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름을 찾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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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름을 찾기까지
  • 전길운
  • 승인 2012.01.0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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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길운 (한민족신문)

우리 중국동포들에게도 한글이름이 있지만 한국생활을 하면서 한글이름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 일로 한때 나는 실망도 하고 서러운 마음을 진정하느라 고민도 많이 했다.

2008년, 나는 사업자등록증을 내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선 법인회사의 설립을 위해 법무사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정작 회사의 상호를 허가받고 법인등록을 하려고 하자 법무사는 “외국인은 무조건 외국식의 발음대로 한글로 이름을 적어야 한다”고 했다.

서글프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하루빨리 사업자등록증을 받아야만 했기에 내키지 않았지만 중국식 병음발음대로 한글로 ‘취앤지윈’이라는 엉뚱한 이름을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어 법인통장을 만들고자 찾은 은행에서도 한글로 적어 넣은 이름 ‘전길운’은 거부를 당했다. 중국식 발음대로 적으라는 것이다.

나의 마음은 허전하기만 했다. 중국에서 살면서 유치원부터 시작해 한글을 배워왔고, 대학시험마저도 한글로 답안을 적었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한글을 쓸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이후에도 한글이름은 늘 나를 괴롭혔다. 사업자등록신청을 하려고 세무서로 찾아갔지만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한글이름을 쓸 수 없었다. 또 다시 실갱이했지만 헛수고였다. 이후 여행관광업신고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조건 등기부등본대로 중국식발음대로 합성어형태의 엉뚱한 한글이름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억이 막혔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때로부터 나는 외국도 아닌 한국에서 한글이름을 쓸 수 없는 이유를 밝히고 싶었다. 내가 어려서부터 사용하던 한글이름 ‘전길운’을 되찾고 싶었다.

우선 법인등기소를 찾아갔다. 여기서도 만찬가지로 외국인이어서 한글이름을 쓸 수가 없다고 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어떻게 한글을 쓸 수 있냐는 핀잔까지 받았다. 순간 너무나도 화가 나서 “우리가 외국에서도 한글을 지켜왔는데 내국인은 자기 나라에서도 외래어만 써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지고 들었다. 가정법원으로 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시청에서 서초동대법원으로 찾아갔지만 여기서도 외국인은 한글이름을 쓸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한글이름을 찾으려는 나의 열정에 감동되어서인지 가정법원에 가서 개명신청을 하면 가능할 것 같다는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비를 맞으면서 가정법원으로 찾아갔지만 마찬가지의 냉대를 받았다. 민원실 직원은 한글이름을 찾기 위해 개명신청을 하러 왔다는 말을 듣자 의아해하면서 외국인신분으로는 개명신청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억수로 쏟아지는 비 줄기에 마음까지 울적하여 이젠 분풀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으로 다시 법원으로 들어갔다. 처음 찾아갔던 직원한테 말을 걸었다. 힘없이 다시 찾아온 나를 본 그 직원은 측은해서인지 아니면 나의 끈질긴 노력에 감동해서인지 협조해 주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잘 아로 있는 법인등기소 직원한테 전화를 걸어 협조해줄 것을 부탁했다.

다시 법인등기소로 찾아갔다. 과연 이번에는 나를 대하는 직원의 태도부터 달라졌다. 소개를 받고 찾아간 직원은 내부적인 검토를 하겠으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십여 분이 지나서 등기소직원은 법인등기부등본에 ‘취앤지윈’이라는 발음표기와 함께 영문을 병기해주겠다고 했다. 큰 수확이었다. 영문대로 쓰는 것이 그래도 엉뚱한 자기의 이름도 아닌 합성어인 ‘취앤지윈’보다는 훨씬 나았다. 희망이 생기자 나는 다시 영문표기가 가능하다면 차라리 한자로 써 주면 안 되느냐고 청을 했다. 직원은 다시 기다려달라고 하고는 안으로 들어가 상의하고 오더니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직원에게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들뜬 마음에 등기부등본을 새로 발급받았다. 등본에 반갑지 않게 찍혀있었던 ‘취앤지윈’과 함께 ‘全吉云’이 추가됐다. 누가 봐도 ‘전길운’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로부터 나의 모든 사업자등록증과 각종 허가서에는 모두 ‘전길운’이라는 한글이름이 당당하게 찍힐 수가 있었다.

한글이름을 찾기 힘든 제일 큰 원인이 바로 외국인등록증에 한글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하여 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출입국사무소로 찾아갔다. 하지만 출입국사무소에서는 아직까지는 한글이름을 써 줄 수 없단다. 할 수 없이 법무부외국인정책본부에 요청서를 보내는 동시에 본부에서 열리는 회의에서 제안했다. 본부의 담당자도 책임자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했지만 1년이 넘게 실시되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 10월 20일, 서울출입국사무소에서 열린 동포단체장들과의 간담회장에서 또 다시 이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서울출입국사무소 양차순 과장은 흔쾌히 대답했다. 본부와 검토한 후 바로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또 며칠 후 서울출입국사무소의 나현웅 사무관은 전화를 걸어와 신청시 한글이름 병기를 요구하는 신청자들에게는 한글이름을 병기해 발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외국도 아닌 한국에서 한글이름을 찾기가 왜서 그렇게도 힘들었던지? 자기의 한글이름이 찍혀 있는 신분증을 상상하면서 기다렸지만 정말로 실현될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등록증신청을 하는 친구들에게, 지인들에게 한글이름을 병기한 등록증을 신청해보라고 했다. 그러고는 서울출입국사무소도 두 번이나 찾아가서 어떻게 발급되는지 확인해보았다. 과연 한글이름이 병기된 등록증이 발급되기 시작했다. 그렇게도 바라던 한글이름이 찍힌 등록증, 이것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형언할 수 없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한글이름을 찾은 그 기쁨 앞으로 등기소에서, 은행에서, 모든 공관에서 동포들에게 발급되는 모든 서류들에 한글이름이 떳떳하게 찍혀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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