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시대 해외 동포의 세대간 대화법
상태바
다문화시대 해외 동포의 세대간 대화법
  • 김귀옥 편집위원, 한성대 사회학과 교수
  • 승인 2013.08.20 14: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7월 중순, 독일의 한 대학에서 개최된 학술행사 참가차 독일을 방문했다. 출국하기 전에 평소 친분이 있는 재독 동포인 선배와 연락이 되어, 몇 년만에 만나기로 했다. 선배는 사업에서 은퇴하여 독문학 전공을 살려 독일 문학을 탐독하거나 통역이나 가이드, 독일 동포 사회 NGO 활동 등을 소일삼아 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선배 부인은 현직 간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1966년부터 10년간 한국에서 파독된 1만여 명의 간호사 중 한명이었다. 그녀는 성실하고 부지런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가정사나 자녀 교육에서 거리를 두고 있는 경상도 출신의 문학도인 남편을 만나 마음 고생이 있는 눈치였다.
특히 선배 부인의 가장 큰 걱정 중 하나는 남편과 자녀들과의 대화 부족 문제였다. 그 선배는 독문학자여서 독일어 실력이 꽤 있다고는 하지만, 문제는 언어 자체가 아니라, 젊은 세대들과의 의사소통의 결핍이나 부재였다.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선배의 딸이 “아버지는 우리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아버지 생각만 강요한다”고 말했다. 즐겁게 시작한 식사자리가 썰렁하게 끝났다.

이러한 이주 1세대와 후세대들간의 의사소통의 결핍현상이 그 선배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흔히 해외이주자들에게 해당되는 ‘문화적 동결’이라는 말이 있다. 즉 1970년대 이주자는 1970년대식으로, 1980년대 이주자는 1980년대식으로, 1990년대 이주자는 1990년대식으로 사고하고 판단한다는 말이다. 한국식 규범과 예절, 문화에 익숙한 이주 1세대들이 해외에서 태어나거나 자란 후세대들과 언어적 차이나 사회적 차이, 문화적 차이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세대간 의사소통의 곤란을 가져오는 문제는 또 다른 데에서 발생하는 것 같다. 대체로 이주 1세대들은 뼈 빠지게 일하여 2세대들에게 현지 사회의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는데 전력하다 보니 한국문화나 부모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한다. 밤낮 없이 일하는 게 일상이 되니, 부모들은 자식들과 이야기하기는커녕 얼굴을 마주보고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과거 민주화 이전에 해외이주한 이주자들의 경우에는 한국에 대해 이중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1세대 자신은 한국의 후진성, 비민주성을 경원시하면서도 자녀가 그런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자신을 비판하면 ‘버르장머리’ 없는 일로 여기다 보니, 부모자식세대간의 대화는 갈등으로 끝맺기 일쑤이다.
오늘 날 지구촌사회를 다문화사회라고 한다. 거시 사회만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의 문화도 이질적이기 쉽다. 기러기가족은 가족간 이질적 문화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해외동포들의 가족구성원들도 세대 간, 성별 간 문화격차가 크다. 문화격차는 가족들간에 의사소통의 장애물이 된다. 자녀들을 위해 헌신하는 이주 1세대들은 자신의 희생이 커질수록 자녀들에게 불만이 커지기 마련이다. 또한 자녀세대의 입장에서는 부모들은 일과 돈을 위해 자기 인생을 외면하는 사람들로 인식되기도 한다.

다문화사회에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관용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관계는 더욱 소원하게 될 뿐이다. 과거 한국인들에게 가족이 보다 각별했던 것은 가족의 헌신과 희생의 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민주화된 세상에서 가족들의 관계가 일방의 헌신이나 희생에 기초한 가부장제 문화만으로는 아름다운 관계가 되지 못한다. 가족 간에도 차이에 기초한 이해와 관용의 문화가 수용되어야 한다.
해외동포의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와 조화로운 가족관계를 누리기 위해서는 상호 이해와 관용에 기초한 의사소통법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자녀들도 부모를 이해하기에 힘써야 하지만, 부모가 자녀들을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이주 2세대인 자녀들은 현지사회와 통하는 창(窓)이므로 부모는 오히려 자녀의 문화를 배울 필요가 있다.

나아가 해외 공관들도 세대 간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한다. 급변하고 있는 한국 사회 문화에 대해서도 한류문화라는 것을 뭉뚱그려 교육하기 보다는 해외동포의 세대별, 성별 맞춤형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소개할 필요가 있다. 자녀를 위한 한국문화 교육이 아니라, 부모를 위한 한국문화 교육이나 현지 이해교육이 절실하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