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기획팀 ‘아티브(Artive)’ PD '김정삼'의 음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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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기획팀 ‘아티브(Artive)’ PD '김정삼'의 음악 이야기
  • 재외동포신문
  • 승인 2014.05.2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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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티브(Artive)'팀의 김정삼 프로듀서.

본지는 지난 12일 색소포니스트 대니 정과 R&B 가수 김조한이 오는 31일 펼칠 예정인 ‘Soul in Sao Paulo’ 공연을 소개한 바 있다. 해당 공연 기획팀인 아티브의 연출 및 프로듀서를 맡은 김정삼 연출자의 스튜디오를 방문하여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민 온지는 25년… 음악은 사춘기 시절 시작"

처음으로 이민을 오게 된 배경에 대하여 묻자 그는 1989년 13살이었던 시절 부모님과 함께 가족이민을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어린 시절 한국에서는 귀했던 바나나가 브라질에 가면 많다는 부모님의 간단한(?) 설득에 넘어가게 되었던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렇게 브라질에 온 이후 사춘기 시절 그는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다.

▲ '녹새풍'밴드 시절 김정삼 프로듀서.

이렇게 처음 들어간 밴드가 교민 밴드였던 ‘녹새풍’ 밴드. 나이차이가 거의 10살 가까이 나던 대선배들과 함께 공연을 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녹새풍 활동을 시작으로 여러가지 밴드를 결성하고 해체하기도 했던 그는 이 과정에서 점점 작곡에 대한 관심이 생겨 독학으로 공부를 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렇게 여러가지 밴드를 만들던 끝에 마지막으로 결성했던 밴드가 아리아(Aria)밴드. 여러가지 형식으로 실험을 거치며 한때는 4인조 댄스그룹이기도 하였다가 한때는 익숙한 밴드 형식의 그룹이기도 하였다가 하는 과정을 겪고, 그러한 끝에 발표했던 음반이 ‘이민사회 이야기’ 라는 앨범이다.

앨범 발매와 함께 진행한 공연에 대해 “처음으로 브라질 교민사회에서 결성한 밴드가 공식적으로 페이를 받고 한 공연”이라고 말했다. 물론 타이틀곡 ‘Vendedor Mr.Lee’ (vendedor 라는 단어를 번역하면 외판원 쯤)와 같이 수록곡들의 가사가 한인사회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과 외부의 입장에선 별 것 없던 달랑 컴퓨터 하나로 만든 음악들에 차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으나 아르헨티나의 한인회에 방문하여 해외공연을 하며 좋은 반응을 얻는 등 의미있는 활동이었다며 그는 그 때를 기억했다.

▲ 아리아 밴드 공연 후 기념사진. 윗줄 맨 가운데가 김정삼 프로듀서.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보고자 스튜디오 설립. 그리고 힘겨웠던 한 때...!

그렇게 밴드활동으로 음악생활을 이어 나가던 김 연출. 그러나 너무나도 열악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그는 스튜디오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한다. 아무 기반이 없던 상황에 그들이 아무리 공연을 하여 페이를 받아도 장비를 빌리고, 당시만 해도 7-8명 되던 멤버들을 먹이고 이동시키는 데 많은 부분을 소모하게 되어 이익금은 거의 없었던 것.

이런 가운데에서도 한인사회의 전무한 지원과  열악한 환경에 그는 힘을 갖추고 더욱 안정적이게 음악을 해보고자 하는 다짐에 스튜디오를 설립할 결심을 세웠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잠시 음악에서 손을 놓고 통역일 등 가리지 않고 일을 하며 돈을 모으기도 했다. 그래도 스튜디오를 세우기엔 턱이 없었지만 그는 어릴 적 모아오던 장비와 함께 무작정 착공에 들어갔다. 또 그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 다른 큰 이유는 바로 인디밴드들의 심히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보려는 것도 있었다.

스튜디오를 설립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며 그는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는지를 말했다. 밴드활동을 하던 시절 아무리 연습을 완벽하게 해도 음향이 어긋나고 또 원했던 사운드가 나질 않던 것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고 음향 엔지니어링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그는 브라질 음악대학교인 Souza Lima 대학 음향부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고 학생 80명 중 한 명에 뽑히게 되어 당시 유명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진행하던 학교의 음향팀에서 보조로 일을 하게 된다. 

▲ 아리아 밴드의 월드컵 길거리 응원공연.

이와 함께 그 일을 할 당시 어려웠던 점을 회상하기도 했다. 그 때 그는 하루 일당으로 5헤아이스를 받았는데 당시의 기준으로 왕복 4헤아이스였던 버스비를 내고 나면 달랑 1헤알이 남는 것. 부모님의 반대로 집안의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던 그는 그 남은 1헤알로 뻥징요(Paozinho. 브라질의 대중적인 빵으로 바게트빵을 자른 것과 비슷하다) 5개를 구입하고 브라질 사람들에게 커피를 얻어 마시며 하루를 버텼다. 또 10년을 사귀던 여자친구가 뇌출혈이 오는 등 여러가지로 사면초가에 닥쳤던 그 때. 그러나 그러한 상황 가운데 오히려 이를 악물게 되는 계기가 되어 전세계에서 유명한 MTV 음악방송에 출연하는 급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공연을 만드는 경험을 하며 후일 아리아 밴드를 거쳐 스튜디오를 설립하는 데에 큰 노하우를 쌓게 된다.

"공부와 연구,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나를 이끌어준 은인들"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리아 밴드의 음반을 제작하며 음악적인 측면뿐 아니라 제작 과정에까지 총괄하게 되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연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와 함께 그는 공연 장소를 빌려주던 교민 다비 장 씨와 지금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브라질에서 음악사역을 하며 청사모의 이벤트를 총괄했던 김민주 선교사를 그의 은인으로 꼽았다.

그리하여 그들과의 인연으로 청사모의 ‘드림 콘서트’ 이벤트의 밴드 마스터 일을 하게 된 김 연출. 이후 의욕적으로 공연일을 준비하고 관심을 가진 결과 작년 해당 대회의 총연출을 맡기도 했었다 .이후 그러한 공연 진행의 경험과 프로듀싱 경험, 그리고 개인적인 공부와 연구를 통해 연출자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고, 현재는 아티브 팀에 합류하여 오는 31일 (토) 김조한과 대니 정의 ‘Soul in Sao Paulo’의 공연을 총괄하는 프로듀서가 되었다.

이에 그는 좋은 대중공연을 연출하게 된 것이 기쁘고, 월드컵 때문이 아닌 공연 자체를 목적으로 방문하는 두 아티스트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또한 그는 아티브 팀에 역시 깊은 감사를 표했다. 김 연출은 아티브 팀의 체계적인 역할 분담을 언급하며 본인이 교민사회의 전문인력으로서 팀에 공헌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준 그들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브라질 음악시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 최종 목표는…"

▲ 청사모 꿈의 콘서트 연출을 맡았던 김정삼 프로듀서가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현재 그의 행보에 대해 말하며 아티브 팀의 법인 설립과 총 프로듀싱 및 장소 섭외, 현지 커넥션 구축 등 체계적인 공연예술 인프라 조성에 힘을 쓰고 있는 현재 그의 모습이 음악행정가와 같다며 웃었다.
 
밴드 중에서도 가장 연주를 못하던 막내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이러한 일을 맡게 된 것. 그렇게 현지에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전념하고 있는 그는 현재는 마이너레이블을 설립하는 데에 이르렀고, 브라질에서 활동하는 K-POP 가수로서 데뷔하기 위해 연습생 개념으로 준비하는 한국인 가수 지망생 학생과 현재 프로뮤지션으로서 데뷔하기 위해 앨범을 작업중인 현지인 힙합 듀오 'Legiao Rap'팀을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의 목표를 정리했다. 소년시절 그는 밴드의 일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 꿈을 이루고 난 뒤에는 안정된 연습시설과 녹음실을 갖는 것을 소망했다. 지금은 이를 모두 이룬 상황. 앞으로의 꿈은 50대쯤 본인의 재즈바를 하나 세워 음악가로서 계속 활동을 이어나가는 동시에 많은 현지의 뮤지션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

그리고 최종적인 목표는 본인의 음악적인 노하우와 경험이 절정에 이를 시기인 60대에 동양음악의 오케스트라를 정립하고, 그와 함께 동쪽에는 동양식 오케스트라, 서쪽에는 서양식 오케스트라, 마지막으로 그 중심에서 그의 밴드가 함께 협연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장발에 날렵한 턱선을 자랑하던 젊은 시절과 달리 현재 조금은 빈약한 머리숱과 살짝 나온 배를 지니게 된 친근한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의 김 연출. 그러나 20년 이상을 걸어오며 형성된 그의 음악세계는 무엇보다도 풍성했고 건강했다. 더욱 수준 높은 공연과 놀라운 무대들로 우리에게 다가올 그와 아티브. 앞으로 브라질 교민사회에서의 그들의 행보를 기대해 볼 만하다.

<기사제공=코리아포스트 이승만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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