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덕에 한국기업 무사?'국내 일부보도 사실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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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덕에 한국기업 무사?'국내 일부보도 사실과 달라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4.05.1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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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영유권 문제로 베트남 내 반중시위 '격화'... 한국 기업들도 일부 피해

 

▲베트남 내 반중시위가 시작된 지난 13일 베트남 남부 동나이성 연짝공단에 진출한 한 한국기업 앞에서 시위대가 불을 질러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현지진출 기업인 정성문씨 제공).
남중국해 섬 영유권 문제로 인한 중국과 베트남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이건 가운데, 베트남 남부 빈증 성 공단지역을 중심으로 '애국청년단'이라 불리우는 시위대에 공장 노동자 수만여 명이 합세하면서 '묻지마식 테러'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중국은 베트남 해역에서 220km 떨어진 남중국해 파라셀 군도 인근에서 베트남의 반발을 무릅쓰고 원유 시추를 강행했다. 이는 이번 반중(反中)시위 촉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15일 현재(아래 현지시각), 반중 시위는 빈증 성을 넘어 동나이·붕따우·롱안 등 다른 성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시위는 물론 방화에 초유의 유혈사태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영국의 <가디언>은 대만 고위 외교관의 말을 인용해 "베트남 중부 하 띤 지역에 있는 대만계 포모사 제철소에서도 중국계 직원 최소 1명이 사망했으며, 90여 명이 폭동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15일 현재 현지 언론들도 "하노이 정부가 시위 진압을 위해 곧 군대를 투입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다만, <로이터 통신>이 지난 15일 시위대와 중국인과의 충돌과정에서 2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이중 5 명은 베트남인, 16명은 중국인으로 추정된다"는 하 띤 성 종합병원 의사의 말을 인용 보도한 내용은 사실 확인 결과 오보인 것으로 최종 밝혀졌다.

현지 한인회 "1000여 명씩 몰려다니면서 공장 파손"

베트남 남부에서 발생한 반중 시위와 관련해 현지 한인회는 교민 긴급 공지문을 띄웠다. 한인회는 "지난 13일 베트남 남부 빈증 성에 위치한 공단에는 1000여 명씩 시위대가 몰려다니면서 중국계 공장으로 무단 진입, 공장을 파손하고 파업을 유도했다"고 전했다.

이어 "빈증 성 일부 공단 거리에서는 각목을 들고 돌아다니는 오토바이 테러족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현지인들조차 외출을 금하거나 근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전했다. 또 "오토바이를 타고 몰려다니는 일부 시위대는 공장 집기를 부수는가 하면, 종업원들의 시위 참여를 독려하면서 겁박도 일삼고 있다"고 묘사했다.

베트남 교민 뉴스 정보지 <라이프 프라자>도 "중국 가구공장인 빈 두옹 벤 캣의 사장과 직원들은 시위대에게 폭행을 당해 현재 병원에 입원한 상태이며, 다음날인 5월 14일 새벽에는 송탄 공단에 있는 대만 봉제공장에 불을 질렀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빈증에 있는 싱가포르 공단 입구에서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싱가포르 공단 내 차량 진입을 막는 등의 시위를 펼치고 있으며, 대만 기업 투자로 설립된 다이아몬드 신발공장은 시위대가 방화를 저지르는 등 시위 양상이 점점 더 과격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수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반중 시위대들의 주요 표적은 베트남 내 중국계 기업들이다. 하지만, 한국과 대만·싱가포르계 기업 등 다른 현지 외국 투자업체들로도 불똥이 튀고 있다. 특히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한 베트남 중부 하 띤 지역에는 한국 전기·건설업체들이 많아 교민 노동자들의 안전이 염려되는 상황이다.

주 호찌민 한국총영사관 측은 "우리 기업 400여 곳 가운데 일부 공장에 불이 나는 등 모두 54개 업체에 크고 작은 피해가 발생했다. 한국인 업주 1명도 부상 당했으며, 일부 공장들은 조업 중단을 선언한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하 띤 지역의 구체적인 상황은 확인이 어려운 상태다.

베트남 내 대만계 공장도 피해... 왜?

이 중 대만계 기업들의 피해 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외교부는 베트남 반중 시위에 대한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빈증과 동나이 지역에 있는 4~5개 업체에서 방화사건이 발생하는 등 1000개 가까운 기업들이 피해를 입으면서 대만 기업체들 사이에서 '집단 철수론'까지 대두되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들은 전했다.

중국과 무관한 대만계 기업에까지 불똥이 튄 이유는 왜일까. 이는 베트남인들의 눈에는 대만인들도 중국 본토인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 14일 재 베트남 대만상공회의소 리우 사무총장의 말을 인용해 "(베트남인들은) 중국인과 대만인을 따로 구분해 생각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베트남 반중 시위의 여파는 이웃 나라인 캄보디아까지 미치기 시작했다. 이번 반중 시위를 피해 베트남에서 캄보디아로 탈출한 중국인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다. <로이터>는 캄보디아 출입국관리소 담당 경찰관의 말을 인용해 "캄보디아 국경인 바벳을 통해 지난 14일 하루 동안 평소보다 많은 약 600명 이상의 중국인들이 들어왔다"고 보도했다.

또한 트렁 반 통 재 캄보디아 베트남대사관 대변인은 <미국의 소리>(VOC) 크메르어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중국인들의 '탈출 러시'가 사실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중국인들이) 베트남으로부터 강제 추방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와는 별개로, 캄보디아에 거주하고 있는 베트남계 캄보디아인 권익단체 크메르 베트남협회의 셈 치씨는 <미국의 소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주재 중국대사관 앞에서 조만간 항의시위를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캄보디아 내무부 경찰책임자 키우 소피악은 "외국인이 캄보디아 내에서 다른 외국인을 상대로 시위를 벌이는 것은 불법이므로, 당국(캄보디아)은 집회나 시위를 불허할 방침"이라고 못박았다.

한국기업 피해 작은 이유가 한류 때문?

한편, 호찌민시 한인회(회장 이충근)는 지난 14일 '교민 긴급 공지'를 통해 시위 확산 우려를 표하고 교민들에게 외출 자제를 당부했다. 한편, 시위대들이 한국계 공장 노동자들의 시위 동참을 요구하며 조업을 방해하고 있는 만큼 직원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줄 것을 촉구했다.

주 호찌민 총영사관 역시 14일 한국 교민 기업임이 식별될 수 있도록 사업장에 태극기를 게양해 줄 것을 긴급 당부했다. 이러한 안내지침에 따라 대부분의 한국 교민 업체들은 사업장 정문 앞에 태극기를 게양했다.

한국 언론들도 베트남 내 반중 시위와 관련해 14일부터 보도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영유권 분쟁을 둘러싼 분석 기사가 줄을 잇고 있다. 다만, 일부 언론은 이번 반중 시위에 대한 배경 분석보다는 '태극기를 걸어둔 덕분에 한국 기업들이 화를 면했다'는 점을 강조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국 기업들이 큰 피해를 입지 않은 이유를 '한류'와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난 발전 모델 국가' 등 한국의 긍정적인 이미지 때문이라고 분석한 공중파 보도도 있었다.

이런 보도에 대해 교민사회는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다. 이번 반중 시위는 영토분쟁을 둘러싼 반 중국 정서에서 출발했고, 시위 첫날 당시 한국기업들이 일부 피해를 본 것은 베트남인들이 중국계 공장과 한국계 공장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전문가 지적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15일 이후로 한국 기업들이 물리적인 피해를 입지 않은 사실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호찌민 교민 박두재씨는 "(베트남에서) 한류가 뜨거운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의 긍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한국 기업에 피해가 덜 간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연합뉴스>는 반중 시위가 과격 양상을 보이자 일부 한국계 기업들이 베트남 직원들을 내세워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이거나 '베트남은 우리의 친구' '우리는 베트남을 지지한다' 등의 글귀가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었다고 전했다.

이번 베트남 내 반중 시위 유혈 사태로 중국과 베트남 양국간 정치적 갈등이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지 않을까 우려된다.

영토분쟁지역 파라셀 군도·남사군도는 어떤 곳?
현재 베트남 내 반중 시위 촉발의 주원인으로 지목된 파라셀 군도는 남중국해의 중국 해남도 남쪽 336km, 베트남 동쪽 44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중국과 베트남간 영유권 분쟁이 있는 곳으로 베트남명은 '호앙사'(Quần đảo Hoàng Sa), 중국명은 '서사군도'(西沙群岛)다.

1970년 이전, 중국은 서사군도 동쭉 군도를, 베트남은 서쪽 군도를 점유했으나 1974년 무렵 베트남전의 혼란을 틈타 중국이 서쪽 군도의 다섯 개 소도를 무력으로 점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중국은 파라셀 군도 전체에 대한 실질적인 점유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곳은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이지만, 광대한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해양 자원과 석유가 매장돼 있다.

이번에 분쟁의 도화선이 된 파라셀 군도와 더불어 남사 군도(南沙群島) 역시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다자간 영토분쟁지역이다. 영어로는 스프래틀리 군도(Spratly Islands)라고 불린다. 이 섬들은 암초 및 산호초로 이뤄진 군도로 해수면이 낮고 땅덩어리도 작아 외형적으로는 경제적 가치도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이 군도를 둘러싸고 무려 중국·필리핀·대만·베트남·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 여섯 개 인근 국가들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곳은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전략적인 요충지로서, 해상교통·어업의 요충지이자 인근 해역에 석유·천연가스가 풍부하다. 약 300억 톤에 달하는 석유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브루나이를 제외한 나머지 분쟁당사국은 자국 점령도서에 군 병력 및 장비를 배치해놔 무력 충돌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지역이다.

특히,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남사군도 섬 중 하나인 존슨 사우스 산호섬은 지난 1988년 중국이 베트남으로부터 유혈 충돌을 통해 빼앗은 섬이다. 당시 베트남 선원 90여 명이 중국 측 공격에 의해 살해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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