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박지성만 있나요? 우리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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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박지성만 있나요? 우리도 있어요!"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4.04.16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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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랭킹 190위 캄보디아에 프로축구?,김정호,장인용,김상민 등 한국용병도

▲ 장인용 선수(나가 코프 FC. 왼쪽)와 김정호 선수(프놈펜 크라운 FC).
아무리 축구 광팬이고 전문가를 자처할 정도로 스포츠 정보와 상식이 해박한 사람들도 FIFA랭킹 190위(금년 4월 현재) 최하위권의 가난한 나라 캄보디아에도 프로축구리그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놀랄만한 사실은 현재 캄보디아 프로축구리그의 외형상 운영시스템이 한국 K리그 못지 않다는 점이다. 무려 12개의 프로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다 유럽 프로축구리그를 모방해 1부 리그와 하위리그인 2부 리그로 나뉘어 경기를 한다.
 
꿈나무육성을 위한 14세 이하, 16세 이하 유소년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 대기업이 운영하는 프로축구팀이 2팀이나 있다. 외국 용병선수들도 예상 외로 많다.
 
나이지리아, 가나 같은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은 물론이고, 축구명가 브라질과 일본출신 선수들도 10여명이 넘는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 프로리그에 우리나라 출신 젊은 선수들이 3명이나 뛰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정호, 장인용, 김상민 선수가 그들이다. 교민사회에서조차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금년 1월 캄보디아 현지언론들의 뜨거운 관심속에 대한민국 남아들이 캄보디아 프로축구리그 정식입단식을 가졌다. 김정호 선수는 프놈펜 크라운 FC 소속이고 장인용, 김상민 두 선수는 현재 나가 코프 FC팀에서 뛰고 있다.
 
▲ 나가 코프 FC 프락 소완나라 감독은 장인용 선수가 경기흐름을 읽을 줄 아는 재능있는 선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이들 선수중 연락이 닿은 김정호, 장인용선수와 시내 모처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김정호 선수는 과거 대학축구강팀중 하나인 광운대 주전 중앙수비수였다. 나이는 24살. 잘생긴 얼굴에 키 185센터 정도의 축구선수로서도 좋은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캄보디아까지 오게 된 배경은 이렇다. 부산 부경고 재학시절, 그는 크고 작은 대회에서 팀에 여러 차례 우승컵을 안겨준 촉망받는 주전급 공격수였다. 당장 대학무대에서 뛰어도 주전급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도 받을만큼 유망주였다. 태극마크를 달고 고향 선배이기도 한 안정환같은 선수가 되는 게 그의 꿈이었다.

▲ 입단식을 마친후 새로 받은 유니폼을 들고 기념촬영 포즈를 취하고 있는 3명의 외국인 선수들(맨 오른쪽이 김정호 선수).

그러나 운명의 신이 그를 시샘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고질적인 허리디스크가 그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결국 경기출장 횟수는 줄고, 벤치에서 지내는 시간은 갈수록 늘어났다. 결국 그는 군대에 가기로 결심했다. 부상회복이 이유였지만, 역시 군입대는 특히 운동선수들에게는 치명적인 공백기간이 될 수 밖에 없다. 디스크치료 후에도 과거 기량을 되찾기 힘들었다.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것마저 포기해야만 했다. 4년 가까운 시간을 남모를 고통속에 참고 견뎌야만 했다. 이를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도 타들어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때 처음 축구화를 신은 후 15년 가까이 늘 축구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기자에게 밝혔다. 어떻게든 그는 축구를 다시 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날 캄보디아에서 사업을 하는 대학선배(김재희 대표, 라오펭유 한국인삼대리점)로부터 뜻밖의 전화한통이 걸려왔다. “캄보디아 프로축구에 입단테스트를 받아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 어린이 축구팬들이 플라스틱 통을 치며 힘찬 응원을 펼치고 있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는 느낌이었다. 그는 아무 망설임없이 곧바로 짐을 쌌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곧바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그런데 한 달 가까이 팀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사이 마음고생을 꽤나 했다. 여기서도 살아남지 못하면 더 이상 축구와는 인연을 끊을 수 밖에 없다는 절박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행히 구단으로부터 최종합격 통지가 날아왔다. 유럽축구무대에서 뛴 적이 있는 아프리카 짐바브웨 출신 선수, 그리고, 브라질출신의 베테랑 선수와 함께 지난 1월 21일 입단식을 가졌다. 현지 언론들도 이들의 입단소식을 스포츠 1면에 크게 실었다.
 
축구화를 다시 신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행복했다. 지금은 다행히 실력을 인정받아 팀 주공격수로 조금씩 입지를 굳혀가는 중이다. 부상에서는 완전히 회복되었냐는 질문에 그동안 “너무 쉬었던 탓에 아직 컨디션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는 3경기 출전에 1골을 기록중이다.

▲ 경기장을 찾은 캄보디아 국가대표팀 이태훈 감독의 모습. 이 감독은 시간날 때마다 프로축구 경기를 찾아 한국선수들을 격려하곤 한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팀에 입단한 또 다른 축구선수가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이름은 장인용. 김정호 선수보다 한 살 아래인 23살의 선수다. 그 역시 어릴 적 축구신동으로 소문나 고등학교 1학년때 브라질로 축구유학을 떠난 적이 있는 촉망받는 선수였다. 지금은 나가코프 FC 주전 미드필더로 뛰고 있다. 그는 “어릴 적 꿈이 브라질 축구 영웅 ‘호나우도’ 같은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주변의 기대와 뜨거운 관심속에 세계적인 축구선수의 꿈을 꾸며 열심히 뛰었지만, 결과는 그리 썩 좋지 못했다. 유명클럽 축구팀 입단에 연거푸 실패하면서 더 이상 남미클럽에서도 축구선수로 성장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스스로 판단했다.

게다가 오랜 축구유학생활을 지원해준 부모님도 경제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었다. 결국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의 선수생활에 대한 미련을 접고, 캄보디아 프로축구에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게 되었다.
 
1시간 남짓한 짧은 인터뷰였지만, 두 선수 모두 나이답지 않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과 진지함을 갖고 있고 있음도 느껴졌다. 그만큼 마음고생도 심하고 시련도 많이 겪었음을 반증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첫날 인터뷰 이후 일주일 후 기자는 이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수도 프놈펜에 위치한 R.C.A.F 경기장을 찾았다. 마침, 이날은 장인용 선수가 소속된 나가코프 FC가 경기를 갖는 날이었다. 이날 상대팀은 전년도 리그우승팀인 강팀 ‘스와이 웽 클럽축구팀’이었다.
 
그런데 경기 시작 전 잠시 만난 장 선수의 컨디션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전반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경기 내내 몸이 무거워 보였다. 공격을 이끄는 미드필드였지만, 패스도 종종 뺏기고, 유효슈팅도 제대로 날리지 못했다. 감독 표정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양팀 모두 득점기회를 살리지 못한 채 전반전을 0-0으로 마무리했다. 컨디션 난조로 후반에 교체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드는 전반경기였다.

하지만 후반경기가 시작되자 장인용 선수의 몸동작이 날래지기 시작했다. 여러 수비수들을 뚫고 전방으로 과감히 단독 돌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의 발끝에서 골대 위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는 유효슈팅도 여러 차례 나왔다. 경기가 활력을 찾자 관중들도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결국 후반 58분 드디어 기다리던 골이 터져 나왔다. 역시 주인공은 장인용 선수였다.

경기 내내 표정이 어둡던 그의 얼굴에 모처럼 미소가 번졌다. 동료선수들도 그를 얼싸안고 축하해주었다. 경기 내내 굳어 있던 감독 표정도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결국 이날 경기는 장선수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팀이 승리를 거두었다.

1라운드 8경기까지 치러진 가운데 이날 골을 포함해 장선수는 모두 3골을 넣어 득점랭킹 공동 5위를 기록중이다. 경기 후 팀 내 가장 친한 일본인 동료축구선수도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장인용 선수가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현재 김정호 선수가 뛰는 프놈펜 크라운 FC와 장인용 선수가 뛰는 나가 코프 FC가 6승 1무 1패로 나란히 공동선두를 달리고 있다. 올해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는 장인용 선수가 뛰는 나가 코페이레션 FC다. 하지만 김정호 선수가 뛰는 프놈펜 크라운 FC 역시 리그 우승도 넘보는 강력한 다크호스팀이다. 지난 2012년 AFC 프레지던트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할 만큼 저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체 연습경기장을 보유할 만큼 후원기업의 지원도 든든하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최대명절인 ‘쫄츠남’ 덕분에 이날 경기 후 두 팀 모두 2주간의 달콤한 휴식기간에 들어간 상태다. 하지만 오는 26일 오후 6시(현지시각) 이들 최대 라이벌팀 간의 경기가 프놈펜 올림픽주경기장에서 펼쳐진다. 이번 경기 결과에 따라 공동선두로 달려온 양팀의 순위도 갈릴 예정이다. 양팀을 대표하는 대한민국 선수들간의 대결도 볼 만할 것이다.
 
한국선수들이 캄보디아 프로축구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된 교민사회도 이들 선수들 간 맞대결에 관심이 높다. 양성모 한인회장과 교민들도 당일 경기를 참관, 이들 선수들을 응원하고 격려할 예정이다.
 
김정호 선수에게 앞으로의 꿈을 물어봤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축구유니폼을 입은 후 지금까지 축구만 생각하고 살아왔어요. 축구가 (저한테는) 전부죠. 더 열심히 뛰어서 명성도 얻고 싶고, 캄보디아보다 더 큰 축구시장을 가지고 있는 이웃나라 베트남이나 태국 프로팀에서도 뛰어보고 싶어요”
 
장인용 선수 역시 같은 꿈을 갖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은퇴 후 계획은 조금 달랐다. 김정호 선수는 축구관련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고, 장인용 선수는 축구감독이 꿈이라고 말했다.
 
젊은 패기와 도전정신으로 자신들의 꿈을 이루려는 도전하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모습이 가상하다. 아무쪼록 이들의 꿈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
 
“꿈은 도전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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