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들이 조국 사랑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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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들이 조국 사랑하도록 하라
  • 김귀옥
  • 승인 2012.07.13 09: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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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옥 (본지 편집위원/한성대 교수)

올해는 중국과 수교한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1992년 8월 24일 수교할 당시에는 “오랑캐와 수교가 웬말이냐”는 식의 현수막이 거리에 내걸리기도 했다. 머지않아 2002년이 되자 한국의 대중국 수출이 급증하여 이제 중국은 한국의 제1위의 무역 상대국이 되었다. 한국인의 삶 속에 중국의 농산물과 공산품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어 있다.

그런 가운데, 중국동포 역시 우리 삶의 한 가운데 들어와 있다. 2011년 현재 등록외국인 가운데 중국동포가 30%가 넘는다. 그들은 식당 등의 서비스업으로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힘겹게 일하고 있다. 동포법이 개정될 때마다 수많은 노동 이주 동포들이 고생을 하고 있다. 2011년 7월부터 국내로 입국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지문과 얼굴인식기를 이용해 출입국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수 년 동안 국내에서 준법생활을 해온 상당수의 중국동포들이 종래 위명(僞名)여권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져 수모를 겪는 일마저 발생하고 있다.

식민 시대와 분단 과정에서 민족의 이산을 겪었던 중국동포들과 한국의 상봉 이후에도 아픈 경험은 계속되고 있다. 그 결과 중 하나가 중국동포 김재국 교수의 『한국은 없다』(1996)이다. 중국동포들이 1988년 새로운 조국으로서의 한국의 발견에 열광했던 기억이 한국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으로 상쇄되었다. 또 다른 상처 속에서 서로 공존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에 중국 조선족 사회를 새롭게 소개한 이가 있었다. 1999년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된 『혈연의 강들: 천지와 강과 그리고 나』(국내 발간, 2007)을 필두로 하여 국내에 소개된 단행권만 해도 10여권이 넘는 작가였다. 『발해 가는 길』(2004), 『고구려 가는 길』(2004), 『만주 아리랑』(2003), 『일송정 푸른 솔에 선구자는 없었다』(2007), 『서울바람』(2007) 등이 대표작이다. 그의 글에는 해학과 재치가 넘치고, 조선족의 풍부한 역사가 담겨 있었다. 경이로운 점은 수많은 글들이 대부분 발로 뛰는 답사의 결과물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중국 연변 사회의 대표적인 문필가이자, 연변대학 교수인 고(故) 류연산 선생이다.

2000년 9월에 압록강변에서 그와의 첫 만남을 가졌다. 한국의 모 신문사의 창간 기념으로 기획된 압록강에서부터 두만강에 이르는 3천리 답사의 가이드로서 류연산 선생이 초청되었다. 십 여일이 넘는 류 선생의 가이드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압록강변부터 두만강변 구석구석, 한국 고대사로부터 동북3성 현대사에 이르는 정사와 야사를 넘나드는 설명은 그저 교과서를 외어서는 할 수 없는 수준 높은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이 사람의 정체는 무엇인가?’ 계속 의문이 생겼다.

그 후 10년의 만남 과정에서 그가 동북3성과 관련해 이야기한 대부분 사실들은 발로 뛰며 발굴해낸 진정성을 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사람이었다. 발해사, 고구려사, 만주사 등등은 말할 것도 없고, 1930년대 만주 지역을 휩쓴 ‘민생단 사건’을 발로써 조사한 연구자였다. 실로 신채호 선생의 후예라고나 할까? 그 민생단 사건은 일제 강점기 조선 이주민과 중국인들을 분열시키고자 벌인 일제의 공작물이었다. 일종의 조선인 마녀 사냥이었다. 그 결과는 조선 이주민과 중국인들은 상호 의심 속에서 조선인 수백 명 이상이 대량학살을 당해야 했다. 1949년 사회주의 중국 수립 이후 그 사건은 묻혔다. 그러나 동북3성 중국동포들의 가슴 속에서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류연산은 그 기억을 발굴하여 음성과 녹취록을 남겼다. 그런 과정에 유족들의 애통해하는 심정을 위로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중국동포의 애환에 무관심했다. 중국 정부와의 외교적 관계가 민감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한국 정부가 해외동포의 삶과 역사에 무관심했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하버드대학을 나온 수재 동포나 하인스 워드와 같이 성공한 한국계 (혼혈) 스타에 대해서는 열광했다. 그러나 조국에 의해 잊혀진 수많은 해외동포들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노력이나 이국 땅의 소수민족으로서의 애환에는 고개를 돌려왔다. 그러한 조국의 무관심과 냉소에 해외동포들도 가급적이면 ‘조국’을 잊거나 가슴에 묻어두려고 했다.

지구촌 시대, 해외 동포와 한반도의 구성원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과연 2012년에야 부여된 재외국민 참정권만으로 재외국민에게 권리를 다 부여했다고 하기에는 한국 정부의 해외 동포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동포애가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정말 중국동포를 포함한 해외동포들이 조국을 사랑하도록 하려면, ‘이용’이 아니라, 민족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관용과 애정을 베풀어야 한다. 어찌 조국이 사랑을 주는데, 해외동포가 조국에 사랑으로 답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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