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를 온 몸으로 그려온 화가, 권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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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온 몸으로 그려온 화가, 권용섭
  • 고영민 기자
  • 승인 2013.01.04 14:2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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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 독도에 열정 바쳐… “독도, 미적·문학적 소재가 풍부한 곳”

“화가는 돈에 굴복하지 않고, 가난을 자랑삼아야 한다!”

오랫동안 독도 그림에만 몰두하다 보면 가족을 비롯해 주어진 현실을 소홀히 할 소지도 있지 않겠냐는 질문에 독도화가 권용섭(사진) 작가가 호쾌하게 답했다. 지난 15년간 독도 그림을 그리고 세계 각처에서 독도홍보 전시회와 퍼포먼스를 펼쳐온 권용섭 작가는 단지 애국애족의 발로에서 독도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독도만이 갖고 있는 예술적 매력에 흠뻑 빠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독도 예찬과 예술가로서의 철학을 함께 들어봤다.

■ 지난달 28일까지 LA한인회관에서 독도지도 전시회를 진행한 데 이어, 31일 산페드로(San Pedro) ‘한미 우정의 종각’에서 열린 제야의 타종식에 참여하며 ‘미주한인의날’인 13일까지 전시회를 열고 있다. 수많은 작품 소재 중에서 유독 ‘독도’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는가?

: 30년 전 국토기행 중 독도에 가려다가 울릉도에서 6명의 동료 중 4명이 파도에 익사하는 비극적인 일이 있었다. 이후 다시는 독도를 찾지도 그리지도 않으려고 했지만 20년 뒤, 2000년 모리 일본총리의 ‘타케시마는 일본 땅’이란 망언에 자극을 받아 다시 독도 그림을 그려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주장하는 전시회를 가졌다. 당시 경찰청 제의로 청사 내에서 행사를 개최했다. 이후 전시회가 큰 이슈가 돼 각종 순회전 및 세계 독도 알리기 운동 등을 펼쳤다. 브라질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0여 개국에서 전시와 퍼포먼스를 통해 독도홍보를 진행해 왔다. 미술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한민족, 대한민국 국민의 입장에서의 애정도 있어 다른 소재의 그림을 미뤄두고 가족과 함께 ‘독도’만 현재까지 15년째 그리고 있다.

■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재로는 백두산이나 호랑이와 같은 대표적인 명물 외에도 분단이라는 시대적 아픔을 안고 있는 휴전선, 비무장지대(DMZ)도 있을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독도가 갖고 있는 역사적·예술적 상징성은 무엇인가?

: 국토기행이란 이름으로 백두산, 휴전선, 금강산, 평양 등 한반도 전역을 여행했으나 독도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주권활동’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앞으로 우리는 독도를 잘 보존하고 가꿔야만 한다. 예술적으로는 독도라는 작은 섬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모습의 기암들을 보면 참으로 재미있다. 많이 알려진 삽살개바위, 천지바위, 한반도 지도언덕, 독립문바위, 탕건바위, 삼형제굴 바위, 관음바위 외에도 미적, 문학적 소재가 정말 풍부한 곳이다.

▲ 지난해 2월 LA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독도, 그 민족혼’ 전시회에 참여한 독도화가 권용섭 가족.

■ 그동안 작품 활동과 수많은 전시회를 하면서 경험한 애로사항이 있었다면? 또한 가장 보람 있었던 기억은?

: 처음에는 혼자서 해야 하는 외로움이 있어 동료 미술인들을 종용했으나 관심들이 없었다. 결국 가족들을 끌어들여 독도그림을 그리게 하고 전시회도 가졌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전시회에 가보면 독도그림이 빠지지 않을 만큼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독도그림을 그리고 있다. 또한 독도 관련단체도 엄청 많이 생겼다. 그들 중 일부는 진정성을 갖고 임하기보다는 정부기관의 예산타령이나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깝기도 했고, 나까지 같은 부류로 취급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보람으로는 2007년 미 의회 ‘애니 팔레오마비네가’ 하원의원에게 한반도 지도가 있는 독도그림으로 독도를 설명한 후 그가 다시 부시 대통령에게 독도를 소개할 때, 평양을 방문했을 시 “독도를 남북한이 함께 지켜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남북이 하나가 된 느낌을 받았을 때의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 2004년 미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독도를 전 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도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독도 알리기 목적만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 한마디로 강대국 미국은 독도를 지키는 데에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또한 독도홍보를 핑계로 자꾸 해외로 들락거리기 보다는 아예 미국에 살며 아이들 교육문제도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우리 부부는 지구촌을 한국화로 화폭에 옮겨 보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수묵의 매력, 겸손하면서도 가장 화려한 미술”

■ 권 작가에게 한국의 수묵화가 갖고 있는 매력은?

: 수묵은 ‘겸손’의 색으로 한국의 민족성을 의미하는 여백의 미를 갖추고 있다. 또한 흑백이지만 깊이 있고 화려한 미술이라고 생각한다. 수묵화는 기행하는 나에게 있어 간단한 도구로써 농담(濃淡)으로만 가장 빨리 밀도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창작물이기도 하다. 실제로 해외현지에서 ‘수묵 속사’로 사생을 하거나 퍼포먼스를 하면 사람들로부터 집중을 받는다. 그 때는 독도 홍보물을 나눠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 권용섭 화가는 뱀띠해 계사년을 맞이해 수묵화를 그리며 "낡은 사고의 허물을 벗어던지고 낮은 곳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회개하며 살고 싶다"는 덕담을 전했다.[작품=권용섭作]

■ 가족이 함께한 국내외 독도행사만 100여회가 달해 이른바 ‘독도 화가 가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가족과 함께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 나만이 할 때는 그냥 동양화였다. 하지만 아내의 유화와 딸들의 다양한 오브제(Object) 기법 덕분에 전시회는 관객들에게 지겹지 않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2002년 월드컵 개최 기념으로 안면도 해변에서 리허설 없이 진행한 퍼포먼스(60×15미터 초대형)에서 가족들이 눈치껏 도와주고 마무리 해줘 정말 고마웠다. 미국에서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는 데 아이들이 도와주기도 한다. 아무리 큰 행사도 우리 가족(부인 여영난, 딸 권청실·진실)이 협력하면 짧은 시간에 해결해서 좋다.

■ 다양한 독도 알리기 활동을 하다보면 국내와 해외에서 느끼는 온도차가 있을 것 같다.

: 대다수 해외사람들은 독도가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 관심이 없다. 나 역시도 영토주장의 애국차원보다는 작가로서의 미술활동 비중이 더 크다. 다만 ‘독도는 한국영토’라는 홍보활동에 외교마찰도 없어 이보다 좋은 독도홍보도 없다는 것을 믿고 강도를 높일 뿐이다. 물론 맹목적인 반일감정에서 나오는 일부의 행동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분쟁지역으로 인정될까 우려스럽기도 하다.

▲ 지난해 10월 열린 LA한인축제에서 한국화 회원들과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권용섭 작가.

■ 순수 예술 작업에만 몰두하다 보면 경제적으로 불편한 점도 있을 듯하다. 예술 작업 외에 추가로 하는 일이 있다면?

: 모든 면에서 자기 일에 몰두, 충실하면 결과는 따르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예술은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유행을 창출 해 나가는 것이다. 물론 외로울 때도 있지만 독자적인 길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가족에게 이렇게 말한다. “화가는 돈에 굴복하지 않고 가난을 자랑삼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 철학으로 살면서도 한 번도 세상을 향해 아쉬운 손을 내민 적도 없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을 못한 적이 없는 진정한 ‘부자’다.

■ 앞으로 계획이나 포부는?

: 지구촌을 돌아보며 느꼈다. 내 조국이, 내 민족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그림으로 증명해 보이는 ‘독도미술관’을 몇 개국에서든 설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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