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먹물의 가면, 김대중의 배짱은 어디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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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먹물의 가면, 김대중의 배짱은 어디서 오는가
  • 에녹
  • 승인 2004.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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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먹물의 가면, 김대중의 배짱은 어디서 오는가



90년대 초, 종로 어딘가 일식집에서 당시 청와대 김종인 특보와 둘이서 식사하고 있는 김대중씨를 본 일이 있다. 동행한 사람으로부터 그가 나의 고교 선배라는 말을 듣고 그 얼굴을 유심히 다시 바라 본 기억이 있다. 7, 80년대 국내 신문을 볼 수 없는 곳에서 살았던 나로서는 아직 조선일보나 김대중 이사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없었을 때였다. 따라서 그 때의 인상은 그저 다부져 보이며 주로 이야기 하는 편이었던 그가 청와대 경제 특보와 상당한 가까운 관계처럼 보였다는 정도였다.

학창 시절 교내신문과 교지를 만들었던 일이 있고, 백일장에서 장원도 해 보았고 교내 문학상도 받아 보았다. 졸업 당시 서울대 어느 학과나 갈 수 있는 성적이 되었지만, 나는 내가 마음속으로 원하던 사학과나 국문과 대신에 공대 화공과를 가게 되었다. 화학에 흥미를 느꼈던 점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격이었으며, 결국 화공과를 졸업하고 케미컬 엔지니어라는 명칭은 취득했지만, 화학 공장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결국 한 종합 상사에 입사하여 상사맨으로 사회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해외 주재 세일즈맨 그리고 세일즈 엔지니어로 일하였다. 말 그대로 세계를 돌아 다녔고, 그 와중에 남상국 같은 사람과도 조우했던 일이 있다.

그러나 역사와 시는 늘 가보지 못한 길처럼 막연한 그리움 또는 아쉬움이었다. 그런 까닭인지 문단이나 언론에서 활동하는 선배들에게는 일종의 동경과 근거 없는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최인호씨나 황동규씨, 한국일보에 근무하였던 계창호씨 같은 사람들이 그러한 예일 수 있겠다. 사실 신문로 경희궁터에 있었던 서울 고등학교는 그 졸업생들에게 많은 추억과 자긍심을 심어 주는 꽤 괜찮은 학교였다고 생각해 왔다. 60년대 서울고등학교는 경기고등학교와 어깨를 겨루는 소위 일류 고등학교였으며, 그 졸업생들은 다소간의 엘리티시즘에 빠져 있었다. 지금 와 생각하면 그 두 고등학교의 졸업생들이 나라를 어지럽게 만드는 수괴들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지만.

나라를 떠나 보면 애국자가 된다고 말한다. 잘났든 못났든, 자랑스럽든 부끄럽든, 외국의 하늘 아래서는 조국의 모든 것이 늘 새록새록 떠오르며, 마치 어머니의 살냄새처럼 마음속에 아련한 그리움처럼 떠오른다. 서구인들과 때로 언쟁하고 또 때로 친구처럼 마음을 터놓고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며 살다보면, 마치 코스모폴리탄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질 때도 있지만, 돌아 서면 생각나는 것은 어머니이며, 동북 아시아 작은 땅덩이에 뿌리 박고 살아 가는 벗들이다. 유럽은 아름다운 나라들로 가득 차 있고, 그들의 문화와 역사는 자유로운 공기 속에 살아 움직인다. 중동의 사막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며, 그 곳에서 살아 온 사람들은 깊은 신앙심과 형제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미국은 큰 나라이며 풍요와 자유가 방종처럼 넘쳐 흐른다. 무엇보다 그들의 과학적 창의성과 개인적 욕망을 추구하는 활력은 왜 그들이 자본주의 세계의 중심인가를 말해 주는 것 같다.

아시아인들은 다양한 종족과 언어만큼 복잡한 역사와 문화로 짜여 있지만, 그들을 포괄하는 특징이자 공통점은 정신적 세계 또는 영혼에 대한 체화된 가치관이라고 생각한다. 서구 물질문명의 강력한 영향으로 인해 그러한 특징들이 감춰져 있거나 차츰 퇴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들은 삶의 고귀한 가치로 엄존하고 있으며, 그들이 길어 올리는 정신적 세계의 깊이는 아직 다하지 않았다. 또한 그것은 서구인들과 대면하는 나의 정신적 지주이자 자긍심이었다. 그러한 아시아인으로서, 그리고 그 중에서도 한국인으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뿌리는 포기할 수 없는 나의 뚜렷한 정체성이자 자랑이요 자존이었다. 그들에게 상품이나 프로젝트를 파는 장삿꾼이지만 그리고 그들보다 과학적으로 낙후된 시스템 속에 거주했던 주민이었는지는 몰라도, 이러한 정체성과 자존심을 바탕으로 나는 그들과의 상호 보완적 관계에서 늘 떳떳하였으며, 그들도 나의 그러한 포지셔닝을 두고 감히 내 앞에서 오만 방자를 떨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나의 동족이자 같은 고등학교 동문 선배인 조선일보의 김대중 이사란 사람이 나의 소중한 정체성과 가치를 뿌리부터 흔들며 조롱하는 것이 아닌가. 이제는 조선일보나 김대중이란 사람의 이력과 포지션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나 역시 그들을 경멸하며 증오하기는 마찬가지 일 지 몰라도, 이들은 민족 전체의 자존심을 짓밟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친일 반민족 작태와 수구 기득권 세력의 챔피언 역할을 어제 오늘 깨달은 일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 역사의 이 중차대한 국면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반국가적 작태는 한마디로 언론의 탈을 뒤집어 쓴 역적질이라 말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정국이나 국가적 정황을 평함에 있어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별하여 독자인 국민들에게 정의롭고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할 것을 다른 언론도 아니고 조선일보에 요구하는 일은, 마치 나무에서 물고기 잡히기를 기대하는 일 만큼 황당무계한 일이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는 잘못됨과 국민에 대해 저지르는 모욕죄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편향된 세계관을 갖고 있다는 무지함과, 국가에 대한 모독을 서슴지 않는 죄 또한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조선일보의 김대중 이사는 3월 38일자 "위선극치의 정치"라는 사설을 통해 바로 그러한 국민 모욕죄와 국가 모독죄를 또 다시 범하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 이사는 말한다.

[나라에서 바야흐로 선거가 있다는데 보이느니 ‘탄핵’이고 들리느니 ‘친노·반노’뿐인 곳이 세계에 또 있을까? 정상적인 나라 같으면 지금쯤 각당의 실업 등 경제정책, 안보, 외교정책, 보험·교육·교통 등 사회정책이 연일 발표되고 각 정당의 대표를 비롯한 수뇌진이 윗옷을 걷어붙인 채 그것들을 논의하는 진지한 모습으로 다가와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당의 대표를 규탄하고 교체하는 데 몰두하고 시장바닥이나 누비는 이미지 정치에 시간을 보내며 ‘참신·개혁’ 운운하면서 폐공장터와 한강둔치에 천막당사나 세우는 데 급급하다. 진실성은 조금도 없어 보이는 위선정치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아니 지금 이 순간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 가결에 의해 직무 정지가 되어 있고, 그 가운데 총선을 치르게 되어 있는 나라가 지구상에 한국 이외에 또 어디 있는가. 당연히 한국에만 있는 상황이며, 그런 상황에서 탄핵이나 친노-반노의 시비가 뜨거운 이슈가 되는 것 또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당연한 현실 상황을 마치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말하는 논리적 결함을 스스로 드러내는 조선일보의 저의가 무엇인지 파악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한 이렇게 황당한 현실 상황 속에서도 많은 사회 현안에 대한 정책과 공약을 발표한 열린 우리당의 행동을 전혀 모르는 체 하면서, 이미지 정치니 위선 정치의 극치니 하며 싸잡아 매도하는 저의 역시 그 속셈이 뻔하기는 마찬가지 일이다.

불과 며칠 전에 박정희의 딸을 대표로 내세운 수구 한나라당이나, 내부적으로 지리멸렬 되어 당권 다툼이나 하고 있는 민주당과 무슨 대표 회담이 가능한 것이며, 설사 가능하다 하여도 총선을 불과 20일 앞 둔 상태에서 경쟁 정당끼리 무슨 정책 토의를 한다는 말인가. 김대중 이사의 이러한 발언은 정치권 전체를 위선 집단으로 매도하여 국민들에게 그놈이 그놈이라는 정치 혐오감을 극대화하려는 의도에 불과한 것이며, 그 의도의 배면에는 조금이라도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비판을 희석 시켜 주고자 하는 목적이 숨어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정치 불신감을 극대화하며 모든 정치 지도자들을 위선자로 색칠하고자 하는 김대중 이사의 의도는 궁극적으로 정부와 국민을 이간시키고 정치와 국민 사이에 불신의 벽을 더욱 높게 쌓으려는 반정부, 반국가 행위이며, 여기에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터럭만큼의 충정도 없는 것이다.

[당의 대표를 갈았다고 당장 지지도가 오르고 내리는 여론의 천박성에도 문제는 있다]

국민은 정당들의 여러 가지 행태들을 지켜 보며 각 정당에 대한 선호와 지지 여부를 결정한다. 그 가운데, 정당을 대표하는 인물이 갖는 상징성은 대단히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따라서 정당의 대표가 바뀜에 따라 여론, 즉 정당에 대한 국민적 판단이 변화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며 자연스러운 정치 의사의 표현이다. 이것을 천박한 여론이라고 말하는 조선일보와 김대중 이사는 도대체 얼마나 고귀한 식견을 갖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그들은 일본제국의 천황을 찬양하고 전두환을 영웅이라고 말했던 것일까. 그러한 식견을 갖고 있지 않다고, 국민들의 정치적 시각이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감히 국민의 판단과 선택을 천박하다 모욕할 수 있는 배짱은 어떤 종류의 식견에서 나오는 것인지, 멀지않은 장래에 국민들이 물을 것이다.

[우리는 무얼하고 있는가? 미국과의 ‘동맹’을 철회할 양이면 아시아에서 어떤 세력과 연횡할 것인가에 대한 아무런 의식도 고민도 없어 보인다. 그야말로 ‘자주’하겠다면 무슨 복안과 철학으로 가야 하는지 깊이 번민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지도자에겐 그런 흔적조차 없다.]

지금 정부의 그 누구도 미국과의 동맹을 철회할 것이라 말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어떤 근거로 이런 막말을 하는 것일까. 오히려, 정부는 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동맹 관계” 때문에 이라크에 우리 젊은이들을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정부가 햇볕 정책을 계승 발전시키고, 점진적 자주 국방과 자주 외교 노선을 통해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 동맹을 철회하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들은 필경 미국에 대한 맹목적 의존과 자발적 종속만이 동맹관계의 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그러한 태도는 오늘 날 국제 사회에서 가장 깊은 경멸의 대상이 될 뿐이다. 또한 정부가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의 기축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구상과 정책을 가지고 추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그러한 정부의 구상과 정책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다소간이라도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협력적 태도는 고사하고, 대통령과 정부의 정책을 무슨 쓰잘데 없는 탁상공론이나 망국적 정책인 것으로 호도하여 선동하는 조선일보의 작태는 단지 그들의 오래 된 반민족적 속성을 다시 한 번 대담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무얼 믿고 그러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일차적으로 믿고 있는 빽은 자신들의 시그널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막강한 수구들의 결집된 전열과 전투 노하우 인 것이다. 만의 하나 일이 정녕 그릇되어, 힘의 전쟁에서 수구들이 패할 경우, 조선일보는 최소한 자신들의 생존을 담보하는 이차적 방어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카멜레온적 변신술이다. 이 변신술에 필수불가결한 환경은 언론이라는 타이틀과 자유 민주주의라는 체제인데, 그러한 환경은 확실히 확보되어 있다는 것이 조선일보가 막가파식 배짱을 노출하는 배경인 것이다.

아무튼 김대중 이사에게 하나 묻고 싶은 것은, 당신이 노무현 대통령의 뱃속에 들어갔다 나왔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감히 노대통령에게 자주의 복안과 철학이 없다고 경박하게 단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복안과 철학은 원래 아무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니다. 특히, 보여도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보이는 않는 척하고, 없어도 자신들의 중상모략에 필요한 것은 반드시 만들어 내고야 마는 조선일보에게 있어, 노대통령이 어떤 복안과 철학이 있는지는 애당초 진정한 관심사가 아닌 것이다. 그들은 없다고 말하고 싶으면 그냥 없다고 말하면 되는 것이며, 구태여 유무를 확인하는 노력 따위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조선일보여, 그리고 김대중 이사여.. 이러한 당신들의 작태야 말로 위선 언론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똑 같은 물을 먹어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된다고 하였던가. 김대중 이사로 상징되는 조선일보 먹물들이 받은 모든 교육과 지식은 한결같이 민족과 국가에 치명상을 입히는 독이 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썩은 먹물들이 방씨 일가에게서 받는 급료와 보너스로 먹고 사는 것이야 뭐라 할 수 없지만, 그 일족이 씌운 친일반민족의 세뇌작업에 의해 그 영혼까지 팔아 치우며, 뱉어 내는 말마다 민족을 향한 독침이 되고 종양이 되는 것을 어찌 이 이상 좌시할 수 있으랴. 이들 반역의 무리들에게 아까운 호흡을 낭비할 필요가 없는 날을 보기 위하여,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출처 : 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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