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내 마음의 '작은 소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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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 마음의 '작은 소녀 상'
  • 이신욱 박사
  • 승인 2014.01.2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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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욱(모스크바 대학교 정치학 박사)
 제 2차 세계대전은 인류역사상 최악의 피해와 함께 최대의 전쟁으로 기억하고 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5천만이 넘는 수많은 희생자들과 함께 나치와 군국주의의 전쟁범죄가 어떤 것인지를 낱낱이 보여주었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집시라는 이유로 나치에게 6백만이 집단학살을 당했던 유럽과 간도참변, 난징대학살, 731부대, 종군위안부 등으로 알려진 일본 군군주의의 만행은 도덕과 이성을 상실한 극우민족주의자들의 전쟁범죄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나치와 군국주의 일본은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범죄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전쟁이라는 명분하에 인권은 철저히 유린되었고, 실험대상인 소위 마루타들에게서 얻은 정보들은 ‘인류의학의 획기적인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되기도 했다. 그러나 만주 731 부대와 아우슈비츠에서의 생체실험은 그 어떤 명분에도 있을 수 없는 잔혹한 전쟁범죄며 인권유린 사례다.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삶을 꾸려나갈 것인가? 라는 기본적인 인권을 가진다. 이러한 보편적인 인권은 어떠한 국가도 침해할 수 없다는 믿음을 우리에게 갖게 했으며, 도덕과 양심 그리고 이성을 중심으로 우리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다.  
 
 요즘 제 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피해자들에 대한 논의로 뜨겁다.
 
바로 우리 할머니들 이야기다.

혹자는 종군위안부가 자랑이냐? 매매춘을 한 것 아닌가? 라며 할머니들을 모욕하고 있다. 이러한 의견들은 도덕과 이성의 마비에서 오는 ‘무식의 극치’라 하겠다. 일본군에게 강제로 납치되어 인권을 유린당하며 성노예로 살아가야 했던 그 오욕의 세월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또한 위안부 문제는 매매춘의 문제, 한․일간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보편타당한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1992년 1월 8일은 역사적으로 매우 뜻 깊은 날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희생자들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처음으로 모여 ‘여성인권’에 대해 일본정부의 사죄를 요구한 날이다. 처음 수요모임은 극소수 뜻 깊은 이들이 모임을 가지면서 시작되었으나,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집회로 발전하고 있고, 점점 많은 이들이 동참하고 있다. 이는 인류의 양심이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로 한국에서는 평화 소녀상 건립과 수요 집회로, 미국에서는 상하원의 위안부 결의안과 주미 한인회를 주축으로 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진행되고 있고, 유럽에서는 일본 위안부 해결 서명운동이 재불 한인회를 주축으로 유럽 전체로 들불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일본의 아베정권은 애써 외면하며 야스쿠니 참배를 통해 제 2차 세계대전의 피해국임을 강변하고 있고, NHK 사장은 “위안부는 어느 나라에도 있는 것”이라며 피해 할머니들을 폄훼하고 조롱하고 있다. 또한 일부 극우 정치인들은 반성은 커녕 미국 평화소녀상을 찾아 모욕을 안기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이는 권력과 힘이 있다면 언제든지 여성인권은 짓밟아도 된다는 시각으로 매우 우려스럽고, 동양평화와 일본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69년, 아직도 그들은 반성하고 있지 않다.  
      
 2011년 12월 14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중학동 18-11, 주한 일본대사관 앞 도로에 ‘작은 단발머리 소녀’의 동상이 세워졌다.

1992년 1월 8일, 첫 수요집회가 열린지 거의 20년만의 일이다. 지금도 그녀는 말없이 일본대사관을 향해 앉아 있다. 그녀의 한 많은 세월과 고통, 눈물을 우리는 애써 외면하지 않았을까? 그동안 내 마음의 주홍글씨를 외면하지 않았나는 생각에 몹시 부끄럽다.

그녀는 우리의 사랑하는 누이였고 어머니였으며, 할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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