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 역경 속에서 꽃피운 인간승리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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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한민국, 역경 속에서 꽃피운 인간승리의 나라
  • 이계송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 승인 2012.07.1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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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말 서울에서 정부 주최로 열린 한인회장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해외생활 40여년 한국을 자주 방문한 편이어서 별로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여느 때와 다른 감회에 젖어 눈물까지 쏟았다.

주최 측의 배려로 “향수”를 주제로 열린 KBS 가요무대 녹화현장에 한인회장단들이 초청되었다. 김동건 아나운서가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시작을 알렸다. “우연의 일치인지 마침 세계 한인회장단 여러분이 참석하셨습니다. 여러분 큰 박수로 환영해주십시오.” 이어서 젊고 아름다운 여가수 두 사람이 1949년에 작곡 “귀국선”을 불렀다.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 몇 번을 울었던가 타국살이에, 몇 번을 불렀던가 고향노래를...” 방청객들은 노래에 맞춰 손벽을 쳤고, 1930년대, 40년대...70년대에 각각 유행했던 “나그네 설움” “타향살이” “머나먼 고향” 등 20여곡의 옛 유행가들을 젊고 아름다운 남,녀가수들이 번갈아야 가면서 불렀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내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왜 눈물이 나왔을까? 그것은 내 자신의 설움이 아니었다. 뜨거운 환희의 눈물이었다. 남의 나라 원조 없이는 못살았던 내 조국이 역경 속에서 인간승리의 꽃을 마침내 피워내고, 이제는 세계 경제대국들 못지않은 풍요를 즐기면서 옛 노래로 어려웠던 시절의 한을 풀어내고 있었으니, 이 어찌 감격스럽지 않았겠는가. 일제 치하에서 온갖 굴욕을 겪고, 잠시 해방의 기쁨을 채 맛보기도 전에 6.25동란 동족상잔의 비극을 맞았다. 수백만명이 부모형제자매들을 잃었고, 두 동강이 된 나라에서 헐벗고 굶주리며 개돼지처럼 비참하게 살아야 했었다. 그런 우리 동포들이 불과 반세기도 안 되어 이룩한 경이로운 성공의 역사를 보라.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생각해 보니 나 자신의 역사도 조국의 역사와 닮았다. 밥을 굶은 날이 더 많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천신만고 끝에 학업을 마치고, 부모형제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월50달러를 받고 월남전에 자원 참전했었다. 그리고 달러를 벌기 위해 열사의 나라 중동에서 고생 고생하다 고향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미국으로 이주, 자나 깨나 부모형제를 그리며 30여년의 이민생활을 독하게 해왔다. 어찌 나뿐이겠는가? 들판의 소나 말이 풀이 있는 곳을 찾아 이동하듯 가난한 조국을 떠나 이민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해외동포들의 역사도 하나 같이 똑 같다.

이제 조국의 리더들은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인구 5천만에 국민소득 2만불이 넘은 나라들만 가입하는 지구촌 20/50클럽에 한국이 7번째 가입한 나라, 그것도 원조를 받던 나라로서는 첫 케이스라고 그들은 하나 같이 자랑했다. 3박4일간 열린 한인회장대회에 함께한 그들에게서 앞으로 더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았다. 그들은 해외동포 7백만을 큰 자산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7백만 해외동포들과 고국의 동포들이 하나가 되어 세계 어떤 나라보다 더 부강한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패배의 역사를 이제 승리의 역사로 바꾸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 민족 모두가 프라이드를 가져도 좋다. 지난 실수를 질타하기 보다는 잘했던 것들에 대해서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고, 더 잘해보자고 서로 손을 맞잡아야 한다.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남다른 장점들은 더 크게 키워나가야 한다. 더 잘 사는 나라를 꿈꾸면서도 이웃을 돌아보는 나라로서 인류의 복지,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도 우리의 몫 이상을 해야 한다. 받기만 했던 우리, 이제는 도움을 주는 우리로, 특히 해외동포들은 각자 거주하는 나라에서 그렇게 살아야 할 때다. 위대한 친정 조국이 있으니 그런 삶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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