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글학교 연수가 제 인생을 바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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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글학교 연수가 제 인생을 바꿨어요”
  • 김경삼 기자
  • 승인 2014.07.22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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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한글학교 교사 초청연수’ 참가한 고정미 오세아니아 한글학교 협의회장

“꾸미지도 않고 머리도 엉망인데 어떡하죠? 사진 예쁘게 찍어주셔야 해요.”

지난 18일 오후 5시 ‘재외한글학교 교사 초청연수’를 마치자마자 본지 사무실을 방문한 고정미(54) 오세아니아 한글학교협의회장은 카메라를 보자마자 사진 걱정부터 했다. 7박 8일간 진행된 연수 일정으로 피곤할 법도 했지만 그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처음 만난 기자에게 어색함 없이 인사를 건넸다.

고정미 회장은 이번 연수를 기점으로 세계한글학교협의회(이하 세한협)의 새로운 대표가 됐다. 9개 대륙 한글학교협의회가 모여 있는 세한협에서 미국, 중남미 지역에 이어 오세아니아 지역으로는 처음으로 대표를 맡게 된다. 고 회장은 “대륙별로 미리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회장직을 맡기로 한 덕에 이번에 대표가 된 것”이라며 겸손함을 보였다. 실제로 세한협의 이러한 방식은 다른 한인단체들에게도 적절한 대안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고 회장은 뉴질랜드 와이카토 한국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기도 하다. 오클랜드에서 약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와이카토는 2,000여명의 교민이 사는 작은 도시이긴 하지만 그녀가 이끄는 한국학교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녀는 “와이카토 한국학교는 학생들에 대한 교육만큼은 최고로 해주려고 노력하는 선생님들의 열정과 노하우가 가득한 ‘작지만 알찬 학교’”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와이카토 한국학교 외에도 뉴질랜드에는 총 20개가 넘을 정도로 많은 한글학교가 설립돼 있다.

▲ 이번 재외한글학교 연수 교육생들과 함께 경복궁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한글학교, 내 삶의 모든 것

고 회장이 뉴질랜드에 온 것은 18년 전이다. 보다 나은 환경을 위해 뉴질랜드로 온 그녀의 가족은 마타마타에 첫 보금자리를 마련했지만 사업 실패로 인해 해밀턴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그러다 당시 다니던 교회의 집사로부터 와이카토 한글학교 운영을 제의받고 그녀는 한글학교 교사로 부임한다. 뉴질랜드로 이민 온 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이렇게 맺어진 한글학교와의 인연은 이후 그녀의 삶을 바꿔놓았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5명의 교사와 20명 남짓한 학생들뿐이었던 학교는 그녀가 교장으로 부임하고 난 후 점점 늘어나 지금은 90명의 학생들로 북적거린다고 한다. 그녀는 “교장이 되자마자 한글학교를 내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운영하려 노력했다”며 현재 실시하고 있는 말하기 및 글짓기대회, 전통민속놀이 및 한마당잔치 등도 그 당시 기획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글학교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 이렇게 깊어진 것은 지난 2003년 한글학회 주관 재외한글학교 교사 초청연수에 다녀온 이후부터다.

“원래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연수라면 가리지 않고 다 참가하는 편이에요. 그중에서도 당시 연수는 한글을 가르치는 게 얼마나 보람찬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계기가 됐어요. 그때 다녀온 연수 덕분에 제 인생이 바뀐 거죠.”

그녀는 이번 초청연수 또한 짜임새 있는 만족할만한 연수였다며 엄지손가락을 연신 치켜세웠다. 아울러 “이번에 온 한글학교 교사들이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끼고, 나처럼 마음가짐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 강의실에서 연수 교육생들과 함께.

열정의 원동력은 돈보다 ‘보람’

와이카토 한국학교 교장, 오세아니아 한글학교 협의회장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녀에게는 한 가지 직업이 더 있다. 바로 유치원 교사다. 한국에서 유아교육학을 전공하고 유치원 교사로 활동한 경력을 살려 그녀는 이민 초기, 유치원 파트타임 교사로 일하게 됐다. 그러나 당시 그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바로 ‘영어’. 그녀는 이후 교사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아 현지 유치원 ‘1호 풀타임(full time) 교사’가 됐지만 당시 그녀는 “풀타임 교사로 일해 달라”는 유치원 원장의 말도 알아듣지 못했을 정도로 영어를 못했다고 털어놨다.

한글학교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바로 이러한 뉴질랜드인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데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영어도 못하는 나를 성실함 하나만 보고 정식 교사로 채용해준 '키위(KIWI)'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한-뉴사회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며 살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정식 교사가 되기 전에도 그녀는 교회, 한인회 등에서 꾸준히 봉사를 해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돈이나 수치로 따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아이들이 배우면서 발전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깨닫는 보람을 돈과 비교할 순 없죠.”

▲ 지난 2012년 고정미 회장은 영국 여왕이 지역사회와 교민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긍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공로훈장’(THE QUEEN’S SERVICE MEDAL)을 받았다. 사진은 가슴에 공로훈장을 단 고 회장의 모습.

한국학교 위한 유치원 세우고 싶어

그녀가 뉴질랜드에서 하고 있는 활동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 2007년에는 리차드 로렌스 목사와 함께 ‘한뉴우정협회’를 설립, 이민 온 한인들의 적응을 돕고, 뉴질랜드 사회에 한국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한뉴우정협회는 정치, 종교 등을 떠나서 양국 간 우정을 나누는 순수모임으로, 친선 문화 교류를 위해 1년에 4번 정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멜리사 리’ 한인 의원도 참석해 강연을 한 적이 있다며, ‘작지만 하는 일은 큰 단체’라고 자랑했다.

이외에도 그녀는 민주평통 뉴질랜드협의회 차세대위원, 와이카토 한인회 자문위원, 와이카토 다문화센터(YMC) 대표 등을 맡으며 한국과 뉴질랜드의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2년에는 영국 여왕이 지역사회와 교민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긍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공로훈장’(THE QUEEN’S SERVICE MEDAL)을 받기도 했다.

▲ 임진각 철마앞에서 다른 지역 한글학교 교사들과 함께.

그녀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게 하나 있다. 바로 한국학교를 위한 유치원을 세우는 것이다.

“지금 주말에 한번 하고 있는 한국학교 수업은 현지 학교 교실을 빌려서 하는 거라 아이들이 교실물건을 함부로 손댈 수가 없어요. 환갑이 되기 전에 한국학교 전용 유치원을 지어 아이들이 쫓겨날 걱정 없이 편안하게 공부를 하게 만들고 싶어요.”

와이카토 한국학교의 교훈은 ‘한국인으로, 뉴질랜더로, 세계인으로!’이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키위’가 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라는 뜻이 담긴 이 교훈처럼 뉴질랜드 한인학생들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게 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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