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카우뱅크'로 여는 캄보디아의'새마을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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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카우뱅크'로 여는 캄보디아의'새마을 꿈'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4.03.26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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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새마을회, 암송아지 10마리 기증 통해 자력갱생의 새마을정신 심어

▲ 박광복 캄보디아지회장과 정평화 새마을지도자협의회 회장을 비롯한 시군대표들이 암소기증식 후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정지용의 시 '향수'에는 이런 아름다운 싯귀가 나온다.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가수 이동원이 불러 노래로도 대중들의 사랑받는 이 시를 감상할 때는 늘 시골 황토길 달구지를 끌던 워낭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어린 시절 외양간에서 한겨울 하얀 입김을 쏟아내며 큰 눈망울을 굴리던 누렁이는 '순하고 착함' 그 자체로 기억된다.

▲ 암송아지기증식에 참석한 새마을지도자 강원도협의회 시군 대표들과 수혜농민들.

우리에게 소는 어떤 존재일까?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이라면 소와 관련된 추억 하나 정도는 다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픈 송아지 안고 자던 일, 정든 누렁이가 팔려 나가던 날 앞마당에서 뒹굴며 엉엉 울던 일, 자식 다음가는 소중한 식구였고, 집안의 일꾼이었다. 소팔아 대학가던 시절에는 든든한 자산이기도 했다.
▲ 장학금전달식후 해맑게 웃는 어린학생과 함께 포즈를 취한 박광복새마을회 지회장.

가난한 캄보디아 농촌사람들에게도 소는 여전히 집안 재산목록 1호다. 자식을 읍내로 학교를 보내거나, 시집장가를 보내기 위해 소를 파는 것도 우리네 옛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과거 5~60년대에는 캄보디아 농촌에도 소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70년대 ‘킬링필드’로 불리는 내전을 겪으며 크메르루즈에 빼앗기는 바람에 집집마다 한~두마리 기르던 집들도 사라졌고, 소를 전문으로 기르는 사육농가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더욱이 가난한 국가재정에 정부차원의 지원도 거의 전무한 터라 이 나라 축산업은 더 이상 발전을 하지 못했다.

수도 프놈펜은 공사현장을 방불케 할 만큼 고층빌딩이 하루가 멀게 올라가며 발전하고 있지만, 농촌은 사정이 다르다. 농촌경제는 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다, 주민들의 삶은 피폐하고, 교육수준마저 낮다. 심지어 시골에 살면서도 소를 어떻게 기를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 이날 25일(현지시각) 암송아지 분양받은 농민들의 모습. 수혜농민 초은 삼랑씨(40세.가운데)는 암송아지를 받고도 믿어지지 않아 잠을 설쳤다고 말했다.

마른 들판에 간간히 보이는 소들도 마른 볏짚을 먹으며 앙상한 엉치 뼈를 들어낸다. 전국 어디를 가든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농촌풍경이다. 하지만, 한달 벌어 간신히 끼니를 이어가는 형편에 대부분의 가난한 농가입장에서 소를 사거나 키운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기르고 싶어도 소를 살 돈이 없다.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이라고 해봐야 우리 돈 5~6만원도 되지 않는 남루한 살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은 시골 마을에 기대치 않던 정말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 기증식행사 종료 직후 주민들과 학생들이 황톳길을 따라 귀가하는 모습이다. 왼편으로 최근 만든 농업용 관개수로가 보인다.

강원도새마을회(회장 박종인)가 직접 송아지를 나눠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처음에는 마을사람들도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고 한다.

강원도의 새마을 육성프로젝트는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됐다.

춘천시 지회가 수문설치를 해준 계기를 시작으로, 지난 2010년부터 강원새마을회는 ‘소난차이’라 불리는 이 작은 시골마을을 새마을시범마을로 집중육성해왔다.

교실이 부족해 운동장 그늘에서 수업을 받던 아이들을 위해 새교실도 만들어 주고, 마을길도 대형버스가 들어갈 만큼 좋아졌다.

한서라이온스 클럽은 우물도 파주었다. 강원일보(사장 이희종)도 사업홍보에 적극 힘을 보태 주었다.

소난차이 마을이 쁘레이 벵주(州)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동네가 된 것은 여러 회원들의 노력도 컸지만, 누구보다 박종인 강원새마을회 회장의 공이 크다.

이번 암송아지 지원 사업 역시 박회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다. 그냥 무작정 지원만 해줄 것이 아니라 이 나라 농민들이 스스로 자력갱생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는 게 진정한 새마을정신이 아니겠냐는 게 그의 평소 지론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계속 이어졌다.

▲ 이 어린 소년의 해맑은 미소처럼 소난차이마을이 풍요롭고 잘사는 그런 마을로 거듭나길 소망해본다.

‘카우뱅크’로 명명된 이 사업을 통해 송아지 10마리를 희망농가에 전달했다. ‘카우뱅크’ 육성사업의 취지를 듣고 박형배, 김병남, 박창운씨 등 개인들도 기증대열에 합류했다,

단 조건은 있다. 2년간 기른 후 낳은 새끼로 돌려주거나, 그 만큼의 금액을 상환하는 조건이다. 이렇게 해서 늘어난 소들은 엄격한 자격심사를 거쳐 선발된 다른 희망농가에게 분양해주는 방식이다. 소식이 알려지자, 닭 한마리 기를 돈이 없어 빈곤하게 살던 마을주민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25일(현지시각) 열린 암송아지 기증식에는 본 행사를 주관한 정평화 새마을 지도자 강원도협의회 회장을 위시해 강원도 각시군 새마을회 대표 등 10여명과 함께 박광복 강원도새마을회 캄보디아지회장, 김석수 사무국장 등이 참석했다. 지역 유지대표들과 관계공무원, 학생 백 여명이 박수로 이들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암송아지 전달식에 이어 3년째 이어온 장학금과 학용품도 학교측에 전달했다.

▲ 캄보디아 농촌들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른 소의 모습.

아무쪼록 강원새마을회가 글로벌 캠페인의 일환으로 전개하는 카우뱅크 육성사업이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잘 키운 암소 한 마리 덕분에 자식들 시집장가 다 보내고, 평상에 앉아 뜨신 밥 한술 국 한그릇 맛있게 더 먹을 수 있는 그런 지구촌 세상이 된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농가에 분양된 암송아지들이 무럭 무럭 잘 크기를 바라며, 농가소득도 쑥쑥 올라가길 바란다. 강원새마을회의 노력에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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