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남자 대신, 캄보디아 사람과 결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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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남자 대신, 캄보디아 사람과 결혼해요!"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4.05.17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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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노총각 장가 못가는건 늙은 한국 신랑감 탓’ 세태 풍자 음악 인기

2009년 당시 캄보디아판 짝퉁 원더걸스 유튜브 동영상이 50만회 이상 조회횟수를 기록하며 전 세계에 퍼져 나간 적이 있다. 이 동영상은 당시 동남아에서 원더걸스는 물론이고, 한류열풍이 얼마나 뜨거운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거로 종종 회자되곤 했다.

원더걸스의 인기가 예전만 훨씬 못하고, 아무도 캄보디아 4인조 여성댄스그룹 RHM 엔젤스의 이름을 모르지만, 국내 네티즌 상당수는 원더걸스의 최대 히트곡 ‘노바디’를 모방한 뮤직 비디오를 폭소를 터뜨리며 감상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비록 ‘짱퉁’이란 표현조차 민망할 정도로 워낙 가창력, 안무 모든 게 엉성하고 촌스럽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국내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이 여성 댄스그룹은 인기여세를 몰아 엄정화의 히트곡 ‘페스티발’도 크메르어 버전으로 불러 현지에서 나름 꽤 인기를 끌었다. 비슷한 시기 ‘다라 레이미(Dara Reymeas) 라고 불리는 또 다른 현지 4인조 여성그룹도 제2의 짱퉁(?) 원더걸스로 활약, RHM 엔젤스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반짝 인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당시 원더걸스 짱퉁 동영상에 대해, 우리나라 네티즌들의 반응은 크게 둘로 엇갈렸다. 저작권 침해에 대한 비난여론이 주류를 이뤘지만, “우리도 옛날엔 외국 팝송 허락도 없이 맘대로 쓴 적도 있는데, 가난한 나라에서 그 정도 흉내 내는 건 그냥 애교로도 봐줄 수 있지 않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짝퉁' 원더걸스에 법적 대응 못 한 이유

그러나, 원더걸스의 소속 매니지먼트 대표이기도 한 가수 박진영의 입장은 단호했다. 리퍼브리싱을 맡고 있던 소니ATV측과 함께 불법 리메이크와 도용에 대해 법적 대응을 서두르겠다고 국내언론에 밝히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 이후 별다른 진척이 없었는지, 연예계 소식통들은 소송결과에 대한 뒷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법적조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JYP측이 한 가지 놓친 사실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놀랍게도 캄보디아는 문학·예술적 저작물의 보호에 관한 베른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전 세계 몇 안 되는 나라중에 하나다.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는 나라는 자국 내 문화저작권에 대해서 외국에서 보호를 요청할 수 없을 뿐더러, 외국 저작물 역시 캄보디아 내에서 저작권 보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데 법적인 제약과 한계가 따른다.

아무래도 JYP측이 처음에는 이 부분을 간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짝퉁 원더걸스에 대한 법적 대응을 준비하던 당시 JYP 측 법무팀장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며칠 전에야 법적인 제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며 "매우 난감한 상황"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법적으로 소송자체가 힘들다고 판단한 JYP측은 국제변호사까지 선임한 가운데 소송준비 직전 단계에서 이 사실을 확인한 후 막판에 포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비슷한 시기, 현지 해당 기획사들도 소송관련 보도를 접한 시점에 곧바로 이들 짝퉁 그룹을 모두 해체시켜 버렸다. JYP측에서 주 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의 협조를 구해 공식항의 문서를 현지 기획사측에 전달, 압박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당시 교민사회에 파다하게 돌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는 없다.

그래도 짱퉁 원더걸스 사건의 여파는 컸다. 이후 현지 연예기획사들도 소송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한류음악을 100% 노골적으로 베끼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요즘엔 현지사회에서도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불법 음반 CD판매상 단속도 늘어나는 추세다. 심지어 일부 캄보디아 대형 프로모션 업체 중에는 한국 음반이나 특정 인기곡 판권을 공식루트를 통해 구입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제는 한국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들의 판권이 캄보디아에 팔렸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어온다.

최근 한국 소재 크메르어 자작곡 늘어나

대신 의외의 현상이 일어났다. 한국을 소재로 한 크메르어버전 자작곡들이 불과 2~3년 사이 많이 늘어난 것이다. 최근 2~3년 새 ‘사랑해’ 등 한국어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노랫말로 삽입한 캄보디아 노래가 5~6곡이나 출시되어 현지음악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엔 이런 한류 정서와는 사뭇 다른 최신곡이 나와 화제다. 그동안 한국과 관련된 거의 대부분의 노래가 사랑이나 연애의 감정을 소재로 다룬 노래가 대부분이었다면, 이번에 좀 사정이 다르다.

우선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한국 신랑과 결혼하지 말고, 캄보디아남자랑 결혼해요” (원제: Pdey Khmer Min Yok Tov Yok Pdey Korean)다.

이 노래를 부른 남자는 캄보디아에서도 최고 인기스타는 아니지만, 현지 음악팬들에게 잘 알려진 중견가수 ‘쏙 렉사’ 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코믹한 몸동작으로 일관한다. 가수 이은하가 부른 ‘최진사댁 셋째딸’ 이란 노래가 연상되는 스토리에, 경쾌한 리듬도 뽕짝(?)에 가깝다. 분위기도 밝고 한마디로 유쾌하다.

▲캄보디아 전통 혼례식

그렇지만, 가사 내용에 담긴 메시지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다.

크메르어 전문번역가 정인휴(까로나)씨의 도움을 받아 가사 내용을 대략 정리해봤다.

"요즘 캄보디아 아가씨들은 캄보디아 남자들과 결혼을 하기 싫어 해.
돈이 많은 한국 사람들과 결혼하고 싶어 해.
캄보디아 남편은 허구한 날 술만 마시고 돌아다니거든.
한국 할아버지들처럼 달러(돈)가 없어.
이제 시골에 있는 예쁜 아가씨들은 모조리 한국에 가버렸어.
이제는 전처럼 예쁜 아가씨들이 없어
부인을 찾기 어려운 세상이야.
5,000달러가 없으면 이젠 결혼도 못해
캄보디아 남자랑 결혼하지 않고 한국사람들과 결혼해
캄보디아 남자들을 버리네!
집도 두고 그냥 가버리네!
외국남자하고 결혼하는 것은 캄보디아 남자와 결혼하는 것과 다르지..
아가씨! 아직 젊은데~ 한국사람 하고 결혼 하지 말아주오~
나를 사랑해줘~ 우리는 같은 캄보디아 사람들이잖아
나랑 결혼해야 부모님과 가까이에 있을 수 있잖아..."

▲캄보디아에서는 결혼식에 다산을 비는 의미로 바나나를 문 앞에 달아 놓는다고 한다.

캄보디아 처녀들이 돈 많고 늙은 한국인들과 결혼하는 바람에 이 나라 젊은 총각들이 배우자 찾기가 힘들다는 불평조 노래다. 동영상속에 등장하는 한국인으로 분한 키 작고 나이도 많은 남성의 등에는 한국인을 지칭하는 크메르어 ‘꼬레’라는 단어가 보인다. 편집수준은 조잡하고, 내용도 유치하지만, 나름 메시지는 매우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한국남성과 국제결혼을 하는 커플이 늘다보니, 캄보디아 농촌지역 총각들도 결혼이 힘들어진 게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노골적인 제목에 풍자성 짙은 노래가 나오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사회도 과거 7~80년대 노래나 문학을 통해 사회 비판이나 풍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은 줄곧 이어왔다. 송창식의 ‘고래사냥’같은 노래들은 유신시절 금지곡으로 묶였다는 사실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이런 부류의 노래가 이 나라에서 만큼은 그리 흔히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줄곧 사랑타령 노래만 즐기던 이 나라에 사회풍자적인 메시지를 담은 노래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캄보디아국민들의 사회의식이 조금이나마 성숙하기 시작했다는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노래를 접한 교민사회는 사뭇 다르다. 대체로 우려를 나타내는 분위기이다. 혹시나 반한감정으로 확산되지 않을까 걱정의 목소리도 많다.

▲하례객들이 결혼 선물을 들고 줄을 지어 서 있는 캄보디아 전통 혼례식

한국남성 국제결혼 지적하는 노래의 의미는?“

캄보디아 전문연구누리집인 〈크메르의 세계〉 정회원 [ID: 신뢰받은 삶] 역시 “음악은 시대나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는 만큼 그냥 웃고 넘길 일은 아니라며....(중략), 이번 음반으로 인해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다른 네티즌 회원들의 반응도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현지 젊은이들의 반응은 과연 어떤지 본 뮤직비디오를 직접 보여준 후 인터뷰를 시도해봤다.

프놈펜 왕립대학교에 다니는 쏙 나릇 군(23세)은 이 동영상을 이미 본적이 있다고 말했지만, 동영상 내용에 대해서는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캄보디아 농촌총각이 결혼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복합적인 이유 때문이며, 단지 돈많은 한국신랑과 결혼하려는 여성 때문만은 아니다.” 라고 답했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다는 식당에 근무하는 현지인 여성도 “노래가사가 재밌다”며, 노래가 전달하는 메시지에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눈치였다.

“다양한 노래들이 나온다는 건 즐거운 일이에요.. 그냥 즐기면 되죠, 사람들이 모두 다 뮤직비디오 내용처럼 한국사람들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으니까요.”

현지인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그냥 웃자고 만든 노래니 너무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의외의 반응이었다.

그런데, 혹시 한국 남성을 포함해 국제결혼에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의 또 다른 질문에 현지 호텔 리셉션에서 일하는 미혼여성 핏 깐냐(24세)은 이렇게 답했다.

“국적과 돈은 결혼을 결정하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사랑이 제일 중요하지...”

물론,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대답이 현실에 대한 100% 옳은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노래가사처럼 5천달러 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 2~3천불 이상 결혼지참금을 처갓집에 낼 능력이 없으면 장가도 가기 쉽지 않은 것이 캄보디아의 분명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캄보디아 노동자 최저임금은 월 100불 수준이다. 평균에 해당되는 결혼 지참금 3천불은 3년간 거의 쓰지 않고 고스란히 저금했을 때 벌 수 있는 큰돈이다.

한국농촌총각들의 결혼문제 해결 대안으로 동남아여성들과의 국제결혼이 갈수록 늘고 있다. 하지만, 그 여파로 동남아 농촌총각들에게도 피해가 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우리사회가 전혀 감지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국제결혼이 늘면 늘수록 이는 동남아 전체의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남성과 결혼해 한국에서 사는 캄보디아출신 여성은 2013년 현재 5,600여명에 이른다. 중국이나 베트남에 비해 아직은 적은 수치다. 그러나 국제결혼이 늘어날수록 결혼배우자를 못 찾는 현지남성들의 수는 그만큼 늘어날 것이고, 따라서 동남아지역에서 한국인에 대한 반정서가 생길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솔직히 이 노래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솔직히 그냥 마음 편하게 즐길 만한 음악은 못된다. 이 노래의 가사가 우리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너무나 노골적이면서도 구체적이고 또한 명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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