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고려인 이주 140주년에 관심을(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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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의 소리] 고려인 이주 140주년에 관심을(펌)
  • 김종헌
  • 승인 2004.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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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박상남 한국외대 외국학종합연구센터 교수] 올해는 한인이 러시아령으로 이주한 지 140주년이 되는 해다. 조선 말 열강의 침탈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가난을 피해 노령(露領)으로 이주한 한인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크게 늘어나 현재 러시아 지역에만 15만여명이 살고 있다.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포함하면 50여만명이나 된다.

한인들은 1860년대 이후 연해주 등지에서 집단거주촌을 형성하며 생활하다 제1차 세계대전과 볼셰비키 혁명을 거쳐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조치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집단이주했다. 39~45년에는 15만여명이 일본의 동원령에 의해 사할린 등지에 강제징용돼 옛 소련 땅에 또 다른 집단 유입이 이루어졌다. 이들 중 4만여명이 아직도 사할린에서 거주하고 있다.


한인들의 유랑운명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소련이 해체되며 소연방 소속 공화국이었던 15개 공화국들이 새롭게 독립했다. 한인들도 갑작스럽게 신생 독립국의 국민이 되기도 했고 내전에 휩싸인 정착지를 떠나 새 지역으로 떠나야 하는 운명에 처하기도 했다. 이처럼 옛 소련 지역 한인 이주사는 우리 민족 해외 이주사 중 어느 지역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한인들은 러시아 내 100여 소수민족 중 가장 빛나는 성취를 이룩한 소수민족이자 뿌리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민족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올해 한인 이주 140주년을 맞아 범정부 차원의 행사를 마련해 이들의 성취와 앞으로의 발전을 축하하는 대대적인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행사지원과 행사조직을 추진할 조직위원회 구성을 지시하는 총리령이 발동됐고 6월에는 재선이 확실시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대통령 축하메시지가 발표될 예정이다. 또한 연해주 사할린을 비롯한 러시아 10여개 지역에서 각종 공연과 학술행사.전시회 등도 열린다.


지난 2월에는 한인들의 손으로 이주 140주년 동안의 한인활동사를 담은 '한인백과사전'을 펼쳐내기도 했다. 이 '한인 백과사전' 편찬작업은 원래는 한인 1세대가 생존해 있던 1914년 러시아 이주 50주년을 기념해 추진됐으나 제1차 세계대전과 볼셰비키 혁명으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이번에 빛을 본 것이다.


소수민족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깊은 러시아 학계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이 '한인 백과사전'은 순수 편찬작업에만 2년여의 시간이 걸렸고 참여한 분야별 전문가들도 50여명이나 된다. 여기에는 한인의 인종적 특성에서부터 한국어, 한인의 역사, 러시아에서의 한국학 현황 등이 주제별로 담겨 있으며 한인역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대표적 명사 1500여명도 수록돼 있다. 한인의 역사와 관련이 깊은 러시아인들의 활동사도 포함돼 있다. 러시아 민족부 장관 니콜라이 조린은 "러시아 내 수많은 소수민족 중 이처럼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작업을 진행한 민족은 한인이 처음"이라며 한인들을 칭송할 정도다.


이 백과사전 작업이 특히 의미를 갖는 것은 편찬의 주된 작업을 러시아 내 한인동포들이 주도했고 여기에 남북한 정부가 예산과 자료지원을 했다는 점이다. 남북한을 비롯한 모든 한인들이 이념과 체제를 떠나 같이 했다는 점에서 이번 '한인 백과사전' 편찬은 또 하나의 작은 통일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노령(露領)에는 식민지시대 이 지역으로 이주한 수많은 문인들의 작품과 미발표 작품, 활동사 등 미정리된 역사와 문화들이 널려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주 1세대를 기억하는 2세대들이 살아 있다. 한인이주 140주년을 맞아 이들의 활동사를 수집.편찬하는 작업을 지원하는 운동이 들불처럼 타오르길 기대한다.



박상남 한국외대 외국학종합연구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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