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신문
편집 : 2019.9.17 화 10:16
오피니언기고
윤봉길 의사가 밝힌 거사 목적은…"윤 의사는 조선의 독립을 정확히 예견했다"
윤주(매헌연구원 연구위원)  |  hannammulsan@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3.04.26  15:58:4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오는 29일은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 의거 제81주년이 되는 날이다.

윤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제의 ‘천장절(일왕 생일)기념 및 상해사변 전승축하 기념식’ 단상에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해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白川義則) 대장을 비롯한 침략군 전쟁범죄자 수괴를 섬멸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돌이켜 보면 윤봉길 의사 의거가 있었던 1932년은 국권이 침탈 된지 22년이 지나, 서방세계에서는 조선이 일제의 식민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오해하고 근대화 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바로 이때 윤 의사의 의거는 우리민족이 독립을 갈망하고 있음을 세계만방에 알린 역사적 쾌거이자, 당시 식민지배하에 있던 100여 개국의 민족 모두에게 희망과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세계적 사건이었다. 이날을 맞아 조국독립과 세계평화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불사른 윤 의사의 거사 이유를 되새겨 본다.

의거현장에서 체포된 윤봉길 의사는 일본 상해파견군 헌병대에 구금되어 가혹한 심문을 받으면서도 거사 목적을 당당하게 밝히며 조국독립을 정확히 예견했다.

1932년 7월 일본 내무성 보안과가 헌병대 심문조서를 바탕으로 재작성한 일제 문서 ‘상하이에서의 윤봉길 폭탄사건 전말’에 윤 의사가 진술한 거사 목적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현재 조선은 실력이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일본에 항전하여 독립함은 당장은 불가능 할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강국피폐(强國疲弊)의 시기가 도래하면 그때야말로 조선은 물론이고 피식민지 약소민족이 독립하고야 말 것이다. 현재의 강국도 나뭇잎과 같이 자연조락(自然凋落)의 시기가 꼭 온다는 것은 필연의 일로서, 우리들 독립운동자는 국가성쇠의 순환을 앞당기는 것으로써 그 역할로 삼는다. 물론 한 두 명의 상급군인을 살해하는 것만으로 독립이 용이하게 실행될 리는 없다. 따라서 금회의 거사와 같은 것도 독립에는 당장 직접 효과가 없음을 매우 잘 알고 있지만, 오직 기약하는 바는 이에 의하여 조선인의 각성을 촉구하고, 다시 세계로 하여금 조선의 존재를 명료히 알게 하는데 있다. 현재 세계지도에 조선은 일본과 동색으로 채색되어 각국인은 조선의 존재를 추호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 있다. 그러므로 차제에 조선이라고 하는 개념을 이러한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 넣는 것은 장래 우리들의 독립운동과 관련 결코 헛된 일이 아님을 굳게 믿는다.”

이 진술을 보면 윤봉길 의사는 국제정세를 바라보는 탁월한 통찰력과 조국독립의 확신을 갖고 거사를 결행했음을 알 수 있다.

윤 의사의 눈은 무서울 정도로 정확했다. 그의 진술이 이루어지고 7년 뒤인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으며, 13년 뒤인 1945년 윤 의사의 예견대로 일본은 패망하고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이했다. 우리나라의 해방일은 실질적으로 8월 15일 찾아왔지만 공식적으로는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9월 2일이다.

역사적 우연의 일치인지는 알 수 없으나, 윤 의사의 상해의거 때 한쪽 다리를 잃은 당시 주중일본전권공사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는 후일 외무대신이 되어 1945년 9월 2일 패전의 상징처럼 절름발이로 도쿄만 요코하마에 정박 중인 연합국 사령부 미주리호 함상에 올라 일왕과 일본국을 대표해 항복문서에 서명함으로써 윤 의사의 예견을 실행해 주었다.

또한 윤 의사 의거에 크게 감명 받은 중국 장개석 총통은 자국을 침공한 자신들의 적 일본군에 원수를 대신 갚아준 윤 의사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다가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주장해 보장받았다. 결국 윤봉길 의사 의거는 제2차 대전 종전 후 우리 민족이 즉시 독립하는 역사적 전기를 마련한 디딤돌이 되었던 것이다.

한민족의 기개와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널리 알리고 조국독립의 초석을 놓으면서 불멸의 길을 가신 윤 의사의 의거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며 항상 기억해야 한다.

[윤주(尹洲) 매헌연구원 연구위원]

< 저작권자 © 재외동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관련기사]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가장 많이 읽은 기사
1
멜버른서 ‘월드옥타 호주 남부 통합 무역...
2
민주평통 캄보디아지회 19기 위촉장 전수...
3
‘2019 청도 세계한인상공인지도자대회’...
4
민주평통 동남아서부협의회 19기 자문위원...
5
새만금개발청, 싱가포르서 투자 유치 활동
6
민주평통 홍콩지회, 19기 자문위원 위촉...
7
이집트 한국문화원, 이집트군 지휘참모대학...
8
정부, IOC의 도쿄올림픽 욱일기 허용에...
9
사우디 젯다 한글학교에 한글도서 듬뿍
10
독일서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 우승 기념 ...
오피니언
[역사산책] 백제의 건국과 마한의 멸망
백제의 시조는 소서노(召西努) 여대왕으로 하북위례성(지금의 서울)에 도읍하였다
[법률칼럼] 여권 관리의 중요성 (2) - 긴급여권
그러한 차원에서 외교부에서는, 인천공항 여권민원센터 등을 통해 발급되는 ‘긴급여권’
[우리말로 깨닫다] 바람의 위로, 대금의 위로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한인회ㆍ단체 소식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03173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3길 30, 711호(내수동, 대우빌딩)  (주)재외동포신문사 The overseas Korean Newspaper Co.,Ltd. | Tel 02-739-5910 | Fax 02-739-5914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서울아00129 | 등록일자: 2005.11.11 | 발행인: 이형모 | 편집인: 이명순  | 청소년보호책임자: 이명순 
Copyright 2011 재외동포신문. The Korean Dongponew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ongpo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