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생긴 송편과 빈대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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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생긴 송편과 빈대떡
  • 김응수
  • 승인 2013.09.2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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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일, 케냐에 와서 6번째 맞는 추석은 유난히도 별났다. 20명인 넘는 아이들이 좁은 공간에 옹기 종기 앉아 송편을 빚고 빈대떡을 부치느라 북쩍북쩍 거려서 오래간만에 학당장 집은 활기를 띄었다.
                             
자기들 나름대로 문화선생님이 가르쳐 준 방법대로 예쁘게 송편을 만들었지만 모양은 웃음이 절로 나게 한다. 다 만든 학생은 이것은 어떠냐고 물어오면 학당장은 기다렸다는듯이 "꼭 너 같이 만들었구나" 하면 모두가 박장대소....키가 큰 녀석은 벼개처럼 길게 만들기도 하고 어떤 녀석은 자기 몸매와 유사하게 뚱뚱보를 만들기도 하고, 또 다른 녀석은 조각배를 만들기도 하였다.... 아무튼 너무 너무 신기하고 즐거워들 하였다 .
이곳 케냐는 송편과 유사한 음식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신기해 한 것 같았다.  송편안에 넣을 속은 참깨와 땅콩을 가루로 빻은 것에 설탕을 넣고 다시 절구통에 넣어 빻아 만든 것으로서 내가 먹어봐도 고소하고 달착지근해서 침이 절로 나올정도로 맛이 있었다. 
                 
▲ 옹기 종기 앉아 송편 만드는 아이들.
▲ 아이들이 빚은 제 각각의 송편들.
다른 학생들은 빈대떡을 부치는데 뒤집다가 찢어지고 부서지고 이름이 빈대떡이지 모양은 형편없다. 밤새 녹두를 불려서 껍질을 까고 믹서에 갈아서 돼지고기와 김장김치를 섞어 만든 재료인데 모양이 하도 엉망이니까 음식문화를 가르치는 문화 선생님이 한숨을 푹푹 쉬다가 결국은 본인이 직접 부치기를 반복하였다. 100% 녹두로 만든 비싼 빈대 떡인데 지저분하게 만드니까 속이 터진 모양이었다.

▲ 솥에서 갖 쪄나온 못 생겼지만 먹음직한 송편.
▲ 빈떡과 송편.
케냐에서는 밀가루로 만든 '자파티'라는 음식이 있는데 우리의 전과 유사하나 밀가루로만 만들어서 매우 단순하다. 한국의 부추전, 감자전, 김치전, 파전, 그리고 빈대떡 등의 다양한 한국의 전을 소개하면 아이들의 입을 다물 줄 모른다. 오늘 추석날엔 그 여러 가지 전 중에서 빈대떡을 선보였다. 두장 석장 마구 갖다 먹는 걸 보면 맛이 좋은 모양이었다. 내가 먹어 봐도 맛이 있는데 학생들이야 오죽하겠나 싶었다.
게다가 김치를 곁들여서 먹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김치가 매워서 "호호, 후후" 하면서 콜라, 사이다 등 음료수로 입을 달래는 모습을 보면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처음으로 김치를 먹던 모습이 생각이 났다.
쌀가루 10kg의 송편과 대형 양푼으로 가득히 준비한 빈대떡이 몇 분만에 동이 났다.

▲ 옹기 종기 둘러 앉아 맛 있게 먹는 아이들.
거의 다 먹어갈 무렵, 가야금을 연주하겠다는 지원자가 나왔다. 가야금 선생님으로부터 배운지 5일밖에 안된 아이인데 악보도 보지 않고 아리랑을 그럴듯하게 연주를 하는 걸 보니 역시 케냐 아이들은 춤과 음악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음악이 나오면 엉덩이와 어깨를 흔들어 대는 기질에서 나온 것 같았다. 가야금 선생님은 입을 다물 줄 모른다. 정말 신이 나신 모양이다.

▲ 문화 선생님이 신명나게 북을 치는 모습.
▲ 배운지 3일 밖에 안된 아이가 아리랑을 연주하고 있다.
신이 난 문화 선생님이 이번에는 장구와 북을 들고 나와서 우렁차게 두들겨 대자 학생들은 난리가 났다 소리 지르고 박수치고...
자기들도 장구와 북을 칠 수 있다는 학생들이 줄을 선다. 사물놀이를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아이들이 어떻게 장구와 북을 칠 수 있을까 염려를 했는데, 뛰쳐나온 아이들은 장구와 북을 들자마자 케냐스타일로 두들겨 패는데 리듬과 박자가 있는 신명나는 한마당이었다. 역시 사물놀이는 아프리카 케냐에서도 전통 아프리카의 북과 어울리면 정말 신명나는 한마당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넓은 학교 공간이 확보되면, 가야금뿐만 아니고 사물놀이도 가르쳐서 신명나는 세종학당을 만들고, 이를 통해 한류의 바람을 좀 더 세차게 불러 일으켜야겠다는 마음이 앞선 보람 있고 알찬 추석이었다.

[케냐=김응수 나이로비 세종학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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