 것이 역사가들이 하는 말이다. 먼 훗날에 박근혜 정부 시절의 김종훈 씨가 장관이 되었더라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달라졌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소현세자의 경우 보다는 덜 아쉬웠으면 하는 것이 지금의 바람이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재외동포들 중 제2의 김종훈이 나타나 대한민국에 봉사할 기회가 한껏 부여되길 기대한다.

<※외부 필진의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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