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인천아시안게임 메달 꿈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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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인천아시안게임 메달 꿈을 향해...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4.08.1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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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레슬링 국가대표팀 바통 이어받은 김성태 감독의 현지 적응기

▲ 인천아시안게임 메달 획들을 위해 매일 새벽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캄보디아 레슬링 국가대표팀 선수들.
지난 8일 오후(현지시각),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위치한 올림픽 스타디움 레슬링 훈련장. 김성태 감독이 이끄는 캄보디아 레슬링국가대표팀은 이날도 새벽부터 훈련에 매진했다. 매트 위에 뚝뚝 떨어지는 선수들의 굵은 땀방울 소리가 귓가에 들릴 정도였다. 구릿빛 피부를 가진 선수들의 힘찬 기합소리가 실내훈련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금년 9월 개최되는 인천아시안게임 메달을 향한 그들의 꿈은 태양처럼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 캄보디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체육회측과 10년간 장기계약을 맺은 김성태 감독.

지난 2월 북한 출신 박소남 감독의 바통을 이어 캄보디아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은 김 감독은 인천아시안게임 메달전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최소 동메달 하나 정도는 충분히 딸 자신이 있습니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길 바라는 선수들을 숱하게 많이 보아온 우리 입장에선 "목표가 겨우 그 정도인가?"라고 다소 갸우뚱할 수도 있는 답변이었다.

그런데, 캄보디아는 우리와 사정이 많이 다르다. 이 나라는 아시아 최빈국인 동시에 스포츠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가다. 선수들을 위한 마땅한 훈련 장소는 물론이고, 스포츠 기본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하다. 변변한 체력단련장도 없고 샤워실도 없다. 구내식당도 없어 선수들은 매일 기숙사 한쪽 구석에서 밥을 해 먹는다. 수십 년째 수리를 하지 않아 천장에서 비가 새는 낡은 기숙사는 그나마 없는 것보다 나은 수준.

국가 차원의 재정지원도 부족해 대표선수들이 훈련에만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일부 선수들은 각자 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훈련량이 부족하고 의욕이 부족하다보니, 선수들의 기량도 떨어진다. 그동안 올림픽은 고사하고, 금세기 들어서 열린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단 한 차례도 금메달을 따본 적이 없다.

1954년 마닐라 대회에 첫 출전한 이래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몇 차례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것이 최고 성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나마  워낙 오래 전 일이라 언제 땄는지 협회 관계자들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

레슬링과 태권도 등 일부 강세 종목만 2년마다 열리는 동남아시아국가들의 스포츠 대잔치인 SEA 게임에서 금메달 몇 개 정도 딴 게 캄보디아 국가대표팀의 최고 성적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최근 10년 사이 캄보디아 경제가 매년 10%대 고도성장을 유지하면서 현지 국민들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캄보디아 정부도 스포츠 활성화를 위한 지원을 차츰 늘려가는 추세다.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을 위한 포상금제도도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다.

물론, 다른 주변 국가들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매우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선수들이 메달을 따야 할 동기부여만큼 확실히 제공한 셈이다. 이를 계기로  국가대표 선수가 되길 꿈꾸는 꿈나무들도 조금씩 늘어나는 등 저변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현지 스포츠계 입장에선 나름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 감독의 은사이기도 한 서울레슬링협회 김명기 부회장이 선수들의 체력보강을 위해 장뇌삼을 보내오기도 했다.
캄보디아 대표 감독으로 겪은 시련

부임한 지 이제 막 6개월째 접어든 김 감독은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는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고 털어놓았다. 열악한 훈련 환경 때문도 아니고, 선수들의 지도가 힘들어서도 아니었다. 금년 2월 정식 초청을 받고, 나름 포부를 안은 채 혈혈단신 캄보디아로 날아갔지만, 그동안 정식감독으로 취임하지 못했다. 캄보디아 국가올림픽위윈회(NOC)의 행정절차가 워낙 까다롭고 느렸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감독 최종 승인절차가 너무 오래 걸리는 바람에 김 감독은 그동안 뒤에 '서리'딱지를 붙인 채 6개월 넘게 감독직을 수행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정식 감독으로 인정받지 못하다보니, 체육 후진국을 위한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의 각종 훈련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달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훈련장에 가던 중 날치기 강도를 만나 핸드폰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버티는 과정에서 도로변으로 굴러 떨어져 심한 찰과상을 입고 3주가량 치료를 받기도 했다.

제때 월급조차 지급받지 못해 허름한 빈방을 얻어 지내야 했던 김 감독은 수개월 동안 '꾸이띠유'라 불리는 현지식 쌀국수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캄보디아 국가대표 감독이란 중책을 맡아  큰 꿈을 안고 온 그였지만, 먼나라 쓸쓸한 단칸방에서 보내는 외롭고 힘든 시간은 선수시설 고된 훈련보다 더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냥 짐을 싸서 돌아갈까 고민도 했다"고 그는 술회했다.

드디어 지난주, 오랜 기다림 끝에 캄보디아 체육부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정식 감독승인을 받은 것이다. 현지 언론들도 김 감독의 정식 취임 소식을 스포츠 1면 기사로 앞다퉈 내보냈다. 계약기간은 금년부터 10년간이다.

이제는 대한민국 체육회로부터도 재정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됨에 따라, 그는 감독으로서 오직 선수들 지도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선수들에게 훈련이 끝난 후 삼겹살이라도 사줄 수 있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선수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최근에는 김 감독의 현역 선수시절, 그를 키운 은사이기도 한 김명기 서울레슬링협회 부회장이 선수들의 체력보강을 위해 장뇌삼 20여 뿌리와 경기용 유니폼, 훈련용 땀복을 선물로 보내오기도 했다. 장뇌삼을 받아 든 선수 중 한 명은 "다른 사람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재임할 당시에는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귀한 선물"이라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 10년 넘게 현역선수와 코치로 활동, 남북한 출신 감독들의 훈련방식과 특징에 대해 말하는 짭 을러은 코치(36).
캄보디아 국가대표 레슬링팀 이전 감독은 북한 출신 박소남 감독이었다. 그는 10년 넘게 이들을 지도하다가 지난해 12월 평양으로 복귀했다. 지금 뛰고 있는 선수들 모두 북한 코치진으로부터 지도를 받았던 선수들이라 대부분 기본적인 한국말은 알아듣는다.

아마도 캄보디아 레슬링 선수들은 재외동포 출신의 정대세 축구선수와 더불어 남북한 출신 감독들과 모두 인연을 맺은 매우 드문 선수들로 기록될 것이다. 한편, 이를 두고 "캄보디아를 둘러싼 남북한 관계의 달라진 외교적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하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었다.

다음달 열릴 인천아시안게임에 참가하게 될 캄보디아 선수는 모두 4명이다. 초우 쏘티아라(48kg), 던 쓰라이마으(52kg), 응운 마까라(60kg), 던 싸으(96kg) 등 남녀선수 각각 2명씩이다. 모두 자유형에 출전한다. 캄보디아 여자 레슬링을 대표하는 초우 쏘티아라 코치는 이번 대회에 선수로도 참가할 예정이다.

현지 김 감독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초우 쏘티아라 코치 겸 선수에게는 지난 2012년 한국에서 있었던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경북 구미 박정희대통령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아레슬링선수권대회에 캄보디아 여자 국가대표 선수와 코치 단둘이 참가했다가 낭패를 경험한 것이다. 한국에 도착했지만, 마중 나오기로 했던 캄보디아 내 한국장학재단 측이 인천공항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원자만 믿고 달랑 100달러만 쥐고 있었던 터라 캄보디아 대표팀은 졸지에 국제 미아가 될 처지가 되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대한레슬링협회에 연락이 되어 대회장소인 구미에 도착했지만, 이번에는 선수촌 1인당 체재비 15만 원을 내지 못해 또 한 번의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2009년 SEA게임 금메달리스트이자, 여자 48kg급에 출전한 이 여자 선수는 결국 전후사정을 알게 된 협회 측이 체제비 전액을 면제해줘 간신히 대회를 마칠 수 있었다. 비록 간절히 원했던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하마터면 국제미아가 될 뻔했던 그녀의 파란만장 에피소드는 당시 모 스포츠신문에 기사화됨에 따라 금메달을 딴 다른 선수들보다 더 큰 유명세(?)를 탔다.

그리고 그 당시 곤경에 처했던 캄보디아선수단에 도움을 주었던 이가 바로 지금 캄보디아 레슬링 국가대표팀을 맡고 있는 김성태 감독이다. 참 재미있으면서도 묘한 인연이다.

▲ 매일 새벽 훈련으로 비지땀을 흘리는 캄보디아 국가대표 선수들.
동메달도 이들에겐 큰 꿈

나라마다 메달의 가치는 다르다. 아시안게임에서 쟁쟁한 선수들을 누르고 동메달을 따도 선수들의 이름조차 기억 못하고 심지어 뉴스거리도 되지 못하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지만, 캄보디아에서는 그야말로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 선수가 첫 금메달을 안겨주었을 당시 우리 국민들이 느꼈던 그 진한 감동 이상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쪼록 40억 아시아인들의 스포츠 대제전인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캄보디아 선수들이 메달을 꼭 따주기 바란다. 기자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국민들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다.

다소 상투적인 표현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메달 색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가난과 고단한 삶에 지친 캄보디아 국민들에게는 아시안게임 동메달 하나가 올림픽 금메달 10개에 비할 바 아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100달러로 힘들게 살아가는 그들에겐 삶의 작은 활력소가 될 수도 있고, 가난 때문에 학업조차 포기해야 하는 어린 선수들에겐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원천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스포츠 경기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기쁨이자, 진정 우리가 바라는 가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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