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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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 임정희
  • 승인 2013.09.2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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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밤마다 꿈에 보던 고향집 학머리 동네 학두리. 그리고 일로역을 떠날 때 내 손을 다시 한번 잡아보려고 하시던 어머니 모습, 그러나 기차는 서울역을 향해 떠났다. 새벽에 자명종이 울리면서 다시 꿈에서 깨어났고 일어나기 싫었다. 그러나 근무처에 가야 했고, 아침식사 땐 빵과 빠다 그리고 마르멜라대며 귤을 먹으면서 펑펑 울던 생각이 난다. 고향 생각이 나서이다. 우리 어머니와 식구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언제 고향에 가게 될지 모르는 처지였기에 서럽기만 했었다. 그러던 시절이 2년이나 계속 되었던 것 같다. 다시는 이 시절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가 심적으로는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리라.

독일어를 배우면서 그리고 독일에 살면서 난 독일인들의 사고, 문화와 전통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인의 정체성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 사실은 내 맘을 슬프게 했지만 우리 중 누구나 이중문제와 접하면서 경험하는 현상이다. 내가 한국인으로서 개성화 하자마자 독일문화와 만났고, 그러므로 인해서 제2의 개성화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속한 민족은 한민족이다. 이것은 분명히 우리가 몸을 가지고 사는 동안만큼은 변하지 않은 사실이다. 내가 어느 문화권에서 사느냐는 변할 수 있으나, 내가 어느 민족에 속하느냐는 변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내가 상담해 주면서 느끼는 것은 사람들은 자기의 의사전달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흡족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우리의 예를 들자면 한 민족으로서 독일문화권에서 살면서 우리의 의사전달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독일에서 점점 더 오래 살면서 느끼는 것은 한국말을 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독일말도 가꾸지 않으면 늘지 않는다. 그러면서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우린 분명히 사회적 존재이다. 다른 사람들과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 버리고 남의 울타리도 들여다보는 것이 우릴 어울리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을까 싶다.

난 내가 어머니의 언어를 상실해 간다고 느꼈을 때 책을 읽기 시작했고 한국말을 쓰기 시작했으며 합창단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한국에도 2년 만에 한 번씩은 갔었다. 요즘은 어머니 살아 계시는 동안에 뵙기 위해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고향에를 간다. 내가 너무 한 쪽으로만 치우치다 보니 독일말을 소홀히 하는 것 같아서 요즘은 다시 독일어를 더 많이 하는 쪽으로 노력한다.

* 이 글은 『파독간호 40년사』에 실린 임정희 님의 수기 <35년의 회상록>에서 일부 글을 발췌 게재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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