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보디빌더가 꿈꾸는 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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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보디빌더가 꿈꾸는 나라는?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4.08.29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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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페이스북 덕분에 동남아 최고모델 된 한인아내 둔 캄보디아 보디빌더

 

‘캄보디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뭘까?

추측컨대, 젊은 세대들이라면 아마도 ‘가난’, ‘킬링필드’, ‘앙코르와트’ 정도. 기성세대들이라면 ‘시하누크 국왕’과 200백만 학살의 주범 ‘폴 포트’ 정도 아닐까 싶다.

해마다 약 40만 여명의 한국관광객들이 앙코르와트를 찾는 바람에 이 나라이름이 우리에게 다소나마 익숙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가난하고 헐벗은 나라’라는 이미지는 좀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한국방송이나 신문 등 언론매체를 통해서 비춰지는 캄보디아의 모습도 일반인들의 상상수준을 크게 뛰어 넘지 못한다. 가난과 무기력한 삶에 찌든 사람들, 아니면 최근에 생겨난 이미지이기는 하지만, 최저임상 인상을 위해 몸부림치는 가난한 공장노동자의 절규 정도...

도식화된 그런 단어들 속 이미지로 가득 찬 이 나라에서 기자가 처음 ‘보디빌딩’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기자 역시 무척 놀랐다. 10년 넘게 이 나라에서 살아온 기자에게도 생소한 단어였기 때문이다. 지인으로부터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씨엠립에서 보디빌더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처음에는 믿기지 않아 다시 되묻기까지 했다.

▲‘가난하고 헐벗은 나라’라는 이미지로 도식화된 그런 단어들 속 이미지로 가득 찬 이 나라에서 기자가 처음 ‘보디빌딩’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기자 역시 무척 놀랐다. 10년 넘게 이 나라에서 살아온 기자에게도 생소한 단어였기 때문이다. 지인으로부터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씨엠립에서 보디빌더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처음에는 믿기지 않아 다시 되묻기까지 했다.

보디빌딩 행사소식을 듣고 관련내용을 찾는 과정에서 한 가지 더 놀라웠던 사실은 최근 캄보디아 보디빌딩 협회를 창립한 인물이 기자도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직접 현장을 찾아가 눈으로 확인해보기로 했다. 마침 캄보디아 보디빌딩협회가 주관하는 행사가 열린 시내 모 호텔 행사장에 갔다.

그런데, 행사장문을 들어서는 순간, 직접 눈으로도 보고도 믿기지 않은 풍경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입구쪽 로비에서는 평소 보아오던 캄보디아인의 체형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우람한 근육질의 보디빌더 20여 명이 무대출연을 앞두고 열심히 근육을 '펌핑'(시합 직전에 근육을 키워 최대한 돋보이게 하는 몸풀기 운동)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온몸에 근육을 두드러지게 보이는 오일을 잔뜩 바르는 선수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보디빌딩 행사소식을 듣고 관련내용을 찾는 과정에서 한 가지 더 놀라웠던 사실은 최근 캄보디아 보디빌딩 협회를 창립한 인물이 기자도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리 충 교수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직접 현장을 찾아가 눈으로 확인해보기로 했다.

곧바로 본 행사가 시작되었다. 이 행사는 다음달 9월 6일 개최되는 캄보디아 전국단위 보디빌딩대회 홍보를 위한 기자회견의 성격도 띄고 있었다. 벌써 올해로 4번째 치르는 대회라고 사회자가 설명해주었다.

가운데 단상에 앉은 창립멤버들이 한명씩 소개되자, 참석자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 한가운데는 눈에 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리 충 교수였다. 캄보디아 앙코르 보디빌딩 협회(ABBA) 창립자이자, 앞에서 잠시 언급한 기자의 오랜 지인이기도 하다. 수년 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 모습은 여전했다. 아니 검정색 자켓을 입은 모습은 더 세련되고 멋있어 보였다.

대회목적과 취지에 대한 기자회견이 끝난 후 보디빌더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 위로 건장한 보디빌더들이 한명씩 차례로 모습을 나타냈다.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 만큼 엄청난 근육을 가진 보디빌더들의 군더더기 없는 멋진 공연이 펼치자, 객석에서 함성과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숨을 죽이며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여성관객들도 많았다. 현지방송과 언론들도 취재열기가 뜨거웠다. 연신 사방에서 카메라 후레쉬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한시간 가량 진행된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은 그의 아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아내 역시 현지 빌드 브라이트대학교에서 한국어교수로 재직중인 석미자 교수다. 수년 동안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 가끔 기자와 안부를 주고 받는 아내 석 교수도 이 사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아 기자는 이 부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행사가 끝난 후 로비에서 앙코르보디빌더 창립자인 리 충 교수를 만났다. 오래간만의 해후였다. 워낙 바쁜 유명인사라서 여기저기 찾는 손님들이 많아 잠시 짬을 내기도 어려웠다. 그간 안부도 묻기 전에 급한 마음에 그가 보디빌더 협회를 창립하게 된 동기와 목적부터 물었다.

그는 “캄보디아 보디빌더들의 우수성을 널리 소개함으로서, 캄보디아가 가난하다는 이미지를 극복하고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협회를 만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근육질 몸과 달리 부드러운 미소와 진지하면서도 차분한 목소리는 예전 그대로였다.

그는 현재 보디빌더 협회 회장인 동시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젊은 30대 교수이기도 하다. 그는 대학에서 IT 디자인을 전공했다. 마케팅경영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때 부업으로 그는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독특한 문양의 옷을 판 적도 있을 만큼 타고난 미술적인 재능도 가지고 있다.

그는 현직 대학교수이자, 캄보디아 보디빌더 창립자인 동시에 수년 째 캄보디아 뿐만 아니라 싱가폴, 말레이시아에서도 현재 맹활약중인 A급 모델이기도 하다.

▲그는 현재 보디빌더 협회 회장인 동시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젊은 30대 교수이기도 하다. 그는 대학에서 IT 디자인을 전공했다. 마케팅경영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때 부업으로 그는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독특한 문양의 옷을 판 적도 있을 만큼 타고난 미술적인 재능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은 그의 아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아내 역시 현지 빌드 브라이트대학교에서 한국어교수로 재직중인 석미자 교수다. 수년 동안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 가끔 기자와 안부를 주고 받는 아내 석 교수도 이 사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아 기자는 이 부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가 갑작스럽게 동남아 지역에서 제일 유명한 모델이 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물었다.

“아주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됐다. 페이스북에 내 사진을 그냥 올렸을 뿐이다. 그런데, 싱가폴의 한 패션모델기업에서 연락이 왔다. 사진모델 테스트를 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그 일로 계기로 지금의 모델로 일하게 됐다.”

그동안 그가 찍은 화보사진들을 그의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찾아보았다. 그가 모델로 등장하는 화보사진이 줄잡아도 수백장이 넘을 듯 싶었다. 남성 피트니스 잡지는 기본이고, 유명 남성 언더웨어를 비롯해 다양한 잡지에 표지모델로 등장하고 있었다.

▲그동안 그가 찍은 화보사진들을 그의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찾아보았다. 그가 모델로 등장하는 화보사진이 줄잡아도 수백장이 넘을 듯 싶었다. 남성 피트니스 잡지는 기본이고, 유명 남성 언더웨어를 비롯해 다양한 잡지에 표지모델로 등장하고 있었다.

그는 일년에 3~4번 정도 싱가폴 등 주변국가로 출장을 간다고 말했다. 이번주도 화보집촬영을 위한 10일간의 싱가폴 출장이 잡혀있다. 모델료로 리 교수가 얻은 수익은 캄보디아 일반대학졸업자 월급의 수 십배가 넘는다. 우리 돈으로 쳐서 상당히 큰 개런티를 받는 셈이다.

그런데 그가 번 돈이 쓰이는 용도가 놀랍다. 그는 현재 캄보디아 현지 시골 초등학교 교실건립과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보디빌더협회 발전기금으로 100% 헌납한다.

보디빌더 협회장이라는 신분 때문에 회계상 오해를 받을까 회계 등 돈관리는 철저히 협회 이사진에게 맡겨버렸다. 돈 문제에 관한 한 전혀 개입하지 않기 위함이다. 빈부격차가 심한 이 나라에서 더욱이 가진 자들의 사회적 책임이나 기여도가 현저히 낮은 이 나라에서 정말 보기 드문 케이스가 아닐 수 없다.

아내인 석 교수는 “남편이 사진모델로 번 돈을 가난한 시골학교와 협회 발전을 위한 기금으로 전액 헌납하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서운한 적도 있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러나, “워낙 남편이 사회봉사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하기에, 이제는 그저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리 충 교수는 “캄보디아 사람들은 킬링필드를 겪으면서 자기정체성마저 잃어버렸다. 가난한 캄보디아가 스스로의 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기정체성의 확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려운 보디빌더 선수들과 시골학교 건립에 애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한국과 같은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도와주고 나눠주고 있듯이 우리도 이제는 받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나눠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부자가 된 후에는 나눠줄 수 없다. 지금 나눌 때 부유함은 우리 곁에 와 있을 것이다.”

현재 캄보디아 선수로 등록된 전체 보디빌더들은 약 40여명 정도다. 거기에 지망생수까지 합치면 100명이 약간 넘는 수준. 캄보디아 보디빌더들의 직업은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사실 생계가 어려운 보디빌더도 많다. 아직까지는 ‘보디빌더’라는 직업으로 생계를 꾸려나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 교수는 그들의 생계도 일부 돕고 있다.

현재 리 충 교수가 직접 운영하는 체육관에서 훈련하는 보디빌더들이 가장 많이 가진 직업은 호텔 피트니스 센터 트레이너이다. 보디빌더 지망생들이 현재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씨엠립은 특히 4~5성급 고급호텔이 즐비한 만큼 직장을 구할 확률도 높다. 최근에는 수도 프놈펜 특급호텔 책임자들까지 이 곳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실력있는 헬스 트레이너들을 뽑기 위해서다.

불과 수년전까지만 해도 고급호텔 피트니스 센터는 현지에 거주하는 유럽인들의 전용 운동공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최근 회원권 가격도 비싼 헬스클럽에 등록한 캄보디아출신 부자들도 꽤 많이 늘어났다. 여전히 빈부격차가 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캄보디아에도 돈 많은 중산층이 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따라서 헬스 트레이너들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캄보디아 출신 빌더들은 평균소득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 힘들다. 호텔측과 직접 연봉계약을 하기 때문이다. 다만, 대략 월 5~600불 이상은 될 것이라고 한 관계자가 귀띔해주었다. 캄보디아 봉제근로자 최저 임금이 100불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고액인 셈이다.

보디빌더 선수들은 퇴근후 저녁시간대에 리 교수가 운영하는 훈련장에 모여 몸만들기에 한창이다. 당장 9월초에 열릴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이 대회에는 체급별로 1위부터 5위까지 상금이 주어진다. 1등 우승자에겐 300불, 우리돈 약 30만원이 주어지고 5등에겐 50불 등 차등 지급된다.

대상인 ‘미스터 앙코르(Mr. Angkor)’로 선발되면 300불이 추가상금으로 지급된다. 선수들이 늦은 밤까지 모기와 싸워가면서 땀을 흘리고, 열심히 훈련에 매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승을 하면 조건이 좋은 호텔에서 취직도 할 수 있어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자신은 물론이고, 가난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보장된 길이 열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리 충 교수에게 앞으로의 꿈을 물어봤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보디빌더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자 한다. 세계대회 입상을 통해 국제사회가 갖고 있는 캄보디아의 부정적인 이미지도 씻어주고 싶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가난에 찌든 캄보디아 어린아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더 많은 학교와 교실도 지어주고 싶다.”

그의 소박하면서도 멋진 꿈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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