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김향안 여사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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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향안 여사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다
  • 강익중
  • 승인 2004.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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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향안 여사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하셨고 늘 어린아이의 맑은 웃음을 가지신 분이셨다.
먼저가신 수화 김환기 선생님과 함께 사용하셨던 맨하튼의 작업실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다.
키 크신 수화 선생님에 맞추어 시멘트 블록이 받쳐진 높은 작업대, 벽에 가지런히 세워진 캔바스틀들, 수화 선생님이 손수 만들어 주신 사모님의 작은 나무의자……
주무시던 작은 방에는 오래된 흑백 텔레비전과 여행 가방이 전부이다.
언제 어디서든 가볍게 우리 사는 곳을 떠날 준비를 하신 분이셨다.

8년전 사모님을 모시고 빠리를 다녀온 적이 있다.
“사모님 이상해요. 한번도 뵌 적이 없는 수화 선생님 꿈을 다 꿨어요.”
“그래? 나는 매일 꿔.”

눈이 많이 쌓인 어느 날 사모님과 함께 뉴욕 업스테이트에 있는 수화 선생님 묘소를 찾았다.
생전에 선생님께서 즐겨 피우시던 불란서 담배 고르와즈를 준비하셨다.
“익중아, 네가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아서 눈에 꽂아라.”
“못하겠는데요.”
“아니, 왜?”
“담배를 한번도 입에 안 대어 봤거든요”
“미친놈”
사모님께서 대신 깊이 빠시고 건네 주셨다.
돌아 오는 길 사모님께서는 계속 마른 기침을 하셨다.

“며칠째 난데없이 참새 한 마리가 뒤뜰에서 날아다닌다. 너 왜 짝을 잃었니? 혼자 날아다니니 공원에 가지 왜 여기 먹을 것이 있어서 그러는가? 위층에서 창가에다 빵 부스러기라도 놓은 건가 했는데 오늘 아침엔 두 마리가 흐르르 날아간다. 짝을 잃은 것도 아닌데 왜 하필 이 구중 구중한 뒷마당에서 노는 걸까?”
-우리끼리의 얘기 중, 1992년 4월 12일 일기-

생전에 수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외롭지 않다. 나는 별들과 함께 있으니...... ”
더 이상 사모님께서는 혼자 작업실을 지키며 먼저 가신 선생님을 그리워하시지 않아도 된다.
사모님께서는 벌써 하늘의 별이 되어 수화 선생님을 만나고 계실 것이다.
우리에게 또 다른 큰 별이 생기게 된 것이다.

사모님, 이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야 하나요?


(편집자 주)
김향안 여사는 1916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영문과를 중퇴한 후
파리 소르본느대학와 에콜 드 루브르에서 수학했다.
1964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남편인 수화 김환기 화백의 작업들을 모은 환기 미술관을 1991년 서울 부암동에 세웠으며
1980년 초부터 미주 동포 2세들을 위해 환기 에세이 컨테스트를 운영하여 많은 동포작가들을 발굴했다.
시인 이상의 부인으로도 알려져 있고, 수필가로서도 활동했으며 저서로는 파리, 카페와 참종이,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 파리와 뉴욕에 살며, 우리끼리의 얘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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