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호 회장 "모험 없으면 성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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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호 회장 "모험 없으면 성공도 없다"
  • 고영민 기자
  • 승인 2012.04.1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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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넘쳐도 재물은 넘치지 마라"

인터불고(Inter-burgo) 권영호 회장에게 하루는 26시간이다. 그는 지금까지 4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이 없다. 세계 각처에는 성공한 많은 한상(韓商)들이 있지만, 사회민주주의 체제의 유럽에서 외국인이 돈을 많이 벌어 거상이 된다는 것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권 회장이 유럽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하루 4시간만 잘 정도의 치열함과 단 1% 가능성만 있어도 시도하는 도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유럽은 물론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CEO인 이유는 단지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그 누구보다 철저하게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방송통신대학교에서 열린 제35차 재외동포포럼에서는 '스페인 선박왕'이라 불리며 유럽, 아프리카에서 성공신화를 쓴 권영호 회장의 기막힌 인생역정을 들어봤다.

원양어선 청년 선원, 스페인 선박왕 되다!

경북 울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권영호 회장의 어릴적 꿈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청년 권영호에게 '바다'는 '희망'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바다와의 인연은 20대 중반 원양어선 기관사로 일하면서부터고, 1972년 대림수산의 스페인 라스팔마스 주재원 생활은 권 회장에게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특히, 본격적으로 사업을 뛰어든 1979년은 그의 삶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폐선 처지에 놓인 일본기업 소유의 선박을 당시 전 재산을 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2만 5,000달러에 구입했다. 이후 소속 회사의 도움을 받아 수리를 하고 난 후 첫 출항한 경험은 지금까지도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으로 남아있다.

폐선 한 척으로 그의 수산업은 본격화됐고, 사하라 사막 앞에서 조업하며 단번에 30만달러 수익을 냈다. 이후 어장 상황이 어려워지자 앙골라 지역으로 이동했는데, 이른바 대박을 터트렸다. 폐선 1척으로 시작한 그의 회사는 어느새 40척을 보유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업계에서는 태평양에는 '동원그룹'의 김재철 회장이 있었다면, 대서양을 주름잡는 자는 바로 '인터불고' 권영호 회장이라고 회자될 정도로 그의 성공담은 전설이 됐다. 그는 "모험심 없으면 성공도 없다"고 말했다. 가능성 제로가 아니라면 과감히 도전하며, 치열하게 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젊은이들에게 조언했다.

"코트라보다 막강한 것, 바로 해외동포"

앙골라 정부로부터 한국거주 앙골라공화국 명예영사로 임명될 정도로 국제적으로 그에 대한 신뢰는 매우 두텁다. 그는 영토확장에 대한 의미를 폭넓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좁은 영토에 더이상 얽매이지 말아야 하고, 해외에 나와 있는 수많은 재외동포들을 네트워킹 해야 한다는 것. 권 회장은 "코트라보다 막강한 것이 바로 해외동포들"이라고 강조했다. 국가적 자산이라 할 수 있는 재외동포들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동기부여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는 정부가 '글로벌 시대'라고 외쳐대지만 실제로도 그런지 의구심을 표했다. 또한 '원스톱 행정'이라고 자랑하지만 재외동포들이 국내서 사업하려고 하면 절차상 쉽지 않다고 꼬집었다.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제대로 이기려면 빗장을 걸지 말고 활짝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 회장은 "특히, 우리나라는 기업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만을 갖고 있다"며 "경영을 제대로 하며, 사회적 책임도 구현하는 기업들이 더 많다"고 강조했다. 또한 "강대국이었던 스페인이 지금은 제2의 그리스가 될 처지가 됐다"며 "우리나라도 스페인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선행은 숨기지 말고, 널리 알리는 게 미덕"

권 회장은 기부에 대해서도 남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는 "선행은 숨기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기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기부여를 위해서라도 기부문화를 열린 구조로 조성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고 안익태 선생이 살던 스페인 집을 사들여 기념관으로 조성한 뒤 우리 정부에 기증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권 회장은 1986년에 설립한 동영장학재단을 통해 현재까지 1만 5,000여명의 젊은이들에게 140여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국내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중국 한족, 조선족 5천여명이 장학금을 받았다. 또한 길림대학에 매년 10만달러, 50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길림성 매하구시에 20만 달러를 투자해 비영리병원 동영병원을, 길림대학 내에 동영학원을 설립했다.

특히 20여년 동안 중국인을 선원으로 무려 1만여명 고용했고, 그 중 100여명에 달하는 중국동포 청년농민들을 국제 원양어선의 선장, 기관장으로 양성하는 신화를 만들었다.

그는 글로벌 시대에 국경의 벽을 허물고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은 중국인, 조선족 구별할 것 없이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러한 공로로 중국 정부로부터 지난 2005년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상인 '우의상'을 수상했다.

평소 검소한 생활로 유명한 권 회장은 가족들에게 "사랑은 넘쳐도 재물은 넘치지 마라"고 당부했다. 또한 그의 평소 좌우명은 조선시대 거상 가포 임상옥이 말한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아야 하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아야 한다"(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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