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 위기 캄보디아 소녀에게 희망의 빛을...
상태바
실명 위기 캄보디아 소녀에게 희망의 빛을...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4.08.20 13: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왼쪽 눈 시력 점점 잃어... 각막이식 해야 하지만, 거액 치료비가 문제

 

▲12살 캄보디아 소녀 러으 메이린(가명)이 실명위기에 처해 있다. 매일 아침 학교 가는 메이린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여전히 짠하다. 사춘기가 다가올수록 불안감은 더욱 커져간다고. 딸아이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마음에 상처를 입어 삐뚤어지거나 극단적인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12살 캄보디아 소녀 러으 메이린(가명)은 오늘도 학교 가는 길이 별로 즐겁지 않다.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라서 오늘도 친구들이 행여 따돌릴까 두렵기 때문이다. 눈 때문에 몸의 균형을 잃어 걸음걸이도 시원찮다. 또래 아이들처럼 마음 놓고 운동장에서 뛰어놀 수도 없는 처지다. 친구들과 함께 마음껏 뛰놀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미소가 예쁜 메이린의 왼쪽 눈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한 건 4년 전이다. 어느 날 메이린은 한쪽 눈이 아프다고 했고 부모는 메이린을 동네 병원에 데리고 갔다. 그런데 말이 병원이지, 실제로는 무면허 돌팔이 의사가 운영하는 간판도 없는 허름한 곳이었다.

하루 이틀 쯤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그 무면허 병원에서 처방해준 안약을 쓴 후로 상태가 오히려 나빠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알이 빠질 듯한 통증마저 느껴지기 시작했다. 너무 아파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다른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을 만도 한데, 메이린의 부모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이다. 식당 주방장으로 일하는 메이린의 아빠가 매달 버는 월급은 200달러 남짓. 집세와 전기세 등 기본적인 생활비조차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다. 딸아이가 힘들어 하는 모습은 두 가난한 부모에게는 큰 고통이었다.

9시간 장거리 버스를 타고 도착한 호치민

그동안 메이린의 부모는 동네 보건소에서 나눠주는 이름 모를 안약만 열심히 받았다. 그렇지만, 나라에서 운영하는 보건소조차 약이 떨어지는 일이 허다해 빈손으로 돌아온 날도 많았다. 그 사이 메이린의 시력은 극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간신히 4~5m 정도 거리에 있는 물건을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불과 20~30cm 내 사물만 간신히 식별할 수 있다. 왼쪽 눈에 비해 괜찮았던 오른쪽 눈의 상태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어두운 저녁에는 그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딸아이가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메이린의 아빠는 올 초 어렵게 사채 빚을 냈다. 메이린 가족에게는 재산목록 1호나 다름없던 중고오토바이도 팔았다. 그동안 어렵게 저축한 돈 400달러와 빌린 돈 800달러를 합쳐 1,200달러를 들고 이웃나라 베트남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난생 처음 외국을 나가기 위해 여권까지 만들었다. 여권을 발급받는데만, 무려 한 달이 넘게 걸렸다. 3년짜리 여권발급 비용으로 135달러나 들었다. 병원 치료비를 쓰기도 전에 메이린의 아빠가 버는 월급의 2/3 가량을 쓴 셈이다.

이른 새벽 9시간 장거리 버스를 타고 메콩강을 건너 베트남에서 가장 큰 경제도시 호치민에 당도했다. 그래도 캄보디아보다는 병원시설이나 의료수준이 낫기에 한 가닥 희망을 건 것이다. 지인들의 소개로 한 시내 개인안과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두 부녀는 그 자리에서 다시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담당의사는 시력을 되찾기 위해선 각막이식수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의사는 호치민에는 각막이식수술을 하는 병원은 없으며, 수도 하노이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호치민에서 하노이까지는 직선거리만 1,700km를 훨씬 넘는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꼬박 이틀 밤낮을 가야 하는 거리다. 그동안 겪은 고통에 비하면 그 정도 고생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부녀를 좌절시킨 결정적인 말은 따로 있었다. 각막이식 수술비만 최소 2만 달러 이상이 들 것이라는 말이었다. 한화로 2,000만 원 정도 되는 비용이다. 메이린의 가정형편으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큰 거액이다.

결국 한 가닥 작은 희망을 걸고 베트남으로 향했던 두 부녀는 프놈펜행 버스에 지친 몸을 싣고 다시 자신들이 살던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메이린의 엄마는 어린 딸아이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메이린의 아빠도 오래 전 끊었던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한국에서 들려온 희망적인 소식, 그러나...

매일 아침 학교 가는 메이린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여전히 짠하다. 사춘기가 다가올수록 불안감은 더욱 커져간다고. 딸아이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마음에 상처를 입어 삐뚤어지거나 극단적인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최근 메이린의 엄마는 집근처에 작은 가게를 얻어 미용실을 차렸다.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병원비를 마련해보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생각보다 벌이가 시원찮다. 하루 한화로 2~3천 원 정도 버는 게 전부다. 가게와 집세는 고사하고 아이들 간식비 수준도 못된다.

그런 두 부부에게 최근 또 다시 희망을 걸만한 소식을 들려왔다. 한국의 실명예방과 관련된 한 복지단체가 해마다 캄보디아 어린이 실명예방과 구제를 위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부부는 서둘러 딸아이를 데리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병원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한국에서 왔다는 그 복지단체 관계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메이린의 가족은 또 다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다른 2명의 어린이 환자가 치료받기로 되어 있고, 행정서류준비가 모두 끝난 상태라 지금 당장은 어렵다는 말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복지단체 관계자도 이점 때문에 난처해했다.

결국 메이린의 부모는 좀 더 기다려달라는 관계자의 희망 없는 말만 들은 채 힘없이 병원 문을 나서야 했다. 상황을 눈치 챈 메이린도 상당히 실망한 눈치였다. 그러나 부모의 타들어가는 심정을 아는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메이린의 시력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다. 조금 더 기다려달라던 복지단체 관계자의 연락도 아직 못 받은 상태다.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4년이란 시간을 보냈기에 더 이상 지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대로 방치하면 각막이식수술도 받지 못한 채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한 현지 안과의사의 말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부디 한국에서 좋은 소식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