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경회루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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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경회루와 나
  • 여호영(기업인)
  • 승인 2013.01.2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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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그곳 연못에 얼음이 얼면 스케이트를 탔다. 연못 속의 조그마한 섬(當洲 : 당주)이 있는데 그 섬을 도는 아이들이 많아 빙판 위에 트랙처럼 길이 생긴다. 3공화국 시절에는 8·15 광복절 기념 주한외교관 초청 리셉션이 경회루 누각 아래서 있었다. 스탠딩 뷔페식으로 하다 보니 누각 위 보다는 아래가 알맞았기 때문이다.

사생대회를 경복궁에서 자주 했다. 경회루는 건물이 너무 커서 초등학생용 화폭에 담기가 무척 어렵다. 전부를 다 그리면 구도가 그저 그렇게 되어 당시 떠도는 말이 경회루를 그리면 사생대회에선 입선도 못한다는 말이 있었다. 경회루는 우리나라 누각 중에서 가장 으뜸이다. 진주 촉성루와 밀양 영남루, 남원 광한루 등에 비하면 맏형 격이다.

경회루의 첫 인상은 큰 연못, 큰 지붕 다음으로는 높은 돌 기둥이다. 50년간 경회루를 보아 왔다. 몇 년 전 연못의 물을 완전히 빼고 준설을 했다. 그때 청동으로 만든 불가사리 한 점이 나왔다. 다른 한 마리는 관악산 정상에 우물을 파고 그 속에 넣었다고 전해진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관악산의 큰 화기를 수중에서 불가사리가 막아 달라는 원(願)을 담고 있다.

▲ 경회루의 조영 컨셉을 제대로 파악했다면 경관조명을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붕의 추녀마루 네 곳의 끝부분 그 위에 잡상이 11개씩 있다. 우리나라 건물들 중에 잡상 수가 가장 많다. 건축물로서 등급이 가장 높다는 뜻이다. 잡상들은 손오공과 삼장법사 행렬을 이미지화 했다. 맨 앞에는 모자를 쓴 원숭이가 뒤 따라오는 동료들을 지휘한다. 꾀로서 위기를 극복하고 액막이를 하라는 의미다. 50년 전에는 기와의 색깔이 각기 달랐다. 지금은 개량 기와로 바뀌고 나서 모든 기와의 색깔이 꼭 같다.

돌기둥은 모두 48개다. 빙 두른 주위에는 단면이 정사각형 석주가 24개, 그 안쪽으로는 단면이 원형인 석주가 24개 있다. 위로 가면서 점점 단면을 축소해 나가는 민흘림이다. 정면에서 보면 8개의 석주가 7칸을 만들고 있다. 측면에서 보면 6개의 석주가 5칸을 만들고 있다. 모두 48개의 석주가 있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하늘은 원을, 땅은 네모를 의미한다.

▲ 중건 전에는 석주만 270여 년 동안 외롭게 서 있었다. 조영 컨셉을 알았다면 이곳에서 리셉션을 하지 않고 루상에서 했을 것이다.

경회루의 조영(造營) 메시지는 땅과 하늘의 소통과 교합을 염원하고 있다. 각각 24개 석주는 24방향과 24절기를 의미한다. 각 석주 위에는 금강송 기둥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래 석주 모양대로 장방형 석주 위에는 장방형 목주, 원형 석주 위에는 원형 목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목재들은 대원군 때 증축 당시의 목재들이 그대로이다. 한국동란 때에 병화를 면했다.

▲ 문위가 남쪽 광창이다. 달이 뜨면 이곳에 달빛이 비춘다. 중앙의 복도가 내진이다. 왼쪽은 외진, 오른쪽은 내내진이다.

동쪽과 서쪽에 계단이 있다. 2층 누각은 세 가지의 높이가 다른 삼단 마루로 되어 있다. 빙 둘러 있는 외진(베란다처럼)이 있고 이 보다 약간 높게 내진이 있다. 이 보다 더 높은 내내진이 있다. 내내진은 세 간(間)이다. 천지인 삼재를 의미한다. 내내진을 빙 두룬 8칸(기둥과 기둥 사이)은 8괘(卦)를 의미한다.

내진에는 12개의 간이 있다. 12개월을 의미한다. 또 내진과 외진 경계에는 16개의 칸이 있다. 각 칸에는 4개의 문이 있다. 합이 64개다. 주역의 64괘를 의미한다. 천장이 높기 때문에 문을 길게(높게) 낼 수 없다. 높이의 반 정도, 그 윗부분이 광창(光窓)으로 되어 있다.

이층 누각에서 북쪽을 보면 백악산(북악산)이다. 서쪽은 인왕산, 남쪽은 남산이 보인다. 기둥들 사이(칸)와 창방 사이의 가로 세로의 길이는 보기에 가장 아름다움을 지닌 황금비로 되어 있다. 기둥과 위 창방을 당초문과 낙양각을 했다. 누각에서 궁궐 밖을 볼 때 마다 그 곳을 무릉도원 같은 낙원으로 만들 비전을 가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 30개의 서까래들이 정교하게 교효하고 있다.

추녀마루 아래 지붕의 모서리에서 서까래 들이 만나게 된다. 지붕이 크다 보니 그 서까래 들이 길고 많다. 가로방향과 세로 방향들로 놓인 서까래 들이 만나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한 서까래가 다음의 서까래를 옆으로 맞이하기 위해서 사전에 약속된 대로 정확하게 다듬어 져야 한다. 30 개의 서까래 들이 질서정연하게 모여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는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닙니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누각은 왜 큰 연못(가로 128미터, 세로 113미터)의 한 쪽에 자리 잡고 있는가? 큰 연못 안에 직사각형으로 된 두 개의 섬(당주)이 있다. 궁궐의 연못 속의 섬들은 원형인데 왜 장방형이며 또 그 곳에, 그 정도의 크기로 있는가? 두 섬의 떨어진 거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곳에 심은 나무는 왜 꼭 소나무인가?

누각의 남쪽 연못 수면과 서쪽의 그것이 거울이 되어 달빛과 햇빛이 광창에 투사되도록 하였다. 보름달이 경회루 연못 남쪽에 떴을 때 달빛과 물에 뜬 달이 광창을 밝혀주고 광창에 달이 뜨게 된다. 동남쪽에서 야트막하게 뜬 달은 남쪽 광창의 오른쪽에 비친다. 인왕산 위에 걸린 해는 물결치는 경회루 연못의 물결을 광창에 투사한다. 영롱한 빛을 광창에 쏟아낸다. 내내진에 앉아서 달과 해의 비디오 쑈를 볼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경회루의 위치가 잡혔다. 방진의 위치와 소나무를 심은 이유는 광창의 비디오쇼를 위해 광창으로 향한 햇빛의 조리개 역할을 하고 있다.

춘분을 지나 하지로 갈 때는 인왕산 쪽 광창은 약간 왼쪽으로 치우쳐 솔라(solar) 비디오쇼가 펼쳐진다. 그러다가 추분이 되면 서쪽 광창의 정 중앙에 서쪽 연못의 출렁이는 물결과 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일월무사조(日月無私照)라. 해와 달은 사사로이 누구에게 더 비춰 주는 등 편애하지 않는다. 통지자에게 이런 메시지를 담아 전한다. 경복궁 중창 때 천리와 호흡하는 상징물의 구성과 천연 비디오 시스템을 설계한 아키텍트(건축가)의 천재성을 우러러 보게 된다.

▲ 경회루 서편의 두 당주 사이가 빛의 산란을 잡아 주는 광통(光筒)임을 국내 최초로 발견할 수 있었다.

우주와 소통함으로써 우주의 진리인 천리를 따르겠다고 다짐한다. 나라가 외우내환에 휩싸이지 않기를 바란다. 민심이 천심임을 알고 민을 속이거나 괴롭히지 않겠다고 한다. 유교적 통치 철학을 구현한 조영물이다.

경회루의 용도는 연회에 있다기보다는 땅(조선국)과 우주와의 소통과 교합을 통해 지속발전 가능성을 염원하는 의식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과거에 급제한 차세대 지도자들을 국왕이 격려해주기도 한다. 조국의 미래를 위해 엘리트 젊은이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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