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용 회장(78세)은 1962년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당시에는 내노라 하던 국영기업인 한국전력에 입사해 잘 나가던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젊은 혈기로 시작했던 첫 직장은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부정행위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극심했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나라는 궁핍했고 국민들도 ‘보릿고개’를 넘기기가 버거운 고단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저런 상황에 염증을 느낀 신경용 회장은 이민을 결심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진다.
“첫 직장인데 들어와 보니 저 지경이고 나라 형편도 그렇고 도무지 희망이 없었어요. 한창 때인 내 앞길이 너무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전에 들어와 3년만인 1964년에 결혼을 했습니다. 이번에 친척과 친지들이 보고 싶어 고국에 올 때 같이 온 아들이 바로 그 때 한국에서 낳은 첫 아이입니다"
“낯설고 물설은 이국에 오니 어엿한 대학, 그것도 알아준다는 서울대 공대를 나왔는데 이게 별 소용 없더라구요. 닥치는 대로 이곳 저곳에서 일을 했습니다. 이민 가서 첫 일이 공장노동자였습니다.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이 1967년에 개최됐는데 제가 이민 간 이듬해부터 직원들을 대량으로 해고하기 시작했더군요. 그래서 직장 잡기가 더 힘들었습니다”
“대학 다닐 때 주보나 신문에 더러 글을 쓰곤 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에 대학생들의 글을 싣는 게 있었는데 글을 보냈더니 실렸더라구요. 전문적으로 시나 소설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문학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이게 인연이 됐는지 어쩌다 캐나다한인문인협회 회장을 맡아 일하게 됐습니다. 캐나다한인문인협회는 격년으로 ‘캐나다문학집’을 내는데요. 올해가 책이 나오는 해입니다”
신 회장은 올해 재외동포재단의 문학상 공모에서 캐나다한인문인회 회원이 시 부문에서 입상했다는 소식을 본인에게 직접 들었다고 귀띔했다.
“캐나다한인문인협회는 현재 회원이 100여분쯤 됩니다. 매년 신춘문예를 공모하는데 당선되면 회원으로 입회하게 됩니다. 또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유명작가들도 캐나다에 이민 와 정주하게 되면 추천을 받아 입회를 시킵니다. 저는 1980년쯤에 회원으로 들어왔습니다. 올가을에 우리 협회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는 행사가 몇 가지 있는데요. 우선 9월에 ‘디어 리더’라는 책을 낸 탈북 작가를 초청해 강연회와 좌담회를 할 계획입니다”
“또 11월에는 ‘판소리 문학의 밤’이라는 행사도 예정하고 있는데 이 행사 때문에 한국에 온 김에 국립국악원장을 만나 협조를 구할 생각입니다. 판소리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는 우리 3대 판소리잖아요. 창을 하는 바탕(가사)이 바로 문학이고... 그래서 색다르게 한번 접목시켜 보려고 합니다”
알다시피 동포사회 각 단체마다 재정이 열악해 문제인데 우리 협회 역시 이 행사들 때문에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게 돼서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재외동포신문에서 많은 홍보 부탁드리고, 재외동포재단에서도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