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시절엔 박정희 찬양, 2004년엔 '박근혜 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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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시절엔 박정희 찬양, 2004년엔 '박근혜 띄우기'
  • 에녹
  • 승인 2004.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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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시절엔 박정희 찬양, 2004년엔 '박근혜 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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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들의 '박근혜 띄우기'가 가히 목불인견이다.
23일 한나라당 임시전당대회에서 박근혜씨가 새 대표로 선출되자 대부분의 언론들은 일제히 '박근혜 띄우기'에 나섰다. 수구신문을 위시한 언론들의 노골적인 '박근혜 띄워주기' 보도는 박근혜를 통한 '한나라당 구하기'에 다름 아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39년만에 여성 당수', '대통령의 딸에서 여성당수로', '여인천하' 등 대중의 흥미를 자극하는 수식어를 동원해 박 대표의 당선을 전했다.

언론들은 박 대표의 자질과 정책적 포부를 논하기 보다 한나라당이 '박근혜 효과'를 얼마나 볼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통령의 딸'에서 제1당 당수가 되기까지의 '인생역정'을 부각하기도 했다. '독재자의 딸'로 그 후광을 입고 정계에 진출했다는 사실보다 '어머니를 잃고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거나 '정계진출 7년만에 1당 당수가 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박 대표가 20대에 쓴 일기장까지 공개하면서 독재자 일가를 미화하고 나서는가 하면 조선일보는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딸로부터 파키스탄의 부토 총리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권'을 얻은 여인들을 소개하며 박 대표의 경우와 비교하기도 했다.

박 대표를 띄우는 과정에서 억지 논리까지 등장했다. 동아일보는 박 대표가 이회창씨와의 갈등으로 탈당한 이력도 "'원칙'과 언행일치를 항상 강조해 온 원칙주의자였다"는 평가의 근거로 제시했다. 중앙일보는 이를 두고 '당내 민주화에 열심'이었다고 평가했다.
언론들은 박 대표가 등장해 한나라당이 무엇이 달라졌으며,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도하지 않으면서 박 대표를 '띄워주기'에 급급했다.

표정변화 하나없이 따박따박 큰절을 올리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다리가 서너번 가늘게 떨리는 듯했다. 108배를 시작한 지 30여분이 지난 시간…이날 처음 불교식으로 절하는 방식을 배워 108배를 올린 박 대표는 그제서야 굳었던 얼굴을 폈다.(조선일보, 3. 25)

25일 새벽 5시. 한산하던 남대문시장 의류상가가 갑자기 시끌벅적 해졌다. "왔대, 왔어." "누가?" "박근혜래"…전날 조계사에서 108배를 하는 등 힘든 하루를 보냈지만, 박 대표는 이른 새벽 여전히 밝고 생생한 모습으로 나타나 "1시간 밖에 자지 못했는데, 지금은 긴 잠 잘때가 아니다"고 했다.(조선일보, 3.26)

흉탄에 쓰려진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대신해 22세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그의 이력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정치판에 들어온 이후 '원칙'과 언행일치를 항상 강조해 온 원칙주의자였다. 1998년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진출하자마자 제1야당의 부총재를 맡아 승승가도를 달려온 박 대표는 이회창 당시 총재측과도 당 개혁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다가 결국은 갈라섰다.(동아일보, 3.24)

박 대표는 취임 후 이틀 동안 각각 3시간, 2시간밖에 잠을 못 자는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다. 25일에는 시장 방문을 위해 오전 3시에 일어났다. 머리 손질과 화장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특유의 머리 스타일이 망가질까봐 차 안에서 토막 잠을 잘 수도 없어 수면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다.(동아일보 3.26)

그는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이다. "한번 뱉은 말은 무덤까지 안고 간다"고 주변에서 말할 정도로 언행일치를 중시한다. …박 대표는 당내 민주화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그는 2003년 3월엔 이회창 전 총재의 1인 지배체제를 비판하며 탈당,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기도 했다. 한때 '대선출마설'까지 나왔으나 그해 11월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복당, 결국은 지난 대선 때 이전총재를 도왔다. (중앙일보 3. 24)

그는 말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부모님도 안계시고, 더 이상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라고. 박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후광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선언일 것이다. 물 새는 거대 정당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얘기고, 그래서 처움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말일 것이다. 그의 말이 실천에 옮겨지길 바란다. 스물아홉살 고통받던 시절에 깨우쳤던 바람과 돛의 통찰력이 세상의 시험대에 올랐다.(중앙일보 3. 24)

박 대표의 얼굴에는 제1당의 대표가 되었다는 흥분이나 기쁨보다는 당을 구해야 한다는 중압감과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박대표는 인터뷰 내내 '변화와 실천' '정치문화 업그레이드' '실용정당'을 강조하면서 한나라당을 환골탈태시켜놓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천막 당사 주변에서는 불도저 소리, 천막 펄럭이는 소리 등이 끊임없이 들려왔지만, 예의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20대에 이미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며 단련된 결과라는 인상을 받았다. (경향신문 3. 25)


최소한의 '객관성'마저 내팽겨쳐 버린 미화기사가 낯뜨겁다. 우리는 언론들이 쏟아내는 박 대표 미화 기사를 보면서 지난 1972년 언론들이 박정희 대통령과 유신헌법을 찬양했던 부끄러운 부역기사와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다.

이미 AP, AFP 등 통신사들은 박 대표를 '독재자의 딸'로 규정했다.
박 대표는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다. 이념에서나 정치 이력에 있어 박정희의 정치적 자산을 승계한 '영남권 공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나라당은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차떼기' 이미지가 좀처럼 희석되지 않은 상황에서 'TK만이라도 이겨보자'는 저의로 박근혜 카드를 선택했다.
그럼에도 수구언론을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들은 박 대표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비판하면 야당의 '정치공세', '독설'로 치부했다. 심지어 경향신문은 박정희와의 관계를 문제삼는 발언에 대해 '연좌제적 비난'이라고 몰아부쳤다. 독재자의 딸이라는 평가는 '연좌제적 비난'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다. 박 대표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이념적, 정치적 유산 없이는 존재하기 힘들다. 당연히 그 '유산'을 극복할 '힘'도 없다. 그러므로 그의 정체성은 여전히 '독재자의 딸'이나 '유신정치의 잔재'로 남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언론들은 모른단 말인가.

한마디로 수구신문들을 비롯한 대부분 언론의 '박근혜 띄우기' 보도는 궁색하기 짝이없다.
언론들은 한나라당의 '박근혜 카드'가 박정희 향수를 자극해 영남권에서라도 기득권을 지켜보겠다는 의도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박 대표가 '독재자의 딸'이자 '영남권 공주'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점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언론들이 앞을 다투어 '박근혜 띄우기'에 나서는 것은 자신을 속이고 독자들을 기만하며 유권자들의 선택을 호도하는 행위다. 언론은 더 이상 '박정희 망령'에 기대어 유권자를 기만하려 하지 말라.


출처 : '박근혜 띄우기'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4.3.31)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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