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빵업계의 대부로 러시아 두마의원으로
상태바
제빵업계의 대부로 러시아 두마의원으로
  • 재러한인
  • 승인 2004.02.1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려인출신 장류보미르 의원
고려인 동포 중에서 유일하게 장 류보미르 의원(위 사진)이 작년 12월 9일 러시아 국회 (두마)에서 의원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장 류보미르 의원은 1959년 소련 15개국 공화국중의 하나인 우즈베끼스탄에서 출생하여 카잔 엔지니어 건설대학을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 후 그는 기술자로 일을 하면서 철강 공장 책임자 임무를 수행하였고, 군수 부문의 기계 기술자로 일을 하다가 1991년 야채 도매업 회사 «소락산»을 창업하였다. 1993년부터 그는 니즈니노보고로드 곡물 구입 회사인 «린덱» 창립자 겸 사장으로 일을 하다가, 빵 공장 제조업에 나서게 되었다.

그는 러시아 경제 생산 발전 부문에 기여한 공로로 러시아 정부 훈장 및 성 다니엘 대공 훈장(이 훈장은 러시아 정교회에서 수여한 것으로 그의 선행 활동에 대한 감사장)을 수여 받았다.

그는 금년에 러시아 국회 두마에서 농업 발전 문제 위원회에서 일을 함과 동시에, 러시아와 니즈니노보고로드 지역의 공업 발전을 위하여 일을 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여러 차례 국회에서 장차 니즈니노보고로드 도시의 인프라 구축을 실행할 것이며, 특별히 도시에 지하철을 연결하는 문제, 주민들을 위한 아파트 건축 등을 언급하였다.

현재 그는 1991년부터 니즈니노보고로드 곡물 회사인 «린덱»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이 회사 계열에 «볼로다르스끼 콤비나트 제빵 회사», « 제르쥔스끼 밀가루 회사», « 볼스끼이 빵», 그리고 «소락산», «바이칼»회사 등이 포함된다. 그는 작년 12월 9일에 있었던 선거에서 총 유권자의 27,73%의 표를 얻었으며, 그의 경쟁자는 총 유권자의 21,29%을 얻었다.

러시아에서는 장 류보미르 의원을 제빵업계의 대부, 제왕으로 부르고 있다. 그는 «니즈니노보고로드 밀가루 공장» 주식을 획득하여 현재 이 지역에서 빵 공장의 지분을 90%정도 가지고 있다. 니즈니노보고로드 제빵 회사인 «린덱»은 곡물을 가공하여 빵을 만드는 공장으로 도매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 지역 농업 부 통계에 의하면, 니즈니노보고로드 지역에서만 2002년 한해 26만 2천 톤 가량의 밀가루를 생산하였다고 언급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 빵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정치이다. 빵은 지역 경제를 살리는 전략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하였다.

장 류보미르 의원의 아내는 장 넬리 여사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관습에 따르면 러시아 여성과 결혼하는 것을 꺼림에도 불구하고, 그는 러시아 여성과 결혼을 하였다. 다음은 러시아의 한 신문사에서 장 넬리 여사와의 인터뷰한 내용이다. (러시아 잡지 프로필 2002.6.3일 21호)

장 넬리: 우리는 대학 2학년 때 사귀다가 4학년 때 결혼하였고, 5학년 때 아이를 낳았습니다. 학교 다닐 때에 저는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카잔대학 법학부에 다녔고, 류보미르는 엔지니어 건설대학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류보미르와 사귀면서 나의 올바른 생활은 순식간에 날라갔습니다. 그가 한번은 기숙사 무도회에 왔었는데, 그의 모습은 히피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긴 머리를 하고 있었고, 벨이 달린 재킷, 단추가 없는 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장 류보미르: 나는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 나의 자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장 넬리: 당시 1970년대는 류보미르는 외형적으로 한국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보고 놀라기도 하고, 어떤 때는 눈치를 주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이국적인 젊은이들이랑 사랑을 하는 것이 유행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정 반대였습니다. 우리가 전동차를 타고 어딘가 가고 있으면, 사람들은 손가락을 가리키며 수군거리면서, «아르헨티나의 탱고»라고 놀려 되었습니다. 아마 그들은 아르헨티나가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면서, 단순히 러시아 사람이 아닌 것을 가지고 놀렸습니다. 우리가 결혼을 신고하러 작스(한국의 구청과 같이 혼인 신고하는 공공장소)에 갔을 때, 마치 내가 외계인과 결혼하는 것처럼 눈총을 주었습니다.

장 넬리: 류보미르의 성격은 남성적이며, 그는 처음부터 가족을 부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밤낮으로 빵 공장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집에 올 때는 따끈따끈한 빵을 가져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필 하모니에서 가수로 일을 하기도 하였고, 심지어 오고 가는 길에서도 노래를 하곤 하였습니다.

장 류보미르: 만약 내가 무엇인가 이룬 사람이라면, 바로 그것은 나의 아내 덕분입니다. 넬리는 내가 정확하게 러시아어를 말하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넬리는 어떻게 옷을 입고, 어떻게 행동해야지 옳은 행동이며, 또 나의 장점을 잘 살려 주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TV를 통해서 러시아를 사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본래 우리 가족은 스탈린 시절에 강제 이주를 당함으로 카자흐스탄의 한 시골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당시 흑백 TV를 통하여 저는 다른 세상을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러시아로 가서 러시아 아가씨와 결혼하며,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결심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매년마다 100만 루블 이상을 구제 및 공공사회 발전에 쓰고 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가난했던 시절을 겪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깊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정말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모델이 되기를 소망한다. (재러 한인 부 편집장 김 키파 kimkifa@hanmail.net)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