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이중언어 교육을 열어나가는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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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이중언어 교육을 열어나가는 재미동포
  • 김귀옥 한성대 교수
  • 승인 2013.10.15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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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옥(본지 편집위원/한성대 교수)

지난 9월 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Orange County, OC)에서 한국어 이중언어 학교가 첫 수업을 했다. 열성적인 재미동포 학부모와 헌신적인 교사들이 작년부터 뜻을 모우고 길을 찾으며 함께 노력한 것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다.

OC 랭기지 아카데미는 로스엔젤레스의 차터스쿨인 고먼러닝센터의 OC 분교이다. 첫 학기는 내년 봄학기까지 일반 미국의 공립학교 커리큘럼에 따라 유치원 18명, 1학년 8명, 2학년 2명의 학생들이 한국어와 영어로 된 수업을 터스틴장로교회(Tustin Presbyterian Church)에서 받게 될 것이다.
신입생 모집 공고가 나자 예상 정원의 2배되는 한인들이 신청하여 부모가 참관하는 가운데 최종 28명 학생을 선발하게 되었다. 그 학교측은 내년 신입생을 추가로 모집하면 현재의 공간이 부족해서 학생들이 수업하기 좋은 환경으로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게 현재 큰 숙제이다. OC 랭기지 아카데미가 개설되는데 견인차 역할을 담당해온 사람은 OC 랭기지 아카데미 OC 분교 책임자인 유영임 씨이다.

유영임 씨는 4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1.5세 재미동포이다. 한인이 드물었던 미국 중부지방에서 자라는 동안, 부모님은 여타의 이민 1세대부모들처럼 그녀와 오빠가 미국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학교에서는 말할 것도 집안에서도 영어를 사용하도록 했다. 어린 시절 그녀는 미국인, 그것도 백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의 노오란 얼굴과 검은 머리를 싫어했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금발 가발을 사달라고 조르기도 했었다.

그런 그녀가 대학을 다니면서 차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스테이크보다는 김치와 된장찌개, 마늘을 더 좋아하는 식성 때문에 대학 기숙사 생활에서 얼마나 고생했던가를 회고할 때는 눈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김치가 그리워 간혹 집을 방문하고 기숙사로 돌아올 때는 비밀물품 반입하듯 몇 겹을 싼 김치를 가져왔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뼈 속까지 한국인임을 깨닫게 될 무렵, 자신이 다니던 대학 외국어 강좌 중에 한국어가 없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 당시 그녀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청원에 따라 새로운 과목이 개설되기도 하여 그녀는 친구들을 설득하여 서명운동을 벌여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대학을 마치고 캘리포니아의 아시아계나 한국계 NGO 등에서 활동을 했다. 한국에 2년간 연수를 나와 한국어나 한국문화, 사물놀이, 한국전통음식 등을 배웠고 그때 나를 만났다. 한국에서는 동두천의 미군기지촌여성지원단체인 두레방에서 일하기도 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캘리포니아에서 교사를 하면서 이중언어 교육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깨달았다. 외국인 이주자로 산다는 것이 주변인으로 차별당하며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체념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소중하다는 생각에 미쳤다. 결혼 후 40살이 넘어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민족 정체성으로 인해 혼동을 겪게 하지 않으려면 이중언어교육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살고 있는 오렌지카운티에 한국어 이중언어 교육 프로그램을 가져와야겠다고 작정을 하며,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학부모들, 함께 조직한 ‘OC코리안 맘스’ 회원들이나 재미동포들에게 가능성을 이해시키고 납득시키는 운동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요성을 절감하지만, 미국의 교육제도 하에서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다.

작년 11월 13일에 있던 터스틴 교육구에서는 OC의 한국어 이중언어 프로그램 시행을 위한 차터스쿨 설립안이 부결되었다. 5명의 교육위원회 이사들 중 4명이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찬성했던 이사와 함께 다시 설득작업에 들어갔다. 그녀는 “설립안이 승인된다면 교육구로부터 예산이나 인력을 지원받지 않고도 학교가 잘 운영될 수 있다”(『중앙일보LA판』 2012.11.14.일자)고 주장했다. 그 회의에서 한국어 이중언어 도입은 좌절되었으나, 그녀와 학부모들은 서명운동, 홍보 등과 같은 끈질긴 노력 끝에 2013년 9월 첫 학기를 맞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이중언어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 관심은 정부 당국이나 시민사회에서만 가져서는 될 문제가 아니다. 일차적으로는 피교육자 자신과 가족들이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부는 추이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유영임 씨의 사례처럼 주체들의 관심과 의지만이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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