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언 생활문화 연구, ‘배제의 늪’에 빠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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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언 생활문화 연구, ‘배제의 늪’에 빠지지 말자”
  • 고영민 기자
  • 승인 2013.04.2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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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어, 민족정체성 측정하는 제1지표가 될 수 없다!”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코리언 생활문화 비교연구’ 심포지엄

그동안 학계에서 진행된 민족정체성과 코리언 생활문화 등의 관련 연구들은 해외 코리언까지 포괄하는 ‘거대한 민족공동체 형성’을 힘주어 이야기 했고, 거의 모두가 자신들의 주장이 ‘통합 패러다임’ 안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 의도와는 달리 ‘배제 패러다임’ 위치에 놓여있다는 분석이 제기돼 흥미를 끌고 있다.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단장 김성민 교수·철학과)은 지난 27일 오후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학교 인문학관 4층 교수회의실에서 ‘코리언의 생활문화 비교연구: 방법과 실제’라는 주제로 통일인문학 제15회 학술심포지엄을 열었다.

▲ 김귀옥 한성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제1부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은 세계 각지 코리언들이 나름대로 향유하고 있는 생활문화 차이를 존중하면서 민족공동체 통합성을 높여 나갈 것을 강조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코리언 생활문화 비교연구방법론: 배제 패러다임에서 통합 패러다임으로’란 주제를 발표한 김진환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는 “재외한인의 족내혼, 한국어 구사능력, 전통적 민족문화 등이 다음 세대로 갈수록 제대로 계승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을 가벼이 여긴 채 특정한 생활문화의 전형을 설정하고 이 기준으로 코리언의 범주를 정한다면, 즉 ‘특정한 문화 요소의 공유’라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민족공동체에서 배제한다면, 민족공동체의 축소 그리고 배제된 코리언이 향유하고 있는 생활문화만큼 코리언 생활문화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통합’을 지향하다 자기도 모르게 ‘배제’의 늪으로 빠지는 격이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코리언의 생활문화 비교연구방법론’과 관련해, △생활문화 통합을 위한 인과적 비교(유사증명, 맥락의 대조, 거시인과분석/일치법·차이법) △구술사와 참여관찰을 통한 사례연구 △현지 연구자와의 공동연구 등을 제안하고, 특히 현지 연구자와의 공동연구에 있어 연구의 조력자로만 대하는 태도를 극복하고 연구주제 선정, 연구방법 및 결과 제출까지 지속적인 소통 속에서 함께 진행할 때 타당성과 신뢰성이 있는 연구가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리언 생활문화를 관찰할 때 과거로부터 존재해왔다고 여겨지는 ‘본질적 문화요소’를 확인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오늘날 코리언이 세계 각지에서 나름대로 향유하고 있는 생활문화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민족공동체 통합성을 높여 나가기 위해 가능한 수준에서 ‘생활문화의 공통성’을 넓혀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고려인·재일조선인, 타지역 코리언보다 정체성 강해

이어 정진아 연구단 HK교수는 ‘민족어의 현실과 통합의 미래: 중심과 주변의 위계를 넘어’를 발표하고, “코리언의 언어습관은 그들이 처한 정치사회적 조건과 삶의 방식 속에서 변모해왔다”며 “민족정체성은 코리언의 언어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긴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었다”고 주장해 관심을 끌었다.

정 교수는 “소속 국가에서의 삶의 조건이 그들의 언어습관을 규정했다”며, “이제는 민족정체성을 기준으로 코리언의 언어습관을 평가하는 방식을 재고하고, 코리언의 삶 속에서 코리언의 언어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즉, 코리언의 언어 실태 속에서 이들의 삶을 이해하는 가운데 민족어 통합의 방향을 모색하자는 것이 정 교수의 주된 의견이다.

정 교수는 재중조선족, 재러고려인, 재일조선인, 북한이탈주민 등이 일상에서 쓰는 언어를 설문조사한 결과를 제시하며(한국어 비중=조선족:70.4%, 고려인:1.8%, 재일조선인:1.9%), “한국어(조선어)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늘어날수록, 한국어가 취업기회 및 제2외국어 등 실질적인 효용성을 획득할수록 한국어 사용비율이 높아질 것이고, 반대로 일상적·실질적 효용성이 계속 낮은 상태에 머문다면 세대가 높아질수록 한국어 사용비율은 낮아지고 언어동화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한반도와 거주국과의 교류, 민족교육기관의 증감은 앞으로 코리언의 민족어 사용비율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특히, 정 교수는 “인류학의 필드조사 연구결과에 따르면, 민족어 상실률이 높은 재러고려인과 재일조선인이 오히려 타 지역 코리언에 비해 민족정체성이 강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기존 연구에서는 민족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으로 ‘언어’를 지목해 왔으나, 설문조사에 따르면 코리언 대부분은 ‘문화’를 지목했다”고 말했다.

▲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은 지난 27일 오후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학교 인문학관 4층 교수회의실에서 ‘코리언의 생활문화 비교연구: 방법과 실제’라는 주제로 통일인문학 제15회 학술심포지엄을 열었다.

요컨대, 공유된 민족적 특성들로 인해 어느 한 개인이 어느 특정 민족 집단에 대해 느끼는 소속감을 ‘민족정체성’이라고 정의할 때, 코리언 2~5세들은 거주국의 국민으로서 살아가지만 성장해갈수록 문화와 풍속차이, 민족차별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거주국의 주류민족과 동일화될 수 없음을 깨닫고 ‘내 뿌리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된다는 것.

정 교수는 “언어가 민족정체성을 유지하는 데에 유력한 도구이자 무기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족어를 알아야 민족정체성도 있다는 논리를 펼 수는 없다”며, “1세대와는 달리, 코리언 2~5세대들은 민족적 자각이 생긴 후, 민족어를 배우고 그것을 통해 민족 구성원들과 소통하는 과정을 밟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 교수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이 갖고 있는 긍정적 의미를 높이 평가하며, 궁극적으로는 민족어 통합 교육프로그램 마련, 민족어 교육기관 지원방안 강구, 지속적인 조사 및 학술교류 등의 향후 과제를 제시했다.

"코리언 정체성 규정·강조, 또 다른 문화적 독재일 수 있어"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서 곽지섭 HK연구원은 ‘코리언의 교육·직업 문화: 적응과 성공의 길’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코리언이 각 거주국에서 적응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교육’을 선택했고, 그 지나친 집착은 ‘가족이기주의’ 형태로 나타나 인성교육이 배제된 ‘공리주의적 교육문화’를 탄생시켰다고 지적했다.

전영선 HK연구교수는 ‘코리언의 생활문화의 네크라스(Necklace)로서 의식주’란 주제를 통해 코리언 문화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한복, 김치, 온돌 등의 의식주 생활문화를 설명하며, “코리언의 문화는 개별화되고 구체화된 현상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한민족문화의 속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즉 “한식을 즐겨먹거나 한국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정체성을 고집할 수 없다”며, “코리언의 문화적 속성을 무엇이라 규정하고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다문화 시대를 살아가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며, 코리언 정체성을 규정하고 그것을 강조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문화적 독재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왕연 HK연구원은 ‘코리언의 가족: 상상과 현실 사이’를 발표하며, “재중조선족은 불완전한 가족을 이루는 경우가 많아 부모를 직접 돌볼 수 없고 부모가 오히려 자녀의 받침대 역할을 하고 있다”며, “가족의 돌봄 기능이 강화되면서 여성의 역할이 확장됐고, 시부모뿐만 아니라 친정부모도 세심하게 돌보는 여성이 많아져, 여성의 경제활동의 증가와 더불어 전통적 남아선호 사상도 약화됐다”고 분석했다.

이정재 HK연구원은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각국 코리언들의 돌, 결혼, 장례 문화에 대해 살펴보며 각 나라별로 ‘변용’의 요소들은 다양하나 공동체적 가치와 전반적으로 민족문화에 대한 복원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원은 “모국의 문화적 우월감이 아닌 ‘소통’을 통해 다름을 인정하고, 변용된 지점까지를 다 포괄하는 인식의 변화를 키워야 한다”는 향후과제도 제기했다.

[고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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