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10년이면 나무, 100년을 내다보면 인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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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10년이면 나무, 100년을 내다보면 인재를"
  • 재외동포신문
  • 승인 2014.04.0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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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광저우한국학교가 있기까지,뚝심과 열정으로 이뤄낸 양창수총영사

▲양창수 광저우총영사.
2013년 9월 광저우시 판위구에서 광저우 한국학교가 개교를 했다. 베이징, 상하이 등에는 한국학교가 오래 전에 설립되었지만 1500여 개 한국기업과 5만 명 이상의 재외국민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도  중국 광동성의 성도인 광저우에는 뒤늦게 설립되었다.

그 동안 광동성에 터를 잡고 생활하는 한국인들은 자녀교육에 있어서 두 가지 선택을 놓고 늘 고민에 빠져 있었다.

첫째로, 좋은 시스템과 교육환경을 가지고 있는 국제학교는 엄청난 학비가 부담이었다. 둘째로, 현지인들과 함께 다니는 로컬학교는 상대적으로 학비부담이 적었지만 자칫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한국과는 많이 다른 교육시스템으로 인해 자녀들 교육에 혼란을 주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최근 국내외적으로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광동성에 거주중인 한인들로부터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를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학교 설립은 광동성 거주 학부모들의 염원이 되었고 그 필요성은 실로 절실했다.
 
2년 전 윤호중 광저우 한국상공회 회장이 광저우 한국학교 설립을 공약으로 천명했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반신반의했던 것이 사실이다. 중국에서 작은 회사 하나 설립하는 것도 상상외로 난관이 많다는 것을 이곳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데  교육시설을, 그것도 중국과 한국 양국에서 공식인가를 받는 정식학교를 단기간에 설립하겠다는 말이 공수표처럼 들렸던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광저우 한국학교는  설립을 발의한 광저우 한인상공회와 광저우 한국학교 설립추진위원회의 노력과 희생이 무엇보다도 우선 언급되어야 하겠지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국학교 설립과 관련 가장 든든한 조력자는 양창수 주광저우총영사의 열정과 지원이 실로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중론이다.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하려는 민간단체와 이를 내 일과 같이 발 벗고 나서준 공관이 최상의 하모니를 이루어 낸 작품이 바로 광저우 한국학교가 아닌가 한다.
 
광저우 한국학교는 지난 2월 7일자로 한국 교육부의 승인을 받았다. 이로써 중국 화남지방의 중심인 광동성의 성도 광저우에 한중 양국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은 최초의 정식학교로 거듭난 것이다. 그 설립과정과 미래상을 조명해 보고자 양창수 광저우총영사가  그동안  쏟았던 노력과 열정을 되짚어 본다.
 
재외동포 1순위 사업 [한국학교 설립]
▲중국에서의 인허가는 어렵다? 안 된다? 꽌시로 하면 된다? 현지 교민들의 이런 통념을 양창수 총영사는 강하게 부정한다. "노력, 그리고 충분한 준비로 정당하게 밀어 붙여서 안 되는 일은 없다. 그 어떤 일도 그 어떤 사람도 눈에 보이는 노력과 정성을 외면할 수는 없다." 지극히 평범한 양창수 총영사의 이 말은 중국 내 12번째, 그것도 초고속으로 개교한 광저우 한국학교의 설립과정속에 오롯이 녹아있다.

 
양창수 총영사의 광저우 근무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광저우에 총영사관이 첫 설치된 2001년도에 초창기 창설 멤버로 근무한 인연이 있다.

당시 광동성에 체류중인 재외국민은 약5,000명이었는데 현재는 5만 명이 넘을 정도로 한인사회 규모가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재외국민이 급속히 커짐에 따라 경제활동도 대폭적으로 늘어났고 특히 이곳에서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더불어 증가했다.
 
광동성내 대표적인 외국인 커뮤니티로 한인사회가 이렇게 커져 가면서 한인들이 현실적으로 접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자녀 교육문제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학교를 만드는 것 외에는 마땅한 방안이 없었다. 비싼 국제학교는 여전히 부담스럽고 로컬학교는 학부모 입장에서는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양창수 총영사는 부임시기인 2012년 초 광저우 교민들의 가장 절실한 문제가 바로 한국학교 설립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부임 전부터 구상했던 여러 가지 계획 가운데 이 과제를 제1순위로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1998년 베이징에 근무할 당시 이미 북경한국국제학교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던 터라 누구보다도 한국학교 설립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는 양창수 총영사는 서둘러 플랜을 짜기 시작했다.
 
부임 초기에 이 일을 하지 못하면 임기 내에 마무리 하기 힘들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부임하면서 바로 이 일에 메달렸다. 마침 광저우 한인상공회에서도  한국학교 설립을 주요사업으로 추진하려던 터라 시기적으로도 잘 맞아 떨어져 함께 시작할 수 있었다.
 
쉽지만 않았던 설립과정

막상 출발은 했지만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다. 사실 한국학교는 모두가 필요성을 절감하는 숙원사업이었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였다. 이렇게 학교 및 시설, 학생, 선생님, 자금, 설립추진위 등 무엇 하나 없는 상황에서도 양창수총영사가 이 일을 밀어부칠 수 있었던 것은'목표가 분명하고 대의명분이 있는 것이라면 일은 반드시 성사된다'는 강한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교민들의 의지와 바람이 확실하고 한국상공회의 추진결의 역시 확고했다. 이처럼 광저우한국학교 설립은 현실과 명분 모두 분명하고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어 성사될 수 밖에 없다고 믿고 처음부터 '된다' 라는 일념으로 일을 추진해 나갔다.
 
하지만 문제는 중국측과의 교섭이었다.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중국측이 처음부터 발벗고 나서줄 리는 만무했다. 양창수 총영사는 중국측 관계자들과 끈질긴 접촉을 통해 학교설립에 대한 당위성을 설득하고 확고한 의지를 보이며 협조를 구했다.

이런 백방의 노력이 통했는지 중국측은 이례적으로 판위구에서 건축해 놓은 A급 학교시설을  한국인 커뮤니티를 위해 임대를 하겠다는 결정을 이끌어 내기에 이르고 더불어 기대 이상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건물 임대를 받는 덤까지 누리게 된다.
 
그 다음은 인허가 절차, 다시 하라면 못 할 것만 같은 그 어마어마한 절차와 과정을 준비하느라 관계자들과 야근을 밥 먹듯 했다. 양창수 총영사는 이 과정을 놓고도 또한번 중국측 관계자들과 끈질긴 협상을 벌였다. 판위구 승인을 거처 광저우시 교육부, 광동성 교육청까지 모든 승인절차를 끝내기까지 1년여 시간이 걸렸다.
 
일이  여기서 끝난것은 아니었다. 시설 준비, 학생 모집, 선생님 초빙, 교과과정 준비 등 산적한 과제를 신속히 극복하고자 한인상공회와 영사관이 주축이 되어 TF(Task Force)팀을 꾸려 중점적으로 하나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TF 구성원들은 생업도 미뤄두고 자기가 맡은 부분을 말 그대로 '미친 듯' 노력한 끝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짧은 기간 안에 일을 매듭지을 수 있었다.
 
2012년 계획 수립, 2013년 3월부터 TF 팀을 주축으로 설립 추진, 동년 7월 최종단계 광동성 교육청 인가, 8월 내부장식 및 시설집기 비치 완료와 함께 마침내 9월 2일 학교문을 열게된다. 한국도 아닌 외국, 그것도 '만만디'의 중국 내에서 이루어낸 일이라고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너무 단기간에 이룬 성과임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본국 지원이 전무한 상태에서 한인상공회, 학부모, 공관 만의 힘으로 이루어낸 광저우 한국학교는 해외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상적인 형태로 마무리한 좋은 사례와 귀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말 하기 전 먼저 최선을 다 해 준비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해에 이뤄진 학교설립과 관련 복잡한 중국 인허가 취득, 올 초 한국 교육부 인가 취득과정까지 소요된 시간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는데 놀라며 그 비결을 궁금해 하고 있다. 흔히 중국에서는 무슨 일을 추진할 때 인맥관계를 의미하는 꽌시(關係)를 중요하게 여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온갖 꽌시를 동원해 부탁이나 청탁을 하는 것이 중국에서의 사업추진의 알파요 오메가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중국에서 외교관으로 경험과 실무를 두루 익힌 양창수 총영사의 접근방법은 달랐다.
먼저 나부터 최선을 다 한다.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 하고 부탁은 그 다음이라는 마인드로 처음부터 일을 시작했다. 이런 접근방법은 기존의 '꽌시'통념을 깼다. 광저우 한국학교 설립이 그 어느 비교 사례보다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던 또다른 바로미터가 된 것이다.
 
비결아닌 이 비결은 뭘까? 양창수 총영사는 1998년 북경에서 대사관의 영사로 근무하던 시절, 북경한국국제학교 설립 추진 업무를 맡으면서 당시 2년을 해도 될까 말까 하는 일을 몇 달을 밤새워가며 준비한 끝에 불과 3개월여 만에 중국측 인가를 취득한 선험이 결정적 토대가 됐다.

중국에서의 인허가는 어렵다? 안 된다? 꽌시로 하면 된다? 현지 교민들의 이런 통념을 양창수 총영사는 강하게 부정한다. "노력, 그리고 충분한 준비로  정당하게 밀어 붙여서 안 되는 일은 없다. 그 어떤 일도 그 어떤 사람도 눈에 보이는 노력과 정성을 외면할 수는 없다." 지극히 평범한 양창수 총영사의 이 말은 중국 내 12번째, 그것도 초고속으로 개교한 광저우 한국학교의 설립과정속에 오롯이 녹아있다.
 
▲십시일반의 기금조성
 
광저우 한국학교는 그 시작단계부터 "지역 내 한인 스스로의 역량으로 이루자" 라는 의지를 가지고 출발했다. 인민폐 1,000위안부터 몇 십만 위안까지, 무기명으로 보내준 상당한 금액까지 모두 자발적인 십시일반으로 그 기금이 조성되었다.

한인사회 2세들의 교육환경을 위한 모든 교민들의 열망이 이를 가능케 한 것이며, 이러한 절실한 노력의 모습은 중국 현지 개인과 중국 기업들의 후원금도 가능하도록 했다.
 
후원금 현황표를 보면 어떤 이는 활동하는 단체의 공동후원금으로도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개인차원에서 또 상당금액을 지원하다 보니 자칫 편집실수로 인한 중복기재가 아닌가 의아해 할 수도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그렇게 제공된 후원금으로 광저우 한국학교는 성공리에 개교를 할 수 있었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양창수 총영사는 말한다.
 
앞으로 광저우 한국학교가 독립된 건물에서 완전한 형태로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광저우 한국학교가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지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지원이 절실하며 이제 그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한국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이나 기업 이미지를 떠나 훗날 중국 화남지역 최초의 공식 한국학교를 설립하는데 동참하여 2세교육을 위해 기여했다는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일일 것이라고 양창수 총영사는 후원을 강조했다.
 
광저우 한국학교의 현재와 미래상

광저우 한국학교가 벌써 한 학기를 잘 마무리하고 첫 졸업식과 함께 새로운 입학생도 맞이하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양창수 총영사는 가슴이 뿌듯하다고 말한다. 그는"사람이 1년을 생각하면 곡식을 심고, 10년을 생각하면 나무를 심고, 100년을 생각하면 인재를 기른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인사회가 지난 2년여 시간 동안 혼신을 다한 사업이 이제 그 첫 발을 내디뎠고 훗날 이 곳을 거처간 인재들이 한국과 광동을 잇는 중추적인 교량으로서 역할을 하고 한국학교가 훌륭한 교육 인프라로 발전할 것을 기대하면 누구나 가슴이 벅차 오름을 느낄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밑그림을 그리는데 작은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양창수 총영사는 마지막으로 이 곳 학생들에게 당부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광저우 한국학교의 학생들이 한국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국제화된 안목을 기르고 그 위에 광동성 특유의 개방성과 실용성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된 사람, 든 사람, 난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이념적인 공리공담을 하지 않고 다양한 문화와 양식을 잘 받아들이고 이해할 줄 아는 실사구시의 인재를 기대하는 것이다.
 
중국과 한국은 지리적으로 보나 문화.역사적으로 보나 우리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숙명의 이웃이다. 이는 지구가 존재하는 한 변하지 않는 사실로서 이를 실용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잘 수용한다면 우리에게는 큰 장점이 될 것이다.
 
전세계 70억 인구 중 영어로 대화가 가능한 인구가 15~20억, 중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인구 역시 15-17억 정도로 볼 때 장차 광저우 한국학교의 졸업생들은 자연스럽게 전 세계 인구의 반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국제적 감각을 지닌 인재로 육성될 것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광저우 한국학교와 전세계를 배경으로 역량을 펼쳐나갈 학생들의 미래를 그려보면서 양창수 총영사는 그 초석을 다지는데 일조를 했다는 것에 큰 기쁨과 자부심을 느낀다. 동시에 광저우 한국학교가 나날이 발전하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학교 주소 및 연락처
- 广州市番禺区大石镇南村镇锦绣香江内广州韩国学校
- 020-3885-1651(koreagz@koreag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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