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을 넘어 감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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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을 넘어 감동으로
  • 김민식
  • 승인 2013.07.12 09: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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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캘거리 한인예술팀 스템피드 퍼레이드를 마치고

지난 5일 새벽 4시30분, 집 전화벨이 요란을 떨며 새벽을 깨웠습니다. 아내가 미국여행 중이라 혼자서 자정 넘게 가게 일을 끝내고 귀가했습니다. 새벽녘에 잠깐 눈을 부친다는 것이 그만 깊은 잠에 골아 떨어졌습니다. “제가 새벽 6시까지 한인회관 앞으로 모이라고 공지했는데 혹시 7시라고 잘못 전한 것 같아서.....” 김경숙 아트클럽 회장의 지친 목소리였습니다. ‘6시 집합‘ 광고를 수도 없이 들었는데, 지혜의 목소리로 대원들을 깨웠습니다. 자존심이 강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예술팀을 이끄는 김 회장의 탁원한 관리기법입니다.

새벽 미명인데도 회관 앞은 삼색더거리에 삼색띠, 고깔, 상모 한복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농악대원, 요란한 복장의 젊은 사이 춤 대원들로 북적대었습니다. 10살 어린이로부터 여든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대원 대부분이 밤을 지새우고 왔노라고 개선장군처럼 무용담을 털어 놓지만 얼굴에는 피곤과 긴장의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스쿨버스 두 대가 회관 앞을 출발했습니다. 북쪽에서 기다리던 ‘윤병옥합기도’ 산하 초등학교 학생 대원들과 합류했습니다.

오랜 전통의 세계 최대 거리 축제로 자리 매김한 ‘스탬피드 퍼레이드’에 15년여 만에 다시 출전한다는 긴장감 때문인지, 하차 즉시 농악대팀, 부채춤, 고천무용, 합기도, 싸이말춤팀 등이 곳곳에서 부문별 맹연습이 시작됐습니다. 부근에서 연습하던 다른 출전 팀 대원들이 하던 연습을 중단하고 구경하려 몰려들었습니다. 사진기자들, 경찰, 자원봉사자들도 잠시 본분을 잃은 채 넋을 놓고 구경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자체 연습도중 싸이 말춤을 따라 함께 춤추는 학생밴드 대원들 옆에서 지도 선생도 잠시 포기한 듯 같이 따라 추었습니다.

참가 119개 팀 중 18번 째로 출발했습니다. 정성엽 한인회장과 레드디어 엄기준, 황영기 선생 그리고 제가 나란히 ‘Korean Community Art Club’ 현수막을 선두에서 들고 행진했습니다. 출발 출연 대원은 모두 82명이었습니다. 70세 이상의 농악대원이 10명이 넘었습니다. 출발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총괄 박연숙 선생의 소고 신호로 상쇠영감의 꽹가리 소리가 울려 퍼지고 치배(징, 장구, 북, 꽹가리, 소고)들의 요란한 풍물소리에 발맞춰, 예쁜 한복의 춤사위꾼들, 상고잽이, 탈을 쓴 잡색들이 한데 어울려 신명나는 춤판이 벌어졌습니다.

이국적인 농악대의 행진에 곳곳에서 환호의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청ㆍ황ㆍ적 색깔의 삼색띠와 삼색더거리는 천ㆍ지ㆍ인(天ㆍ地ㆍ人)을 상징합니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에 한국 동포가 이곳에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삼원색이 합치면 하얀색이 되듯이 농악 대원 모두가 흰옷 위에 삼색을 두루고 백의민족 상징을 유감없이 드러냈습니다. 간간이 합기도 대원의 무술 연기, 가마 속에서 흘러나오는 싸이의 노래에 맞춰 젊은이 들이 말춤을 추는 와중에도 농악과 춤사위는 계속됐습니다.

이날의 인기는 소년 리틀싸이 에릭군을 포함한 싸이춤이었습니다. 5스트리트 지점을 지날 때에는 관중석에 앉아 있던 20여명이 함께 말춤을 추었습니다. 일괄되고 숙련된 춤 솜씨로 보아 미리 사전에 충분히 연습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캐네디언 초등학생들의 무술연기에 곳곳에서 관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행진시간 두 시간여 동안에 낙오자는 한명도 없었습니다. 도착지점에 도착하면 다른 팀들은 하던 연주도 중단하고 집결지 300여 미터를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한인들은 조금도 대오를 흩트리지 않고 농악대의 행진마치에 맞춰 행진을 계속했습니다. 해산하기가 무섭게 그대로 한복 입은 대원들이 아스팔트위에 풀썩 주저앉아 일어날 줄 모릅니다.

그동안 사력을 다한 강행군이었습니다. 덕분에 출전 119팀 중 종합성적 12등을 했습니다. 맨 먼저 대기 버스에 오른 80대의 차태연 할머니는 차에 오르는 70대 노인 대원들을 보고 "죽지 않고 살아 왔네!"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민 인생의 보람으로 참여한 행진이 보람을 넘어 감동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청야 김민식(캘거리 문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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