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은 무쇠로 만든 큰 바퀴와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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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은 무쇠로 만든 큰 바퀴와 같아"
  • 고영민 기자
  • 승인 2012.03.07 15:1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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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옥타 차세대들에게 노하우 전수하고파"

[인터뷰] 박정길 월드옥타(World-OKTA) 쿠웨이트 지부장 (전 아·중동한인회총연합회 회장)

지난 1976년, 중동 아라비아반도에 위치한 쿠웨이트에 첫 발을 내디딘 후 36년 동안 중동 전역을 발로 뛰어다니며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성공신화를 이룬 박정길(66) 회장은 아프리카·중동 지역 전문가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박 회장은 7년 연속(총9년) 한인회장직을 맡으며 현지 동포들의 권익을 대변해 왔다. 그는 지난 3월 10일자로 아·중동연합회 임도재 신임 회장(가나한인회장)에게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그는 사업은 무쇠로 만든 큰 바퀴와 같다고 말한다. 처음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지 한번 움직이면 저절로 돌아간다는 것. 앞으로 차세대 기업인들을 위해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중동한인회총연합회 산파역할, 가장 큰 보람"
"한인사회 갈등 방지책, 한인회 중심체제로 운영해야" 

▲ 박정길 월드옥타 쿠웨이트 지부장
- 먼저, 쿠웨이트와 인연을 갖게 된 계기를 듣고 싶다.

: 정부가 설립했던 수출진흥주식회사에서 근무하며, 1976년도 쿠웨이트에 처음 가게 됐다. 그 때 한국은 수출 주도 정책이 본격화 되는 시기였다. 우리나라 GNP가 760불 정도였고, 여러모로 해외로 나가기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수출진흥주식회사는 코트라(KOTRA)와는 달리 직접 무역을 하며 이윤을 창출하는 회사였다. 나는 쿠웨이트 지역을 개척하기 위해 지사장으로 파견됐다. 뭣 모르고 발을 디딘 쿠웨이트에서 많은 것을 접할 수 있었다. 본사로 돌아와서 2년 정도 근무한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1984년에 다시 쿠웨이트에 갔고, 스크랩 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오게 됐다.

- 스크랩, 특히 고철 중심으로 수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해오면서도 본인 명의의 회사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쿠웨이트는 영주권·시민권 제도가 없다. 또한 현지인이 아니면 법인 허가도 불가능하다. 나도 현지 회사를 이용하는, 즉 파트너십을 통해 매니저라는 직책을 갖고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현지에 많이 진출해 있는 여타 건설회사들도 마찬가지다.

- 동포재단이 주최하는 한인회장대회 운영위원회 참여를 끝으로 3월 10일, 아중동한인회총연합회 회장직 임기를 끝마쳤다. 오랫동안 한인회 일을 도맡아 왔기 때문에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 재작년까지 한인회장을 총 9년 했고, 그 중 7년 연속 한인회장직을 맡았다. 가장 보람있고 긍지를 느꼈던 점은 역시 많은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현지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제고시켰다는 점이다. 예컨대 내가 한인회장으로 있는 동안 경찰서 한 번 가본 적 없다. 이는 그만큼 많은 교민들이 주어진 일에 성실하게 임했고, 현지인들과 조화로운 공생관계를 유지 해왔다는 것을 반증한다. 현재는 두바이나 남아공으로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추세지만 쿠웨이트도 800여명의 교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전 세계 130여 국가에서 온 외국인들 중에 한국교민이 가장 모범적이라는 평판이 자자하다. 서로 활발히 소통하면서 한인회와의 협조를 아끼지 않았던 교민 분들께 오히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아·중동연합회가 지금처럼 공식 인정받기 전에는 우여곡절이 많이 있었다. 연합회 간사로서 일할 당시 42개 한인회 중에 가나, 남아공 등 4개국만이 연합회에 참여했다. 당시에는 재단 운영위원회에 끼지도 못했고, 간사 자격으로 참여했을 뿐이다. 하지만 2008년 1월 탄자니아에서 정식으로 창립총회를 갖고 재단후원도 받으면서 11개 한인회가 참여했다. 작년에는 19개 한인회에서 24명 임원이 참석할 정도로 성장했다. 올해 2월 카이로 총회에서 나이지리아에서는 전임 회장은 물론 전전회장까지 참석한 것을 보며 연합회를 이끌어가는 재미를 느꼈다. 3년 동안 회장직을 맡으면서 아중동연합회가 나름대로 짜임새 있는 조직을 갖추고 활동할 수 있도록 산파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참고로 한인회 내에서 갈등과 반목이 종종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모든 것이 한인회 중심 체제로 만들어야 한다. 쿠웨이트도 한글학교만 남고 대부분 한인회 산하단체로 개편했다. 동문회, 향우회 등 파벌을 조장할 수 있는 요소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인회가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 반면에 오랫동안 한인회 일을 해오면서 국내 정부나 기관에 대해 아쉬웠던 점도 분명 있었을 것 같다.

: 일반적으로 750만 재외동포라 일컫는다. 하지만 이는 혈연이라는 기준으로 한 것이다. 중동지역 한국인들은 외국에서 살 뿐이지 법적으로는 국내인과 똑같은 자격의 해외 체류인일 뿐이다. 재외국민, 재외동포, 교민, 교포 등 용어들이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동포들도 세부적 분류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작년 재스민 혁명 바람이 아랍 일대에 휘몰아쳐 현지 한인들이 위급상황에 놓여 있을 때 정부의 대응은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다. 재난발생 시에 국내인에게 대우하는 것만큼 해외 한국인들에게도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이 역시 제도적인 뒷받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재외동포들을 위해 법적 장치를 마련해주길 바란다.

"큰 성공하고 싶나? 중동·아프리카로 오라"

- 다시 사업 이야기로 돌아가면, 30년 전에 하던 스크랩 사업을 아직도 하고 있다. 지금도 유망한 사업인가?

: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체적인 구조는 똑같다. 심지어 다루는 물건도 똑같다. 돈이 되니 지금도 하고 있지 않겠는가? 사업, 그리고 돈이라는 것이 무쇠로 만든 큰 바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제대로 굴리기가 힘들지 한번 움직이면 저절로 돌아간다. 작년 같은 경우 국내에 4개월 동안 머물고 있었어도 현지 사업은 알아서 돌아가더라. 예전과 달리 지금은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는가. 쿠웨이트 스크랩 사업은 수집상, 운송 등 각 파트별로 철저히 분업화되고 아웃소싱 되어 운영된다. 나는 쿠웨이트 스크랩 산업 1세대일 정도로 오랫동안 하고 있지만 이 분야는 아직도 외국인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주품목은 고철, 주거래처는 인도이다. 스크랩 사업은 역시 분류와 선택이 중요하다. 똑같은 품목이라도 선호하는 국가와 업체가 각양각색이다.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몸으로 터득했다. 처음 3년은 적응을 제대로 못해 힘들었는데, 이후 10년은 그 전 3년보다 짧다고 느낄 정도였다. 사업에 한번 탄력을 받으면 가속도가 붙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니겠는가.

- '쿠웨이트'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어떤 나라인가?

: 쿠웨이트를 경제적으로 설명한다면 '세금이 없는 나라', 'GNP 6~7만불의 나라'라고 하면 쉽게 이해되지 않겠는가. 10년 전 땅값이 지금도 그대로이고, 하루 벌면 일주일 그냥 보낼 수 있을 정도, 막노동해도 먹고 살 수 있는, 물가가 매우 안정된 국가다. 역시 석유 자원의 혜택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천혜의 경제구조 속에서 한국인에 대한 선호도 또한 높다. 한국인은 약속을 잘 지키고, 맡은 일도 제대로 하기 때문이다. 이는 건설, 토목업종 등에서 파견된 수많은 선배들이 이룬 업적이다.

하지만 요새는 중동으로는 오는 한국 근로자가 줄어드는 것 같다. 국내에서 인턴 근로자를 받고 싶어도 미국, 일본, 유럽 지역을 선호하지 중동은 오지 않는다. 아쉬운 일이다. 아프리카만 해도 1,000불만 있으면 미국 사람 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 젊은이들이 좀 더 폭넓은 시각으로 임했으면 좋겠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지만 중동 역시 아직 빈틈이 크다. 그럭저럭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으면 선진국으로 가라. 하지만 제대로 큰 성공을 하고 싶다면 중동과 아프리카로 오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 월드옥타 쿠웨이트 지부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되지 않겠는가. 미래 성공을 꿈꾸는 옥타 차세대들에게 나만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다. 중동 지역에 오래 살다보니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을 정도로 돈이 되는 사업이 눈에 보일 때가 있다. 폐휴대폰만 해도 돈이 된다. 그 안에 귀금속이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튜브, 심지어 폐타이어도 돈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나를 따라할 사람이 없다. 아마도 어렵고 3D업종처럼 보여서 그러는 것 같다. 차세대들에게 부족하지만 몸으로 터득한 나만의 정보와 노하우를 알려주고 싶다.

<인터뷰 에필로그>

박정길 회장은 "잘 모르시나 본데, 쿠웨이트 날씨는 의외로 괜찮다. 서울이 더 덥더라. 쿠웨이트는 에너지 값도 무지 싸서 에어컨을 선풍기 쓰듯 가동한다. 석유가 많이 난다는 것은 지진이 없다는 의미다. 지진이 일어나면 석유가 모일 수 없다. 비가 오지 않으니 당연 홍수도 없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입헌군주제이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모래바람이 세차게 불 뿐이다"라고 말한다. 얼핏 들으면 썰렁한 유머 같지만 쿠웨이트와 중동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말이다.

“중국이나 일본인들은 엄청난 물량 공세로 현지인의 환심을 사지만 한국인들은 큰 돈 들이지 않고 의료 자원봉사처럼 진정성을 느낄 수 없는 세심한 배려와 서비스로 인심을 산다”고 말한다. 또한 박 회장은 “그 나라 국민소득을 보면 뭘 팔지 보인다”며 “중동은 아직도 한국 젊은이들이 할 일이 많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차세대 기업인을 위한 그의 왕성한 활동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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