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을 또다시 울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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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을 또다시 울리지 말자.
  • 강익중
  • 승인 2004.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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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위안부는 애초부터 일본과의 관계 이상의 우리 자신의 문제다. 일본정부로부터 형식적인 배상이나 사과를 받아내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종군위안부의 내용을 비유하자면 흉기를 든 강도가 집에 들어와 아내와 딸, 누이 동생을 겁탈한 일과 같다. 그때 집안의 건장한 남자들은 헛간으로 몸을 피해 숨을 죽이고 있었고, 강도가 돌아간 뒤 남자들은 찢기고 상처 난 아내와 딸, 누이 동생들을 감싸기는커녕 화냥년이라고 밖으로 내 몬 격이다.

우리는 원나라에 노비로 끌려가서 갖은 수모와 고생을 다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들을(還鄕女) 이미 화냥년이라고 부르지 않았는가?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 찬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서 일본의 사죄를 외치는 할머니들의 가슴은 오히려 동족의 배신과 무관심에 피멍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경제가 초고속으로 성장하고 세계에 자랑하는 컴퓨터 강국이 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원통함에 수십년을 살아오신 할머니들 앞에 우리 모두가 꿇어 엎드려 우리의 비겁함을 용서받지 않는 한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은 영원히 떳떳하지 못 할 것이다.

종군위안부를 주제로 누드집을 만든다는 것은 역사에 대한 죄악이다. 갈 데까지 가버린 얄팍한 상혼과 빈곤한 철학이 우리의 할머니들을 다시 마당으로 끌어내어 능멸하고 있다.

오늘 일본인들은 그들의 아버지와 삼촌들이 짓밟았던 조선의 어린 여자들을 생각하면서 바지 지퍼를 내리고 성기를 주무를 것이고 우리는 할머니들을 팔아 챙긴 돈으로 아이들 공부도 시키고 발음하기도 힘든 명품을 몸에 두를 것이다.

59년 전 일본군들이 물러간 이국의 텅 빈 위안소에서 해방의 사실을 제일 먼저 전해들은 어린 종군위안부가 언니들 나오세요. 해방이래요.?라고 외쳤을 때 방안의 언니들은 어린 위안부 동생의 만세를 따라 할 수 없었다. 언니들은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햇볕도 들지 않는 골방에 누워 수천 수만명을 상대한 후 어디에도 힘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용서를 빌기도 전에 할머니들을 또다시 울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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