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결심 “거꾸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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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결심 “거꾸로 살아가기”
  • 재외동포신문
  • 승인 2012.01.12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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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계송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이계송 한인회장
오랫동안 형제처럼 지내왔던 50대 후배가 최근 치명적인 암이 발견되어 힘들게 지내고 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던 순간 그가 일하는 곳으로 단숨에 달려갔었다. 부인과 늘 함께 가게를 지키던 그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그간의 얘기를 해주었다. 의사가 남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는 것, 온 가족이 울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왔다고 남편에게 전화를 하자, 그가 단숨에 달려왔다. 우리는 붙잡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리고 “사람 쉽게 죽지 않는다. 희망을 갖고 노력하자. 기적도 있다.” 그게 내가 해준 말의 전부였다.

그날 이후 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찌해야 하나?”를 수없이 중얼거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이제라도 그에게 최선을 다해보자. 사실 나는 그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았었다. 내가 그에게 해준 것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늘 바쁘다는 핑계를 대었던 것이다. 사실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살이 바삐 움직여야 밥 벌어 먹고 살 수 있다. 하지만 밥 먹고 살만하면 자기 이름석자 세우고, 자기 안락을 위해 안달하며 자기 위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바쁜 삶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리고 대부분이 이런 이기적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바쁜 삶? 왜 바빠야 하는가? 나는 투병중인 후배를 생각하며 머리 숙여 생각해 보았다. 내 앞에 주어진 시간도...새해, 지금 이대로이면 최소한 또 다른 365일은 거뜬히 갖게 될 것이다. 나의 365일과 후배의 남은 시간이 무엇이 다른가? 여정의 끝이 있음은 결코 다르지 않다. 물론 삶이란 막다른 길목에 이르러 무엇인가 남겨야할 의무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누구든 우리처럼 써먹을 시간이 별로 남지 않은 사람들에게 남겨진 의무가 있다면 마무리를 어떻게 할 건가 정도가 아닐까? 왜? 자기 인생이니까.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다 좋다. 인생도 마지막이 좋아야 한다. 결국은 마무리를 잘 짓는 사람이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해도 좋다.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이제는 “거꾸로 살아보자”는 것이 나의 답이다. 60을 훌쩍 넘긴 나 같은 경우 앞과 위만 보고 죽기 살기로 뛰었던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에서 반대로 60에서 50으로 거꾸로, 아래를 보며 가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40으로, 30으로....지나간 나의 삶의 족적을 다시 밟으며, 그동안 신세 졌던 사람들, 나를 끔찍이도 아껴주었던 사람들, 내 편이 되어 주었던 사람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든 신세를 갚자. 나를 미워하고, 비난하고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게는 용서하고 화해하자.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더 주어질지 모르지만 뜨겁게 사랑하며 살자. 아마도 투병중인 후배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주일날 나는 한 교회를 방문, 중국에서 선교를 하신다는 목사님의 설교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건강한 영성”이 주제였다. “나의 삶이 내 중심이 아니라 타인을 중심을 살아갈 때 참다운 영성(靈性)이 드러난다.” 그러한 영성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고귀한 선물이라는 것, 이타의 삶, 상대를 케어하는 마음과 자세가 곧 건강한 영성이라고 강조했다. 그 순간 나는 투병중인 후배에게 너무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이 내 모습을 남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여주기 위해 바쁘게 살았지, 후배의 삶을 언제 한번 제대로 챙겨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후배의 입장에 서서 걱정해 주고 그의 얘기를 들어주고 그리고 함께 고민해보는 그런 시간이 부족했음을 자책했다. 미안하다. 이제야 겨우 이런 것들을 깨닫고 있으니 나의 무지와 이기심을 한탄할 뿐이다.

이제는 거꾸로 살아보자. 새해 아침, 나 같은 사람에게는 턱없는 결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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